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딸과 같이 산길을 걸었다. 아내가 바리바리 싸준 먹거리를 넣은 배낭에 어깨가 뿌러질 것 같았다.
금요일에 딸이 산에 같이 간다고 카톡을 했다. 좋았다. 아내는 일찍 일어나 초밥을 만들고 닭꼬치를 굽고 새우와 호박전을 부쳤다. 딸이 간다고 하니 먹을 것을 단단히 준비한다. 딸이 먹을 찬물까지 보온병에 넣었다. 물론 막걸리 한 병도 따서 딱 맞는 보온병에 담았다. 과일도 한 그릇 담으니 작은 배낭엔 담기지 않아 큰 배낭을 꺼내 담았다. 그 과정에 깔판을 빼 놓아 점심을 먹을 때 찬 바닥에 앉아야 했다.
열차 안에서 만나기로 해서 딸은 운정에서 탔고 나는 탄현에서 9시간 다 되어 탔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출발이다. 대곡역에서 3호선이 도착한다는 사인을 보고 뛰어가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구파발역에 내렸다.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으로 가서 주능선상의 문들 중 하나를 넘으려고 했는데 녀석이 발목이 아파 내려오는 길은 싫다고 하는 바람에 둘레길을 걸으려고 2번출구 앞의 이말산 오르는 길로 갔다.
다른 때보다 이말산에 사람들이 많다. 특히 개를 데리고 걷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하나고 앞으로 내려가서 진관사로 갔다. 딸은 이길이 처음이라 계곡을 보며 좋다고 한다. 진관사 명부전 앞에서는 누군가의 천도제가 열리는 것 같았다. 절을 나와 조금 위쪽 계단길 앞의 계곡 초입까지 가서 물에 손을 담그고는 되돌아 나와 삼천사로 향했다. 개울 건너 은행나무 숲을 지나며 처음 보는 풍경이란다. 산길을 걷지 않으니 처음 보는 풍경들일 수 밖에 없겠다.
보물인 삼천사의 마애여래불을 보고 절을 내려와 북한산성을 향해 둘레길을 걷는데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려 백화사로 가는 길에 있는 마을회관 앞의 정자에 들어갔다. 비를 피하려 들어 왔는데 점심시간도 됐고 배도 고프고 짐도 무거워 쉬는 김에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배낭을 풀었다. 그 사이 지나가던 다른 이들도 비를 피해 정자로 들어왔다. 곧 아내가 새벽부터 마련해준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막걸리 반주를 곁들여 많아 보였던 음식들을 싹 비우고 나니 비도 그쳤다.
북한산성입구 탐방지원쎈터 앞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오르려는 사람들과 내려온 사람들이 뒤섞여 장터를 방불케 했다. 여기서는 역사관앞까지 다녀오기로 하고 계곡으로 들어가니 지난 일주일 동안 내린 비로 물이 많이 불어 있다. 서암사를 지나니 그쳤던 비가 다시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 본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말이 없어서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하늘은 우울하기만 했다. 계곡을 거의 다 올라가 식당이 있던 자리를 지나는데 아는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혹시나 해서 "정도야"하고 이름을 불렀더니 멈춰 돌아본다. 친구가 맞았다.
산 입구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딸과 같이 역사관까지 올랐다가 바로 되돌아 내려와 약속한 식당으로 갔다. 친구와 나는 반대되는 정치성향과 일본에 대한 입장으로 막걸리를 마시는 내내 서로 상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 나이의 사람들을 누가 설득할 수 있으랴! 40년을 넘게 자주 만났지만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 병을 비우고 일어서 딸과 같이 집으로 왔다. 아내는 딸에게 삼겹살을 구워주겠다고 했는데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근사한 밥상이 펼쳐져 있다. 딸 덕분에 산길을 걷는 것도 즐거웠고 입도 즐거웠고 친구를 우연히 만난 즐거움도 함께한 날이었다. 비만 오지 않았으면 더욱 좋은 날이 되었겠었는데....
이말산 오솔길
이말산 오솔길
진관사로 들어가는 길
진관사 일주문 앞에서. 오른쪽 계곡길로 걸었다.
진관사
진관사계곡. 여기서 되돌아 내려갔다.
삼천사
삼천사
보물 마애여래입상
둘레길에 진관사태극기가 걸렸다.
아내가 준비해 준 점심상.
원효봉 아래 계곡
계속된 비로 계곡이 깨끗해졌다.
비가 다시 내려 추원 겉옷을 입어야 했다.
계곡폭포
역사관앞 광장. 여기서 되돌아 내려갔다.
친구를 만난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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