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사면에 내려가 있는 동안 아프기 시작한 허리 때문에 등산을 포기할 까도 했지만 혹기 상태가 좋아질 지 몰라 산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날 이수역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 좋아지긴 했지만 늦게까지 친구들과 술마시고 노는 바람에 집에 오면서 다시 허리가 아파 걱정이 되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찌푸둥하다. 식탁엔 점심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허리가 어떨지 몰라 상태를 봐가면서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배낭을 가볍게 꾸렸다. 샌드위치, 과일 조금, 500미리 물 두 병, 보온병 하나에 복장은 아주 가볍게. 블루투스 이어폰과 썬그라스도 미리 챙겼다. 아침 먹은 것을 치운 후 집을 나서니 8시가 넘었다. 구파발역 버스정거장에 길이 엄청 길게 늘어섰지만 곧 주말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계곡에 들어서며 오늘은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걸음이 비탈길에서 빨라지며 또다시 앞사람들을 앞지르는 일이 벌어졌다. 병이다. 아래 계곡엔 진달래가 지고 있었다. 그래도 여유를 갖자며 둘러보며 가다가 노적사 아래 정자에서 한참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걸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천천히 걸으니 좋긴 좋았다. 사람은 앞과 뒤가 다른 것이 문제다. 뒷모습만 보고 앞모습도 좋으리라 생각한 것이 늘 문제다. 사람은 얘기를 해보며 겪어봐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 법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쉬운 발걸음을 빠른 걸음으로 대신하여 대피소에 오르니 한시간 십분이 걸렸다. 천천히 오긴 했다.
능선길이 온통 진달래 밭이다. 중턱 벗나무는 아직 꽃잎이 달려 흰기운을 뽑내고 있고 이름 모른 풀꽃들도 노란 자태를 드러내고 왕벗나무는 붉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맘때의 산은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교태를 부린다. 그래서 더 꽃이 많이 피는 구기동터널 앞으로 갈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비봉능선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닌다. 그게 싫다. 진달래 구경을 하면서 능선을 천천히 오르는데 누군가가 지나친다. 산아래에서도 두 명이 나를 지나쳤지만 얼마 못가 뒤쳐지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었다. 대성문을 지나면서 기운을 더내 대남문을 향했다. 대남문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맞아준다. 그런데 너무 세서 그런지 춥다. 문수봉을 오르는 성곽길을 막아놔서 길이 좁아졌다. 미끄럽기도 하고. 상원봉 오르는 성곽길도 보수중이라 일부를 막아 놓아 가파른 곳을 지나가게 해 놓았다.
남장대능선 그늘진 자리가 이미 만석이 되었다. 내가 점심시간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 점심자리가 없으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긴장을 하고 계곡으로 내려와 바위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었다. 맛있다. 등산화 끈을 풀고 신을 벗었다. 한참을 쉬려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고 다시 아래를 향해 출발하여 옹학사를 지나며 시계를 보니 빠르게 걸으면 4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갈등. 빨리? 천천히? 처음엔 빨리 걷다가 나중에 다시 시계를 보고 천천히로 바꿨다. 그리고 허리 상태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했고.
지난 주에 걷지 못한 것을 보충하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의 삽질을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없는 동안에 능선에 싱싱한 첫 꽃봉우리를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이다. 쉼터 바깥 의자에서 삼각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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