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8.9 행궁지 - 대피소

PAROM 2014. 8. 10. 08:58

 6월 말에 걷고 다시 걷는 길이었다. 그동안 친구들과 더위를 핑계 삼아 다른 곳을 짧게 다니거나 중간에 끊고 내려가곤 했다. 원래 발랑리에서 철렵하기로 했었는데 처가식구들 만난다는 핑계로 약속을 깨고 아침에 일찍 산에 가게 되었다.

 

 전날 마신 막걸리의 뒤끝이 좋지 않았다. 친구랑 광장시장에서 만난다고 하고, 오랫만에 갔던 곳에서 얘기하던 중 쫓기듯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내가 일찍 끝내기만 했어도 좋았을 일이었다. 한 잔 더 하려고 한 것이 일이 커지고 말았다. 끊자고 할때 끊었으면 좋았으련만..... 한 잔 마시게 되면 쉽게 잔을 놓지 못하는 내가 문제가 있다. 결국은 집에 와서 냉장고에 있던 한 병을 더 마시고 곯아 떨어졌고 산에 가서까지 숙취가 남아 있었으니...... 게다가 술에 취한 상태로 북구에서 여행중인 딸에게 카톡을 하지 않나, 친구들 밴드에 끼어들고..... 에휴, 맨정신이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들을 하고 있으니 참 문제다.

 

 아내가 새벽부터 잔소리를 했다. 밖에서 마시고 왔으면 됐지 왜 집에서 까지 마시느냐고.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산에 갈거냐 물으며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일을 깎아 싸준다. 거기다 후라이드 치킨 세조각까지. 참 고맙다.

 태풍이 올라오면서 하늘에 껴있던 먼지를 다 날려보냈는지 하늘이 가을하늘 같다. 햇빛이 눈부시다. 배낭에 선그라스부터 챙겨 넣었다. 새벽엔 바람이 선선했는데 집을 나서니 덥다. 술기운이 남아있어 걸음이 불안정하다. 그래도 집 앞 가게에 들렸다.

 

 한여름인데도 구파발역 정거장에 줄이 길다. 등산인구가 참 많아졌다. 버스 안에서 10년 후배인 현주를 만났다. 친구 둘과 같이 산에 가는 중이라는데 이 후배와는 자주 산에서 만났다. 자기들은 가까운 곳에서 놀거라고 해서 차 안에서 바로 헤어졌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에 바람이 많이 불어 땀을 식혀 주었다. 북한동까지 손수건을 별로 꺼내지 않았다. 술기운이 없어지려는지 목이 자주 말랐다. 중성문을 지나면서 부터 힘이 드는 것이 느껴졌다. 술이 깨려는구나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행궁지를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서부터 힘이 더 들었다. 결국 물가 바위에 배낭을 내려 놓고 말았다. 평상시엔 쉬지 않고 그냥 대피소까지 갔었는데. 발걸음이 무거워져서 문수봉에 갔을 시간에서야 겨우 남장대지능선에 오를 수 있었다.

 

 중간에 내려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대피소를 향해 성곽을 따라 걸었다. 대성문을 지나자 다리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무작정 발을 내디뎠다. 내려가는 길이라 힘이 덜 들었지만 시간은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걸렸다. 대동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던 중 배낭을 또 다시 내리고야 말았다. 너무 힘이 들고 목이 말라서였다. 그대로 주저 앉고 싶었지만 그럴 장소도 아니었다. 술 마신 다음날 등산을 한 두번 한 것도 아닌데 유독 힘이 더 드는 것이 나이 때문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지붕 아래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었다. 물 한모금 마시고 과일 한 조각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등산화 끈을 풀어 제치고 양말에 바깥 바람을 쐬었다. 시원했다. 그렇게 한시간 가까이 주저앉아 있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시간이 올라가던 때와 같다. 평소 4시간이면 되던 것이 5시간이나 걸렸다. 게다가 몸은 더더욱 피곤하고.

 다 내려와서 또 한 시간을 쉬다가 집으로 왔다. 북한산을 다니며 이렇게 힘든 날은 처음이었다. 왜지?

 

 (09:41)

행궁지 뒤 계곡(10:57)

(11:17)

(11:25)

(11:25)

(11:33) 문수봉에서 본 구기동계곡

(11:39)

(12:00)

(12:01)

대피소 도착(12:41)

대피소 출발(13:37)

(14:31)

(14:52)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