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오니 비가 온다. 오늘 참 잘했다.
어제 대학 친구 문상을 갔는데 오늘 비 온다고 하는데 산에 갈 거냐는 전화가 왔다. 비가 오던 안 오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산에 다녔으니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비가 언제 오는 지 궁금했다.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정오 경부터 저녁까지 잠깐 올 것 같았다. 딸이 오늘 오후에 집에 오라고 했으니 일찍 다녀오면 비도 피하고 아내와 같이 제 시간에 갈 것으로 생각했다. 해서 6시에 일어나 찬 밥을 끓여 먹고 아내가 싸준 김밥을 배낭에 넣고 7시가 되기 전에 집에서 나왔다.
올들어 가장 얇게 입고 나왔는데도 덥다. 어제 더워서 고생한 기억에 나름 준비했는데 반팔을 입었어야 했다. 조금 더 있다가 물 것들, 찌르는 것들이 생기면 긴팔을 입어야 한다.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런지 아침부터 끈적거리는 느낌이다. 일찍 나오니 차에 승객들이 적어 자리를 온통 차지했다. 주말버스는 늦게 타서 서서 갔지만.
산으로 들기 전에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해가 구름 속에서 가끔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고 있다. 계곡 물소리가 작아졌는데 환한 느낌이다. 계곡 건너 아카시가 꽃을 활짝 피웠다. 눈을 들면 흰 아카시꽃이 내리면 발 아래로 노란 애기똥풀 천지다. 가끔씩 눈 높이에 크고 작은 이름 모를 꽃들이 자신을 부지런히 드러낸다. 아카시는 아직 범용사까지만 꽃이 올라왔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냄새가 기막힌 밤꽃이 피리라.
정오 전에 내려가리라 마음 먹고 대피소로 올랐다. 죽은 줄 알었던 길가 산초가 가장 늦게 잎을 틔우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깔판을 꺼내기 귀찮아 서서 쉬다가 대동문으로 향했다. 올해는 철쭉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얘네들도 해걸이를 하나?
컨디션과 시간을 보아 중간에 탈출하기로 했는데 보국문을 지나고 대성문을 지났다. 아직 열 시가 되지 않았으니 더 가야지 하고 대남문을 향해 성곽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문수봉을 오르니 상원봉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청수동암문에서는 대남문으로 돌아 내려가는 길이 더 멀다. 그렇게 걷다보니 오랫만에 대피소에서 행궁지로 걷게 되었다.
남장대지능선 끝에서 앞서 내려가던 여산객 두 명을 질러 가는데 길을 묻는다. 앞장 서서 내려오는데 돌아보면 보이지 않는다. 줄을 잡고 내려서는 급경사 밑에서 기다리다 보니 이분들 되돌아 간다. 불러서 줄을 잡고 내려오게 하고 이젠 갈림길이 없으니 곧장 내려서면 된다고 하고 행궁지 옆을 돌아 내려오는데 배가 고파 온다. 갈림길 옆 개울가 바위에 앉아 김밥을 먹고 일어서 길로 나서는데 누가 고맙다고 한다. 이런, 십 분이면 내려오는 길을 이십 분 뒤에 내려온 거다. 네 하고 대답하고 부지런히 내려왔다.
그런데 발이 자꾸 돌부리를 찬다. 다리 힘이 빠진 거다. 요사이 신경 쓰이는 일이 너무 많았고 아직도 쓰이는 중이라 피로가 잘 풀리지 않는다. 모두 어서 잘 해결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행궁지 조금 위까지 3시간이 걸렸으니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으면 4시간에 걸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밥도 먹지 않고 그런 것은 의미가 다르다. 시간 측정을 않기로 하고 또 옛날 못된 버릇이 나왔다.
지금 쉼터에 앉았는데 밖에 비가 장난이 아니다. 구름 가장자리가 보이질 않는다. 이제 운정으로 가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오늘 보자고 했던 친구는 이 빗속에 산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ㅎㅎㅎ
집 출발
계곡 입구에 아카시꽃이 만발했다.
계곡폭포가 늙은이 처럼 힘이 없다.
길가에 가득 피어 있는 애기똥풀
이젠 대피소를 1시간 안에 오르는 것이 안 된다. 오늘도 그랬고....
동장대 앞에서 본 문수봉과 남장대지. 이때만 해도 중간에 내려갈 줄 알았는데 저 길을 다 결었다.
칼바위 앞 형제봉과 백악, 인왕, 낙산이 보인다.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여기서 내려가곤 했었다.
대성문으로 가는 길의 전망대가 있는 꼭대기에서 내려가는 길
남쪽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형제봉이 더 가깝다.
삼각산이 뿌옇다.
이 바위만 내려갔다가 오르면 대성문이다. 처음엔 이길을 내려설 때 줄을 잡고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바깥으로 다니니....
문수봉에서 보이는 보현봉
오늘 길 중 가장 높은 곳에서 증명사진 한 장.
상원봉의 이정표
힘이 많이 들었는지....
의상능선 너머 고양시가 희미하다.
내려가다가 보이는 삼각산을 배경으로....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런지 붐비는 길이 휑 하다.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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