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8.21 보국문 - 대동문, 빗속에서

PAROM 2021. 8. 22. 09:45

한여름 소낙비(기상청에선 '2차 장마'라고)에 온 몸이 다 젖으니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도 곱다. 이래서 여름에도 얼어 죽는가 보다. 비옷 외엔 여벌 옷을 가지고 오지 않아 후회가 된다. 
 
여느때와 같이 새벽에 잠을 깼다. 부지런한 아내는 벌써 일어나 뭔가를 하고 있다. 내 지금의 삶이 편안한 것이 오롯이 아내 때문일 것 같다.
요즘 주식시장이 죽을 쑤는 바람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알면서도 매번 정신을 못 차린다. 
 
갑자기 아내가 오늘 비 경보 내렸다고 산에 가지 말란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엔 조금 내리고 오후부터 20미리로 많이 내리는 것으로 나왔다. 올해엔 비 맞고 걸은 기억이 없다.(늘 기억이 없다) 이 더운 날 비 맞는 것도 상쾌하니 그냥 가는 것으로 하고, 대신 짧게 걷고 오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아내는 벌써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어제 냉장고에 넣은 수박과 물을 더 챙기고 우산과 감마LT자켙도 넣었다. 혹시 몰라 250미리 이과두주 유리병도 넣고 아몬드도 넣고 배낭을 조였다.  
 
아이들이 다 독립하고 나니 집안이 휑하고 공간이 너무 많다. 큰 녀석이 쓰던 방을 내 등산장비방으로 정했다. 물론 기호식품도 거기에 두기로....
요즘은 그곳에서 배낭을 만든다. 
 
산으로 오는 길에 등산배낭을 멘 이들이 안 보인다. 코로나 때문은 아닌 것일 테고 오늘 내리는 비 때문인가 보다. 은근히 산에 들어 깊이 갔는데 퍼 부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리는 비가 딱 옷을 적실 정도다. 이럴땐 귀찮아도 우산을 써야 한다. 
 
계곡을 오르는데 은근히 엉덩이에 마비가 온다. 지난주에 설렁설렁한 운동이 마음에 안 든다는 신호다. 법용사를 지나며 신호가 없어졌다. 언제나 ....
눈비돌에게 전화가 왔다. 비가 이리 많이 오는데 오면 안 될 것 같아 비를 맞지 말라고 하니 도봉산으로 바꾸겠단다. 그럼 나는 대동문 입구에서 내려와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 8키로를 걷는 거다. 이 빗속을.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가기로 한 길이 너무 짧다. 다음 갈림길 까지 가기로 한다. 아니 대성문이나 그 위에서 남쪽으로 가로질러  갈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비가 자꾸 굻어지고 바람도 거세졌다. 쓰고 있는 우산은 장식품이 된지 오래다. 바지에 넣었던 지갑을 배낭 안주머니에 넣길 잘 했다. 다음에도 핸드폰은 방수가 잘 되는 것으로 사야겠다. 비에 젖으니 지문인식이 되질 않아 번호를 누르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건 좀 개선해야 하겠다. 
 
이런 빗속에 산을 내려오는 이들이 많다. 나보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먼저 산에 든 사람들일 거다. 보국문으로 가는 길 앞에서 왼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 속도대로 오르는데 힘이 덜 든다. 기온이 낮아서인가 보다. 보국문에 올라 그냥 되돌아 내릴 수는 없다. 그런데 문 안에서 부는 바람이 내몸을 날릴 기세다. 능선을 걷는 것도 힘들 것  같다. 정릉에서 올라온 이들을 몇 보고 나니 능선을 걷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잠시 쉬고 주능선에 올라 대동문으로 향했다.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이 부니 보통 때 내가 걷던 그런 길이 아니다. 물탕 투성이에 미끄럽고 풀과 나뭇잎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성곽길을 버리고 그 옆 길을 걸었다. 칼바위 갈림길에서 내려가는 길에 새로 놓은 돌계단도 처음 걸었다.
그렇게 걸어 길이 다 물에 잠긴 대동문에 닿았다. 힘은 많이 남았지만 길이 미끄럽다. 내려가기로 하고 걷는데 길에 내가 생겨 빗물이 나와 함께 내려간다. 
 
백운동계곡 큰길로 나왔는데 등산객들이 어쩌다 한 번 지나친다. 내려가는 이는 아예 없다. 비가 많이 내린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느껴진다. 춥다. 부지런히 걸어도 팔에 소름이 돋는다. 계속 내리는 비에 우산도 젖어 함께 물이 비가 되어 뒷목을 적신다. 그게 더 차갑다. 
 
덜덜 떨며 간신히 산을 내려와 숨을 돌릴만 하니 물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버스를 탈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뜨끈한 빈대떡이 눈앞에 맴돈다. 그리고 후라이드치킨도....
어찌 되었냐고?
ㅎ~~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10분 전까지 쏟아지던  그 비는 어디 가고 뜨거운 볕이... 
 
내가 한 시간 전에 산에서 얼어 죽을 뻔 했다고 하면 나만 얼빠진 놈 되겠다.
환절기엔 산을 믿으면 안 된다고 선배들이 말했다. 맞다. 
 
그런데 아직  춥다.  ^^

 

집을 나서며 부터 비는 왔다.

아직은 우산 쓰고 걸을만 했다.

여전히 폭포는 말라 있다. 어제 비가 많이 왔으니 오늘은 물이 넘칠 것으로 본다.

역사관 처마에서 잠시 쉬며 비도 피하고 물도 한모금 마시고....

법륜사 위의 쉼터

중성문 아래 계곡. 물이 많이 줄었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흙탕물이었다.

산영루. 비가 오니 샌객들이 저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보국문. 여기서 되돌아 갈지, 정릉으로 갈지, 대성문으로 갈지 고민하다가 대동문으로 갔다.

대성문 방향이 구름에 잠겨 있다.

대동문으로 가는 길에 물이 내가 되어 흐르고....

이 성벽 너머에 칼바위가 있는데....

대동문이 구름 속에 들었다.

중흥사 앞 개울을 건너는 산객들

내려오면서 보니 역사관 앞에 입산통제 간판이 섰다. 그래도 사람들은 올라갔다.

다 내려왔다.

갑자기 맑아진 하늘. 간물들 사이로 의상봉과 용출봉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