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5.9 행궁지 - 대피소

PAROM 2015. 5. 10. 09:49

 토요일이면 늘 걷던 길을 4월부터 한 주 걸러씩 걷다보니 산이 궁금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지만 한참을 못 본 수도권산악회의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공지를 보니 원효봉을 넘는 길이었고 11시에 불광역 출발이어서 그리로 가겠다고 아내에게 했다가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지난 2월 너무 많이 취해 집에 온 바람에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고 또 그럴까봐 경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함께 가겠다고 말 했다가 점심거리도 제대로 얻지 못해 소세지빵 하나에 우유 하나만 달랑댔다. 이제 여름에 가까우니 여럽 옷도 불필요하고 비가 올 것 같지도 않으니 짐을 꾸리기가 간편했다. 손수건과 썬그라스 그리고 늘 넣고 다니는 사탕과 쵸코렛, 여벌의 핸드폰 배터리, 이어폰, 500mm 물  두 병으로 준비가 끝난다. 전에는 늘 가지고 다니던 스틱도 매달고 다니기 불편하고 거의 사용하지 않아 한겨울 눈이 많이 왔을 때 외에는 아예 빼두고 다닌다.


 아내가 출근하면서 혹시 내가 일행을 만들까봐 같이 나가자고 한다. 그래야 시간이 많이 남아 혼자 다녀올 것이란 생각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고, 혼자 다녀오겠다고 안심을 시켜 내보내고 난 후 짐을 꾸리고 여유있게 집을 나섰다. 얼마 전부터 허리가 불편하고 저린 기운이 오금까지 내려와서 매우 불편하다. 침을 맞으러 다음주에나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조금 걷다보니 또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처음에 그런 증상이 있다가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면 깨끗해졌는데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런 것인지 매우 불편하다. 어서 고쳐야겠다.

 

 산으로 가는 길부터 더위가 시작되었다. 버스에 사람이 많은 탓도 있었겠지만 어서 겉옷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입구에 도착하니 9시를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낮이 길어져서 아니 해가 일찍 떠서 그런지 사람들이 움직이는 시간이 빨라졌다. 불광동은 아직도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천천히 걷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내 맘대로 걷자는 생각에 어느새 앞선 사람들을 뒤로 계속 보내고 있었다. 4월25일에 왔을때 다 보이던 중성문이 나뭇잎에 가렸다. 그리고 나뭇잎들의 색이 짙어져 연두색을 찾기가 어렵다. 이제 바야흐로 녹음이 우거진 계절, 벌레가 나오는 계절이 되었다는 모습이다.

 산길 가에 피었던 진달래꽃은 바닥에 떨어져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고 이제 만발한 철쭉은 마지막 남은 진달래꽃과 손바꿈을 하고 있다. 5월이면 피기 시작하는 꽃들이 산을 다시 하얗게, 붉게, 노랗게, 파랗게 수 놓고 있다. 5월 산은 꽃의 시절이다. 보고 걷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산길 초입에서 걱정스럽던 허리가 어느새 말끔해져서 앞사람 앞지르는 재미로 걷다보니 다른 때보다 일찍 남장대지능선에 도착했다. 능선을 따라 계속 걸어 문수봉에서 잠시 사진 찍느라 멈춰 섰다가 다시 성곽을 따라 대피소까지 계속 걸었다.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들을 지나치며 예쁘다는 생각도 하고 가끔 아직도 시들어 남아 있는 진달래도 보며 그리 힘들이지 않고 걸었다. 조금 빨리 가서 위문까지 갈까도 생각했지만 대피소에 도착해 배낭을 여는 순간 여러 계획이 생각이 다 무너졌다. 배낭속에 들어 숨쉬고 있는 대화역 슈퍼에서 사온 서울막걸리 한 병. 대피소 처마 밑에 자리를 펴고 조금씩 마시느라 한 시간이 걸렸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마시다보니 급한 취기도 오지 않고 그럴듯 했다. 처음엔 반만 마시려고 했는데 뜯은 것을 가져오기도 그렇고 내려와서 마땅히 마실 곳도 없고 해서.....

 

 그리고 천천히 내려와 바로 집을 향했다. 올들어 처음 산에 막걸리를 가져갔는데 가을이 되기 전까지 가끔 이럴 것이다. 물가에 자리를 잡는 것도 좋고 이젠 늘 다니던 산길도 바꿀 것이다. 그래야 좋은 풍광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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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 도착(11:47)

(12:49)대피소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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