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뭔지 모르겠다. 부처와 예수, 마호멧 같은 삶이 좋은 지, 왕들 처럼 사는 것이 좋은 지, 하루하루 편하게 먹고 사는 삶이 좋은 지........ 뭘까?
산 같이 크셨던 분이 한 시간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우주에서 아니 그 속 아주 작은 우리 지구의 입장에서 봐도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은 보잘 것 없고 소소한 존재지만 내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비록 찰라이지만 우주적 크나큼과 모든 것이다. 그 모든 것들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40년을 살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낳고 사랑하고 길러 주고 보살피셨던 분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시게 모셨다.
이제 얼마 후면 모든 것이 잊혀지겠지. 나 또한 그럴 것이고....
삼오제를 지내고 와서 하루를 쉬고 맞은 주말이다. 전날까지 눈이 많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했는데 기온이 많이 내려가진 않았다. 이러면 산길이 진창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주에는 위독하시단 소식에 대기하느라 꼼짝 않고 집에 있었고 일주일 동안 운동을 못하는 바람에 몸이 1키로나 불었으니 오늘부터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산에 가자.
뜨거운 숭늉을 보온병에 담고 아내가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 반쪽과 귤 한 알, 핫팩을 넣는 것으로 배낭 준비는 끝났다. 겨울엔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보름 전에 배낭에 넣었던 300미리 물병은 아직 뜯지도 않았다. 오늘 낮기온이 높다고 하더라도 작은 물병 정도면 충분하다. 배낭 벨트주머니엔 쵸코렛과 사탕이 몇 개 들어 있으니 보충하지 않아도 되겠다.
집밖으로 나오니 아직 어둡다. 구름이 두꺼운가 보다. 여유롭게 집을 나섰으니 천천히 역으로 갔다. 24분 만에 오는 열차라 승객이 많지만 경로석은 비어 있다. 냉큼 가서 앉는다. 이젠 당연한 듯 이용하는데 가끔은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 3호선에서도 경로석에 앉았다. 일반석의 젊은이들 자리를 뺐는 것보다 경로석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낫다. 내가 산에 가는 시간엔 경로석이 늘 비어서 구파발까지 간다.
북한산성입구에 내리니 길이 하얗다. 찻길은 다 녹았지만 인도에는 눈이 그대로다. 다행스럽게 눈이 맨질거리지는 않는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단 얘기다. 계곡길로 들어가니 산이 온통 희다못해 파란빛을 품었다. 멋지다. 그런데 가끔 미끄러진다. 수구정 앞 벤치에서 켑자켓을 벗고 아이젠을 신었다. 엉덩방아를 찧고 싶지 않다. 이젠 잘못 넘어지면 어디가 부러질 수 있는 나이니까. 계곡을 한참 오르다 소리가 들려 뒤돌아 봤는데 운동화에 아이젠도 하지 않은 한 쌍이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배낭도 없이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에 의지한 채 미끄러운 길을 걷는 그들이 예쁘고 대단하다. 그들은 계곡폭포를 지나 길이 가파라지자 시야에서 사라졌다.
늘 계곡길을 오르는 것이 워밍업이다. 역사관 앞에서 보름만에 물병을 뜯어 한 모금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길로 들어간다. 이번 겨울엔 이곳이나 더 올라가서 아이젠을 신었는데.... 찻길로 온 이들이 계곡으로 온 사람들 보다 훨씬 많다. 이른 시간에 무리지어 오르는 이들이 젊어 보인다.
아주 오랫만에 선봉암 아래 비탈길을 데크계단으로 올랐다. 찻길에 눈과 얼음이 보여서였다. 역시 계단길은 더 힘이 든다. 아이젠을 일찍 신었더니 정강이가 당기는 느낌이다. 힘도 더 많이 든다. 눈이 굳어진 곳을 딛으면 아이젠 톱니가 빠져 나오는 느낌이 선명했다. 오늘은 짧게 걷자. 벌써 힘이 들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일 거다.
산길이 참 좋다. 푹신하다. 미끄럽지만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번들의 등산코스를 살펴보고 대피소로 올라가기로 했다. 네 발로 올라야 하는 절벽코스는 아무 흔적도 없다. 나도 신작로를 따라 올랐다. 힘이 들어 발가락만 보며 걸었다. 허리가 많이 아팠었는데 배낭을 메니 역시 말끔하다. 이제 나이가 더 들면 평소에도 배낭을 메거나 허리벨트를 해야 될 것 같다. 산길에 마주치는 이들이 조금씩 많아 졌다. 이들은 도대체 언제 산에 왔고 어디서 오는 거지?
오늘도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이정도 거리면 저 아래에서 보였을텐데 참 신기하다. 이러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산에 올 때마다 매번 그랬고 오늘은 벌써 두번째다. 마치 숨어 있다가 튀어 나온 듯하다. 대피소로 오르는 길에 새로 만든 데크 아래에서 쉬던 젊은이들이 가까이 가자 일어나 올라가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뒤쳐진 한 명 빼고 참 빠르다. 기를 쓰고 오르지만 뒤쳐졌던 한 명도 곧 안 보인다. 젊음이 너무 부럽다. 가뜩이나 비탈져 힘든 길에 눈까지 쌓였으니 죽을 맛이다. 하지만 일단 대피소에 오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평지나 마찬가지니 힘을 짜낸다.
드디어 대피소에 올랐다. 비로서 웃음이 나온다. 이제 살았다. 대피소 지붕아래에서 쉬려고 가까이 가니 지붕 한 쪽이 떨어져 간신히 매달려 있고 노란 줄이 둘러막고 있다. 큰일이다. 엉덩이를 좀 붙여야 하는데 눈이 깊어 앉을 곳이 없다. 낭패다. 잠시 망설이다가 동장대로 향했다. 거기서 쉬자. 그런데 그곳은 공사 중이라 접근 조차 할 수 없다. 짧아도 대동문까지는 가야 앉을 수 있다. 산 옆을 감아도는 편안한 길을 지나 능선에 이르자 바람이 분다. 쌓인 눈이 깊다. 눈이 깊으니 아이젠이 역할을 못한다. 동장대를 돌아가는 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깊은 눈에 미끄러졌다. 스틱을 펴지 않은 탓이다. 이제 해가 높아져 기온이 올라 장갑은 필요 없어졌다. 주머니 속에 든 핫팩은 이미 식어 무거운 짐이 되었다.
동쪽과 남쪽에서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성벽 길에 무릎 보다 높게 눈이 쌓였다. 이 눈 위를 처음 걸은 사람의 고생이 눈에 훤하다. 길을 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눈에 빠지지 않으려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게 삐뚤빼뚤한 산길을 이리저리 따라 걸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눈길에 마주치면 한 명은 눈속으로 비켜야 했다. 바람이 없고 기온이 오른 것이 다행이다. 앞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보국문에 도착했다. 아직 엉덩이를 붙이지 못해 다리가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보국문 밖으로 나가 성벽 밑 눈을 치우려 했는데 포기하고 잠시 쭈그려 앉아 쵸코렛과 사탕 3개를 먹고 다시 일어났다.
보국문에서 돌맹이를 밟지 않고 내려올 수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눈이 너덜을 완전히 덮어서 아주 편하게 내려왔다. 아이젠이 가끔씩 길바닥에 걸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참아 줄만 했다. 백운동계곡으로 내려오자 등산객들이 많아졌다. 쌓인 눈속으로 비켜서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내가 내려가니 오르는 이들에게 비켜줘야 한다. 걸을수록 더욱 엉덩이가 힘들다고 난리다. 긴 계곡길을 내려와 다시 역사관 앞에 왔다. 이런, 의자가 꽉 찼다. 한 명이 앉은 곳으로 가 배낭을 풀고 엉덩이를 붙였다. 올라갈 때 여기서 앉고 처음 다시 여기서 앉았다. 샌드위치와 숭늉을 꺼냈다. 뜨끈한 숭늉 맛이 참 좋다. 들개들이 턱을 조아리고 나눠주길 기다리지만 어림없다. 난 절대 산속의 개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없이 준다. 오늘도 그랬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도 없어졌다. 내려가서 관리공단에 물어봐야 하겠다. (내려와서 물어보니 현수막은 삭아서 교체하려고 떼어냈단다. 먹이 주는 이들에게 말하면 싸우니 자기들에게 얘기하란다.) 전엔 많이 보이던 토끼 발자국을 오늘은 한 번만 봤다. 행궁지 뒤에서 꿩 새끼들도 보였는데 이젠 전혀 안 보인다. 산에 사는 개나 고양이들 때문일 것이다. 야생화된 개와 고양이를 산 밖으로 데려가야 한다.
찻길을 걸으면 아이젠 발톱이 많이 닳으니 눈이 덮인 계곡길로 내려왔다. 다시 수구정 앞에서 아이젠을 벗었는데 버스정거장까지 오며 엉덩방아를 세 번이나 찧었다. 사람들이 밟아 단단해져 미끄러웠기 때문이고 내가 그만큼 둔해졌기 때문이다.
양주37번 버스가 구파발에서 출발을 했었는데 불광동으로 바뀌었다. 그 덕분에 연신내에서 내려 순대국술국에 막걸리 한 잔하고 시장에서 고등어자반 두 손을 사서 집으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마루바닥에 다리 뻗고 앉으니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두웠는데 사진으로는 훤한 것 같다.
산으로 가는 길. 세상이 하얗다.
계곡입구에서. 이제 걷기 시작이다.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
계곡 한쪽이 덜 얼었다.
폭포. 얼음 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역사관 앞.
중성문으로 가는 오름길
중성문
산영루로 오르는 길
산영루
대피소 아래 갈림길. 눈과 얼음이 징검다리를 다 덮었다.
대피소에 드디어 올랐다.
성벽 아래 눈이 많이 쌓였다. 바람이 불어서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눈이 더 많이 있다.
길옆에 쌓인 눈에 다리를 넣어 보았다.
동장대 가는 길이 막혔다.
이 계절에만 이곳에서 문수봉을 볼 수 있다. 나뭇잎들이 없어서....
대동문 위 봉우리의 제단
제단 뒤 성벽에서 본 삼각산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을 찍었다.
보국문
보국문 안에서 북쪽으로 보았다.
경리청상창지 앞길
계곡 입구의 길
다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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