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산에 다녀왔다. 거의 주말이면 의무적으로 산에 간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내겐 바삐 움직여야 된다는 강박감이 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때문에 절대로 중풍은 용납할 수가 없다. 가정을 망치는 병이었다. 고혈압, 고지혈이 무서운 것을 알기에 그걸 피하고자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등산이 내겐 운동의 하나다. 주중 월, 수는 유산소운동을 하고 화, 금은 근력운동을 한다. 그리고 토욜은 산을 오른다. 작년만 해도 월, 수, 금은 근력, 화, 목은 유산소운동을 하고 일욜만 쉬었었는데 이젠 힘이 부쳐서 목욜도 쉰다. 실내에서 하는 운동 보다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토요일에 산에 가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집안에서 지낼 수도 있다. 그건 참 끔찍한 일이다.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배낭을 메고 남쪽의 어느 나라를 다녀오려고 계획 중인데 코로나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어찌 다녔는지 다 잊어버려서 새로 계획을 짜고 있다.
배낭은 가급적 가볍게 꾸리고 있다. 항상 들어 있는 것들 외에 물과 과일, 점심거리만 넣는다. 오늘은 참외와 유부초밥이다. 아내가 챙겨준 덕분에 여유롭게 집을 나와 자주 타는 시간의 열차를 탔다. 승객이 많다. 대곡역에서 환승하여 경로석을 차지해 구파발로 가서 만원인 704번을 보내고 바로 뒤에 온 37번을 탔다. 새로 생긴 37번은 시외버스라 요금도 50원이 싸다. 8772번 주말버스와 같이 구파발역이 시발점이라 앉아 갈 수 있다. 그런데 차가 너무 느리게 간다. 신호등 마다 다 걸렸다. 답답했다. 산성입구에 내리니 앞서 갔던 차에서 내린 이들이 까마득히 멀다.
가을이라 그런지 길에 사람들이 많다. 물소리와 새소리는 간데 없고 말소리만 들린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들이 찻길로 오른다.
계곡에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숲길이 환해졌다. 그래도 숲은 푸른색을 발산하고 있다. 그 속에 간간히 갈색과 노란색이 끼어들고 있다. 이번 여름 긴 기간을 그리 덥게 하더니 단풍을 더디 오게 하고 있는데 제대로 볼 지나 모르겠다. 가끔씩 오는 허리의 통증을 잊으려 부지런히 그러나 천천히 올랐다. 천천히도 나홀로 걸을 때 뿐 앞에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기를 쓰고 따라 잡았다. 고칠 수 없는 병이다.
지난주에 백운대를 올랐으니 오늘은 반대편 봉우리를 오르기로 했다. 역사관 앞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다시 길로 나섰다. 옆자리에서 쉬다 먼저 출발한 암벽꾼들을 지나쳐 부지런히 걸었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막걸리에 삼겹살을 먹을 생각이다. 걷기에 힘이 부치지 않을 때 힘을 아껴야 한다. 계곡길로 문수봉에 오르는 것이 최단 거리이고 힘이 덜 들지만 너무 지루하고 볼 것이 없다. 보국문으로 가는 샛길로 들어섰다. 돌투성이의 길에 발길이 뚜렸하다. 그 길을 따라 올랐다. 확실히 아직은 덜 힘들다. 성문 위에 올라 배낭을 벗고 한참을 쉬며 숨을 골랐다. 이제부터는 성곽을 따라 오르내리는 긴 길이 남았다. 힘은 들지만 경치는 최고인 산길이다. 왼쪽은 서울 시내가 보이고 오른쪽은 삼각산이 멋지게 보인다. 그 길을 무릎을 짚어가며 부지런히 올랐다. 남쪽전망대에서 보는, 서울시내가 옅은 구름인지 스모그인지에 쌓여 있는 모습이 환상적이다.그렇게 여러 봉우리들과 대성문, 대남문을 지나 문수봉으로 갔다.
무척 많은 이들이 산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속의 작은 공간 한 곳을 차지하며 사진을 찍고 쉬었다. 아침부터 끼어 있던 옅은 구름이 아직도 그대로다. 산의 풍경은 구름 한 점 없는 것 보다 구름이 걸쳐 있는 모습이 더 보기 좋다. 배낭에서 스틱을 꺼내 펼쳤다. 남장대지를 거쳐 행궁지로 내려가려면 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걸으면서 아직까지 제대로 익은 단풍을 보지 못했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상원봉에 올라 구경을 하는데 문수봉에서 봤던 중년 부부가 뒤따라 올라와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 무작정 길이 있어 왔단다. 큰일 날 분들이다. 의상능선은 힘들고 위험하다고 말해주고 능선을 걷는데 눈이 가장 많이 쌓이는 안부에서 붉은 단풍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직은 짙은 초록의 단풍이 대부분이다. 능선을 내려와 행궁지를 돌아가는 길로 내려섰다. 그길 중간의 밧줄에 매달리는 구간에서 스틱을 펼치고 밧줄을 잡고 내려오다가 스틱이 자꾸 밧줄에 걸리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그러다 옆을 보니 절벽 사이로 따로 내려오는 길이 보였다. 다음엔 그길을 이용해 봐야겠다.
행궁지를 지나 내려오다가 자주 이용하는 갈림길 옆의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폈다. 가지고 간 초밥과 과일 모두 반만 먹고 다시 배낭에 넣었다. 이제 깔따구가 사라졌겠다 싶었는데 손에 달려드는 한 마리를 본 후 불안해서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내려가는 힘들고 지루한 긴 길이 남았다. 걸으며 올라오는 이들을 보았다. 혹시 아는 얼굴이 있을까 해서. 하지만 없다. 역사관에서 스틱을 접어 넣고 자연관찰로로 내려오며 어디가서 쉬었다 집에 갈까 고민을 했다. 오늘은 아내가 직장 친구 자녀 결혼식에 갔으니 늦을 것이 분명하다. 해서 시간을 보내다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북한동으로 내려와 보니 들어가고 싶은 곳이 없다. 집에 가서 편하게 다리 뻗고 마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래서 바로 버스를 타고 구파발에 내려 역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지하철도 늦게 왔다. 거의 꽉 끼다시피하여 대곡까지 와서경의선을 타러 가는 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왔다. 그들이 지나가자 한순간에 한적해졌다. 열차에 왠 일로 빈자리가 있다. 고생한 보상인가? 그런데 오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뭐지?
집에 와서 더운 물에 샤워하고 다리 쭉 뻗고 시원한 막걸리로 피로를 풀었다. 역시 아내는 11시에 집에 왔다.
P.S. 점심 때 앉으려고 보니 방석이 없었다. 지지난 산행에서 사용하고 넣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자, 가자!
계곡폭포가 거의 말랐다. 비가 내려야 한다.
북한동역사관 앞. 데크 위에서 늘 쉬었다 간다.
중성문 아래 계곡 웅덩이에 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길을 오르는 이들은 바위꾼들이다.
잎이 진 나무 사이로 큰바위얼굴이 살짝 보였다.
보국문에 올라왔다. 여기서 잠시 앉았다 간다.
북쪽전망대에서 간신히 보이는 삼각산
남쪽전망대에서 보이는 서울. 이렇게 구름이 있는 것이 더 운치 있어 보였다.
꽃이 핀 성벽 너머로 남장대지능선이 보인다. 오늘은 저리로 내려갈 것이다.
사진 위의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으니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길인지 헷갈렸다.
왼쪽 끝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대남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보이는 문수봉
대남문
문수봉에서 삼각산 바라보기
비봉능선. 사모바위와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이 보인다.
구기동계곡. 아래 절은 문수사다.
상원봉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의상능선
산부추꽃
의상능선 너머로 보이는 구파발과 고양시
이번 계절 들어 가장 붉은 단풍을 보았다. 그런데 옆에 보이는 단풍은 짙푸르다.
청송대에서 보는 삼각산과 도봉산
백운대갈림길의 단풍도 참 좋은데 아직이다.
역사관 앞에 사람들이 참 많다.
바지가랑이가 하얗게 되어서야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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