10.25 행궁지 - 대피소
9월 중순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다. 그땐 단풍을 볼 수 없었는데 이젠 산 위는 낙엽으로 변했고 산아래엔 늦게 핀 단풍이 가는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태국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산에 갔던 날은 온전히 산을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늘 하던대로 혼자만의 산을 걷기로 했다. 몇 번 배낭에 넣고 다니며 입었던 바람막이 옷을 입고 아내가 챙겨준 과일과 샌드위치, 물을 넣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고 난 후 며칠은 아침에 추웠는데 기온이 영상 10도가 넘는 듯 바람이 제법 훈훈하다.
구파발역 정거장에 가니 줄이 무척 길다. 교통정리를 하는 버스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줄을 이리저리 바꿔서 줄이 흐트러지고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 짜증이 났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사람들이 넘쳤다. 아니 정거장에서 내려서 부터 단체로 온 사람들로 산 전체가 들썩였다. 해서 이들을 헤치고 올라가자니 힘이 더 들었고 정체도 심했다.
계곡 입구에서부터 푸른색이 점차 옅어져 중간 쯤에 오자 푸른색과 노랗고 붉은 단풍색이 완연히 대비가 되었다. 곳곳에 숨어있는 단풍의 비밀스런 모습을 들여다보느라 발걸음이 더뎌졌지만 빨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니 상관할 바 아니었다. 지난번에 지나간 길이 가물가물해 기록을 살펴보니 디피소에서 행궁지로 갔었다. 그래서 이번엔 행궁지로 먼저 갔다. 행궁지 뒤의 금줄로 예전에 다니던 급경사의 나무계단을 오르며 삼각산을 보니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니 의상능선 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며 햇살이 빛춘다.
상원봉에 거의 다 다다른 곳 삼각산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에 어여쁜 젊은이가 앉아 핸펀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옆에 쪼그리고 싶어진다.
문수봉에 이르니 비봉쪽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삼각산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일기예보에 오후엔 맑음이다. 대남문을 지나 대성문으로 가는 오름을 힘겹게 올랐다. 고양,종로,성북 경계와 해발 693미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늘 그렇듯 무심히 지나간다. 엉덩이가 예쁜 아줌마들이 매무새를 고치는 옆을 지나 내려가는데 다리가 털썩거린다. 엉덩이를 낮춰 조심스럽게 내리막을 걷는다.
대동문 앞을 지나며 지난주에 봤던 거리표시를 다시 들여다봤지만 다른 것들도 똑 같다. 표시된 폭포가 내가 아는 곳과 다른 곳인가 보다. 아니면 입구에서부터의 표시던지. 지난주에 봤던 그 친구가 또 왔는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동장대를 향해 걸었다.
생각한 시간에 대피소에 도착해 자리를 잡으려는데 햇살이 든다며 내 자리 곁으로 한무리의 산객들이 몰려든다.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펴고 그들을 등지고 앉아 배낭을 풀었다. 따끈한 둥글래차가 참 맛있다. 샌드위치가 두꺼워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과일을 남기고 다시 배낭을 꾸려 내려오는 길 산객들로 길이 밀린다. 글들이 사진을 찍는 곳이 단풍 명당이다. 나도 덩달아 사진을 몇 장 찍는다. 백운동문 표석을 지나자 길이 밀린다. 북한동을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자 길이 더 밀린다.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내려가는 사람들이 한참씩 기다렸다 가야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길을 다 내려와 늘상 들리던 쉼터를 바라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그냥 내려왔다. 그곳에서 쉬었다면 마침 개최될 음악회도 보았을텐데.
마른 목을 적시며 집으로 돌아와 막걸리상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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