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북한산에서 단풍을 봤다. 아직 물드는 중이긴 하지만 밤새 추웠던 골짜기 꼭대기부터 붉은 색을 채우는 신비한 모습을 봤다.
계획엔 사나흘 후에 지리산 종주를 3일간 하기로 됐었다. 처음엔 9월이었었다. 그런데 나만 다음주에 약속이 줄줄이 있다. 하여 못 가게 되었다. 지금 지리산을 가면 천천히 걸으며 멋진 풍광에 흠뻑 빠져들텐데.... 너무 아쉽다. 대신 난 운동하러 작은 산에나 다녀와야겠다. 손주들 등교 시키고 봐 주러 안산에 다니느라 일상이 틀어졌지만 내 시간이 나면 짜여진 굴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아내는 안산에 간다고 하니 오늘 산에 갔다 내려와서 뒷풀이를 진하게 해? 그러려면 짧게 걷고 내려와서 연신내로 가?
늘 그렇듯 3시에 깨서 뱅기표와 아고다 숙소를 검색하다가 5시가 넘었다. 아내는 나와 같이 나간다며 서두르더니 내 도시락을 챙겨준 후 나중에 나가겠단다. 그래서 7:37 차를 타려다 앞 열차인 7:15 차를 타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역으로 가다가 7:07에 버스정거장을 지나는데 600번 버스가 앞 정거장에 있는 것으로 표시가 돼 있다. 생각에 저 버스를 타면 편하게 산에 갈 것 같았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신호등 마다 다 걸리더니 7:15에 대화역에 도착했다. 밑으로 내려가니 열차가 막 떠나는 것이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 7:31에 출발을 했으니 탄현역 승차 보다 훨씬 더 늦었다. 구파발역에서 만원인 704번을 보내고 주말버스를 탔는데 이 기사가 또 지난 번 37번 기사처럼 세월아 네월아다. 속으로만 화를 내다가 그래봐야 아무도 사정을 모르니 나만 스트레스라 마음을 편히 먹자고 했는데 내 성질이 더러워서 잘 안된다.
오늘은 산에 오는 길이 너무 멀고 길었다. 그래도 산 아래에 내리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이래서 산에 오는 것이지.
어제 비가 제법 와서 그런지 길이 깨끗해진 느낌이다. 앞차에서 내린 이들이 저 멀리서 올라가고 있다. 하늘은 밤새 비를 다 뿌리지 못해서 칙칙하다. 탐방지원센타 앞이 어수선하다. 자세히 보니 무슨 대회를 하는 듯하다. 주황색 리본이 곳곳에 붙어 있다. 다행이도 계곡으로 들어가니 뛰는 이들이 없다. 그들은 찻길로 오르는 가 보다. 천천히 걷자고 했지만 그건 오늘도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어제 내린 비에 계곡 입구의 길이 많이 파였다. 계곡은 포효하는 듯한 물소리로 뒤덮였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다. 어제 비가 많이 내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자연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산 아래는 아직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군데군데 노랑과 주홍으로 변한 잎들이 보인다. 폭포 옆 계단을 독차지하고 오래 사진을 찍는 이들을 지나치며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뭔 사진 한 장을 찍는데 그리 많이 시간이 걸리는지.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상한 행동들이 많아져 싫다.
오늘도 역사관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데크로 올라가 물 마시고 몸 풀고 이어폰 끼고 다시 길로 나오기를 했다. 짧게 걷기로 한 생각대로 길을 오르는데 걷기 행사에 참가한 이들이 휙휙 지나쳐 갔다. 운동화에 반바지를 입고 등에 달라붙는 작은 배낭을 메고 스틱도 짚고 있다. 100키로를 걷는 대회인가 본데 참가자들이 다양하고 대단해 보였다. 걷기도 힘 든데 뛰기까지 하니. 그들은 대피소길로 올라갔고 나는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국문으로 향했다.
길이 높아지면서 산의 색이 변했다. 성질 급한 나무들이 먼저 단풍이 들었다. 오랫동안 다니면서 보니 먼저 단풍이 드는 나무가 있다. 늘 같은 나무다. 오늘도 오르다 보니 같은 자리의 나무가 색이 먼저 변한 것을 알았다. 원래 성질이 급한 나무인가 보다. 오늘은 보국문으로 올라가서 대피소로 내려갈 것이다. 보국문 앞 단풍나무가 예쁘게 색이 변했다. 대동문으로 가다 뒤돌아 보니 반대 쪽 성곽길도 색이 변한 모습이었다. 이제 오래지 않아 잎이 지고 하얀 색으로 온 세상이 바뀔 것이고 손을 호호 불며 산길을 걷겠지. 그리고 또 봄이 올 것이고.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대피소 쪽에서 달려와 대동문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피해 돌계단길로 제단으로 올라가니 두 명이 제단에 걸터앉아 뿔피리를 불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자리인데. 한참을 기다려 양해를 구한 후 얼른 사진을 찍고 동장대로 향했다. 동장대 보수공사를 시작하고 이길을 가는 것은 처음이다. 빙 돌아서 가는 길이 더 멀고 오르내림도 더 한 것 같다. 이 공사도 마치려면 삼사 년은 걸릴 것이다. 좋은 길인데 한참 못 보게 됐다.
마주치는 대회 참가자들을 보면서 부러워 했다. 그 젊음과 도전 정신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힘을.... 나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절대 아니라 답했다. 일단 눈이 나빠져서 길이 잘 안 보인다. 절대 뛸 수 없다는 말이고 허리도 나쁘고 힘도 없다. 이제 힘이 떨어져서 산길을 오래 걸을 수도 없다. 이렇게 다니는 것만도 다행스러울 정도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대피소에 도착해 지붕아래에 앉아 이른 점심을 먹었다. 가지고 간 샌드위치 반쪽과 사과 한 입으로 가볍게 마치고 바로 일어났다. 먹는 내내 대회 참가자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가한 걸까?
귀찮아서 스틱을 펴지 않고 내려오다 젖은 흙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는 더 조심해서 길을 내려와야 했다. 역사관앞에서 다시 쉬고 계곡길을 따라 내려와 북한동에서 목을 축이려 했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바로 집으로 오다가 양평해장국집에 들려 한 그릇을 포장해 집에 와서 샤워하고 다리 쭉 펴고 빈대떡을 곁들여 마시니 좋다. 이것도 괜찮다.
졸려서 이제 자야겠다.
자, 이제 산으로 가자!
수문자리에서 보는 문수봉과 계곡
계곡폭포가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역사관 앞. 반바지를 입은 이들은 다 달리기를 하는 이들이다
중성문 아래 계곡. 잎이 많이 떨어져서 황량한 느낌이었다. 욎쪽 핑크리본은 달리기 표식이다.
중성문. 달리기를 하는 이들이 순식간에 지나쳐 갔다. 부러웠다,
노적교 아래 계곡에도 물이 많다. 중성문을 지나자 붉은 빛이 많아졌다.
정자를 지나서 노적봉이 보이는 길에서 뒤돌아서니 늘 먼저 단풍이 드는 한 그루가 역시 가장 먼저 예쁘게 들었다.
산영루 주위도 색이 많이 변했다.
발굴조사 중인 경리청상창지 앞길에서 뒤돌아 봤다.
대동문 가는 삼거리로 가는 계곡길
보국문 앞에 든 단풍
보국문
보국문. 올해는 단풍이 예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보국문 위에서 문수봉을 배경으로
칼바위, 형제봉, 백악, 인왕산, 남산, 관악산까지
칼바위 삼거리를 지난 성곽길
길가에 단풍나무 한그루가 완전히 단풍이 들었다.
대동문
제단 성곽 뒤로 삼각산이 보인다.
동장대로 가는 길이 막혔다. 왼쪽으로 빙 돌아 가야 한다.
대피소에 왔다.
대피소광장 나무들 사이로 문수봉이 보인다.
대피소 아래 계곡. 여기가 예쁘게 단풍이 드는 곳인데 조금은 아쉽다. 며칠 더 있어야 되려나?
산아래 계곡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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