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전에 병원에서 혈압이 높으니 집에서 계속 체크하라는 얘기를 들어 혈압 오를 일을 하지 말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바른 일이 아닌 것 같고, 지난주에 힘들게 걸었기에 오늘은 어떨지 궁금해서 간단하게 배낭을 꾸렸다.
봄으로 넘어가는 때라 아침엔 영하지만 낮엔 10도가 넘는다고 해서 되도록 가볍게 입고 천혜향 한 알, 샌드위치 하나, 뜨거운 둥굴레차 한 병, 이과두주를 채운 작은 플라스크를 넣고 집을 나섰다.
구파발역 계단을 평소보다 가볍게 올랐다. 산으로 가는 704번 버스가 콩나물시루가 된 것을 보고 다음에 오는 8772번을 타고 여유롭게 산성입구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며 보니 사람들이 엄청 많다. 날이 풀리니 산으로 모두 몰려왔나 보다.
지난주 중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런지 계단을 오르는데 그리 힘이 들지 않는다. 나를 지나쳐 가는 이들도 없다. 오늘은 어디로 걸을까 하다가 어제 눈비돌이 산에 온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별일 없으면 정오쯤에 보국문에서 만나는 묵언이 있으니 시간을 가늠해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폭포에서 녹지 않을 것 같던 얼음이 엷은 잔해만 남기고 있고 그 사이를 맑은 계곡물이 졸졸 흐른다. 이제 곧 생강나무꽃을 보겠다.
앞서 가는 사람들을 제치며 길을 올라 역사관 앞에서 겉옷을 벗었는데 바람이 제법 분다. 해서 보온 목적으로 배낭에 넣었던 얇은 가디건을 걸쳐 입고 이어폰을 하고 다시 길에 올랐다. 중성문을 지나는데 눈비돌이 지금 청수장이라며 전화를 했다.
행궁지 갈림길에 도착하니 10시 14분이다. 시간이 여유롭다. 오랫만에 행궁지 뒤의 계곡으로 걷기로 한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낙엽에 발목까지 잠긴다. 길이 푹신하니 걷기가 힘들다. 경리청상창지에서 오르는 길로 가는 비탈길에 낙엽이 너무 많아 지팡이를 만들어 균형을 잡으며 올라야 했다.
남장대지능선으로 오르니 내려오는 이들이 많다. 이길에서 가장 많은 팀을 본 것 같다. 눈비돌이 전화를 했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대성문까지 1.5키로 남았단다. 나는 그보다 덜 남았고 내리막길이니 시간여유가 더 있다.
시원하게 트인 하늘, 나무들 사이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곳들이 보였다. 능선에 바람이 한겨울 만큼 매섭게 몰아쳤는데 미세먼지를 다 몰아 갔나보다. 원효봉 뒤 저 멀리로 용미리묘지도 보이고 그 위의 군부대도 보인다. 덕이동도 깨끗하게 있다. 아주 오랫만에 만난 맑은 하늘. 언제가 돼야 늘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상원봉에서 바윗길로 암문으로 내려가 문수봉으로 갔다. 해가 높아지니 길이 질척해졌다. 문수봉에 서니 한강다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대남문으로 향했다. 청수동암문에서부터 등산객들이 많다. 걷는 사람, 쉬는 사람들을 지나쳐 대성문으로 가며 보니 가슴 앞 버클이 부서져 있다. 힘주어 끼우려다 잘못 끼워서 깨트렸나보다. 눈비돌이 올 동안 기다리며 다른 곳의 수컷버클을 빼서 갈아 끼웠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수컷들이 고난이 많다.
눈비돌이 부인과 함께 올라왔다. 부인은 처음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고 잠시 쉬다가 성곽을 따라 보국문을 지나 대동문으로 걸었다. 눈비돌 내외가 6미터 이상 떨어져 걷는 것이 부부가 맞다고 농담하니 잠시 같이 걷다가 또 사이가 멀어진다. 확실한 부부다.
대동문에서 구파발쪽과 수유동쪽 하산을 두고 고민하다가 광장시장을 가기로 하고 성문을 지나 가파른 바윗길로 내려섰다. 늘 느끼지만 길이 참 험하다. 대신 아카데미하우스까지 1.9키로다. 내려오다 중간에 잠시 쉬며 과일 등 싸 가지고 간 먹거리를 비우고 하산하여 마을버스로 수유역으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광장시장 누이네집으로.... 빈대떡이 최근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다음에도 이곳에 오면 순이네나 누이네에 들려야겠다. 승가사를 넘은 조은네님과 만나려 했으나 하산이 늦어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꾸준히 운동을 해 산을 걸을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체감한 날이었다. 긴 해외여행 중에도 팔굽혀펴기와 스쿼드 등을 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자, 이제 산으로 가자!
폭포의 그 많던 얼음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 생강나무꽃도 필 것이고, 물가 버드나무 가지에 연두빛의 싹이 나올 것이다.
산영루에 왔는데도 아직 해가 낮다.
행궁지 뒤 계곡의 얼음
모처럼 하늘이 맑아 수락과 불암산이 가깝다.
의상능선 너머로 보이는 고양시가 가깝다.
상원봉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지축차량기지
삼각산을 배경으로
청수동암문 앞 절벽사이로 구파발과 고양시가 보인다.
오늘 같은 날이면 저 아래 광화문 로얄빌딩 13층 창가 내자리에서 보였던 대남문 문구멍이 또 보일 것이다.
문수봉에서 증명사진
비봉능선도 찍고
보국문으로 향하다 보현봉을 배경으로눈비돌이 찍었다.
이 소나무 가지가 왜 쳐졌을까?
보국문으로 내려가는 중 칼바위 사이로 노원구가 선명하게 보였다.
대동문으로 가다가 돌아보니 문수봉이 저기 보인다.
칼바위 옆으로 형제봉, 북악, 인왕산이 보이고 남산타워도 보이고 산 사이에 숨은 건물들도 보이고....
아카데미하우스로 내려가던 중....
대성문에서 만난 눈비돌과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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