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 9 대남문 - 대동문

PAROM 2021. 1. 10. 14:15

오지게 추운 날. 마스크 사이로 나간 입김이 모자에 붙어 긴 고드름을 만든 날이었다. 그리고 하산주에 기억이 끊겨 버린 날, 이렇게 정리하면 되는 날.

아침에 눈을 떠 기온을 확인하니 영하 19도다. 2008년 크리스마스에 울란바트르 근교의 체체궁산을 올랐을 때가 산 아래에서 영하 35도, 산 위에서 영하 40도 였는데 이 온도에 산에 못 갈 내가 아니다.

아내가 큰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 놓았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라고 김치와 함께. 그리고 핫팩도 한 개 꺼내 놓았다.

내의를 등산용으로 갈아 입고 두꺼운 양모 양말과 등산 양말을 껴 신고, 새로 산 자켓을 입으니 몸이 둔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추위에 견디려면 어쩔 수 없다. 마스크 까지 끼고 거울을 보니 곰탱이 같다.

승객이 적은 대중교통 덕분에 편하게 산까지 왔다. 추워서 그런지 다른 때 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산객이 별로 없다. 보통 땐 계곡입구에서 겉옷을 벗었지만 오늘은 추워서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늘이 맑다. 꽤 추울 거라는 징조다. 계곡은 꽁꽁 얼어 숨구멍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계곡폭포를 지나기도 전에 발이 시려온다. 두꺼운 양말과 등산화도 소용이 없다. 발가락 끝에 힘을 주어 걸어보지만 힘만 더 든다. 그러다보니 아랫배가 살살 아파 온다. 북한동역사관 앞 의자에 배낭을 벗어 던지고 바로 달려 갔다. 화장실 안은 따스했다. 우리나라 화장실은 세계 최고다.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바로 발이 시려왔다. 전날 눈이 내렸는데도 길엔 눈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길은 눈에 덮여 있어 거의 다니지 않던 새길로 용학사까지 갔다.산영루 앞 와폭의 얼음이 더 두꺼워져 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이 추위에 바람이 분다면 바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대피소갈림길을 지났는데 갑자기 양쪽 고관절이 불편해 졌다. 운동을 하지 못해 몸이 고장난 건지 불안하다. 천천히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오백 미터 정도 걸으니 고맙고도 다행스럽게 아프고 불편하던 곳이 나아졌다. 아마도 역사관 앞에서 나를 추월했던 이를 바짝 쫓느라 무리를 해서 그런가 보다. 고쳐지지 않는 못된 버릇 때문에 몸만 고생한다.

대성사를 지나 대성문으로 가는 길로 오르다 대남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남문에 도착해 문수봉은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성곽을 따라 대성문으로 가기 위해 아이젠을 꺼내 신는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성문 위로 가끔씩 찬바람이 불어와 더욱 춥게 했다. 간신히 아이젠을 신고 성곽을 따라 편하게 걸었다. 대남문에서 보국문까지는 내리막 계단이 많이 있어서 아이젠이나 스틱에 의지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보국문을 지나 대동문으로 향하다가 칼바위에서 넘어오는 성곽 앞에서 아이젠을 벗었다. 역시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핫팩을 쥐고 있기를 여러번. 그러다 칼바위를 넘어온 눈비돌을 만났다.

너무 추워서 어디 앉아 점심 먹기가 부담스럽다. 해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대동문에서 북한동으로 바로 하산. 내려오는 길 용학사 아래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요란하게 엉덩방아를.... 그런데 이상하게 넘어져도 꼭 여자들 앞에서. 괜찮냐고 물어 보는데, 에휴, 아픈 것 보다 창피해서 죽겠다.

크게 넘어지고 나서 조심을 더 하지만 바윗돌에서 여러번 더 미끄러졌다. 스틱을 써야 됐는데, 귀찮고 손이 시려서 하지 않은 댓가를 치른 것이다. 역사관 앞에서 미끄럼 때문에 계곡길을 피해 찻길로 산을 내려와 눈비돌과 숙이네에서 어묵과 막전으로 허기를 때우고 들꽃에 들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5시, 이불 속이다.
빈 속에 마신 찬 막걸리에 기억이 멀리 사라졌다. 그래도 샤워도 했고 집에 와서 막걸리도 한 병 마셨단다.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에휴~~

 

 

07:24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침. 참 춥다.

08:43 산이 다 얼어붙은 것 같다.

물이 흐르던 계곡이 얼음으로 덮였다.

중성문으로 가는 길. 이 앞 사람 쫓아 가는라 고관절 나갈 뻔 했다.

산영루 앞 와폭. 계곡이 얼음으로 채워질 것 같다.

대동문 갈림길 앞의 징검다리가 얼음으로 덮였다.

대남문 아래. 오른쪽 눈 앞 모자에 고드름이 달렸다.

대남문에서 본 구기동계곡. 이렇게 시내가 보이는 날이 많지 않다.

대성문으로 가는 성곽길에서 돌아본 문수봉

보국문으로 가는 성곽길에서 돌아 봤다. 저 가운데 뒤가 문수봉이다

날이 추우니 하늘이 맑아져서 남산타워도 보이고 시내 건물들이 보였다.

엄청 추운 표정이다

남쪽전망대에서 보는 주능선과 남장대지능선

북쪽전망대와 삼각산, 도봉산

칼바위 앞으로 보이는 시내

대동문에서 눈비돌과

역사관 앞에서 본 백운대

산입구 상가.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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