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2.3 대성문 - 문수봉

PAROM 2021. 12. 4. 07:45

추운 산속을 돌아다니다 따스한 쉼터에 들어오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살갗에는 한기가 휘돌아 내린다. 조금 더 있어야 몸이 녹으려나 보다. 손도 곱다. 
 
토요일에 아들 식구들이 온다고 해서 오늘 산에 왔다. 일요일에 오려다 그날은 그냥 온전히 쉬는 것이 다음 일주일이 제대로 돌아가니까. 사실 오늘 산에 오려고 이번주 새벽 운동 루틴도 살짝 바꿨다. 어서 손주들을 보고 싶다. 
 
5시에 깨어 손흥민이 골을 넣는 것을 봤는데 아내가 양파 등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오란다. 툴툴거리며 장바구니를 끌고 가서 사 오는데 바퀴가 뒤꿈치에 자꾸 걸린다. 차를 갖고 다녀올 걸 후회가 막심이다. 한참을 끌고 오다보니 몸 컨디션도 별로로 변했다. 집에서 그냥 쉴까 하다가 그래도 산에 가야 된다는 마음 속 꼬드김에 넘어 갔다.
아내가 깎아 담은 배와 뜨거운 녹차 한 병을 넣고 이제 12월이니 아이젠도 넣었다. 도움 갔다가 가져온 샌드위치도 넣으니 작은 배낭에 자켙 하나 넣을 공간만이 남았다.  
 
5시 일기예보에 기온이 3도 였어서 빨리 걸으면 두껍게 입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조끼를 속에 입고 집을 나섰다. 12월이니 이번 계절들어 처음으로 켑자켓을 꺼내 입었다. 이제 겨울 내내 입을 자켓이다. 시간을 재어 나오지 않았는데도 열차가 바로 왔다. 그런데 승객이 많다. 아, 오늘 금요일이다. 출근하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했다. 다음부터는 평일엔 늦게 나와야겠다. 3호선도 바로 왔고 704번도 바로 탔다.  
 
북한산성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리는데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 것 같다. 오늘 산에서 무조건 조심해 걸어야 한다. 스틱을 가져왔어야 했다. 여긴 우리 동네 보다 더 추웠고 간밤에 비도 많이 내렸나 보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물소리가 우렁차다. 겨울의 계곡 물소리는 한기만 더 돌게 한다. 계곡을 오르는데 산객이 거의 없다. 추운데다 비도 왔고 평일인데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그래도 가끔씩 내려가는 산객들을 마주쳤다. 대단한 분들이다. 
 
어떻게 걸을까 생각하다가 대피소에서 보국문 생각을 하고 기록을 보니 지지난주에 행궁지까지 걸었다. 지난주는 관악산에 갔었으니 오늘은 최소 반대로 걷거나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대성문에서 어디든 갈까? 그래 바로 대성문으로 오르자. 
 
백운동계곡 아래에서는 가끔 물가에 얼음만 보였는데 중성문 아래 데크길 옆 돌길에 얼음이 많이 보인다. 대피소 가는 갈림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 길이 하얘진다. 지난 여름에 알탕하던 작은 소는 너무 맑아 물이 없는 듯하다. 청수동암문 아니 행궁지로 가는 갈림길 한참 아래부터 길이 얼음으로 변했다. 우리 모두 알 듯, 오를 때 얼음길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다르다. 
 
배낭 속에 넣은 아이젠을 꺼낼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스틱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만 후회를 하며 올랐다. 스틱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역사관 아래 계곡에선 바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 위, 특히 중흥사를 지나며 부터 부는 계곡의 바람은 처음인 듯한 느낌에 소리가 마치 "너를 동사 시키겠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오늘 기온이 조금만 더 아래였으면 난 저체온증에 걸렸을지도.... 맑은 하늘인 날은 엄청 춥다. 왜? 북쪽에서 온 맑은 바람이니까. 그것도 북극에서 온 바람. 계곡 나무 위를, 나뭇가지를 드세게 소리내어 흔들여 세차게 흐르는 바람이 너무 춥게 느껴졌다. 
 
보국문 갈림길을 지나 오르는데 힘이 별로 들지 않는 느낌이다. 추워서 그런 거였다. 길은 이제 얼음으로 변했다. 보국사터를  지나자 길은 눈길로 변했다. 눈길이 걷기 제일 좋다. 그래서 대성암까지 쉽게 올랐다. 길은 이제 밤에 눈이 내린 후 아무도 걷지 않은 길로 변했다. 아니다. 개 발자국이 있었다. 다른 계절 보다 쉽게 대성문에 올랐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난 후 눈과 얼음을 핑계로 성곽길을 버리고 아래길로 대남문으로 가 문수봉으로 올랐다. 내 앞에 계속 이어지던 개 발자욱이 나보다 먼저 문수봉에 올랐다. 내려오는 이가 내 개냐고 물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 작지만 들개가 뒤따라 오는 것이 꺼림직해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그만 뒸다.

내려오는 길.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위는 눈길이고 그 아래는 얼음길이니 자빠지지 않고 갈 수 있는 큰 길로 가자 마음 먹고 바로 대성암으로 내려오는데 길이 장난이 아니다. 얼음과 눈이 같이 있다. 길 중간에 샘솟는 물들 때문이다. 나무를 잡고 새 눈과 낙엽을 밟고 대성암으로 내려오니 이제 살았다는 한숨이 크게 쉬어진다. 게으른 내 행동양식이 늘 몸을 피곤하게 한다.  
 
대성암 아래는 오를 때 봤으니 쉬울 줄 알았다. 그리고 앞에 있는 아이젠 신은 사람들을(내 생각엔 오를 때 본 대성암에서 불공을 드리던 분들) 지나쳐 신나게 내려왔다. 하긴 빨리 걸어야 추위를 덜 느끼긴 한다. 부지런히 걸어 경리청상창지를 막 지나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길. 두 발자국 만에 발라당 '쾅' 했다. 우쒸. 얼음 아닌줄 알았는데.... 뒤에 오던 이들에게 창피 당하지 않으려고 아프기도 전에 일어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어후, 창피해. "얼음이었네요, 전 괜찮아요." 그 사람들은 내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절절 매며 길을 내려섰다.


얼음이 있는 계곡의 새길을 피해 용학사 앞의 옛길로 내려오니 그분들이 역시 얼음판 위에서 넘어지고 쩔쩔 매고 있다. 그곳 이후로는 미끄러운 길이 없으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다시피 내려왔다. 마치 기록을 단축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역사관을 지나 오랫만에 계곡길로 하산했다.
산에 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할 수 있는 한 계속하자. 
 
아롬이가 산에 다니기 시작해서 무척 좋다. ㅎ~~

 

 

이제 본격적인 겨울 복장이다.

백운대며 노적봉에 눈이 쌓인 모습이 보였다.

계곡폭포에 물이 많다.

폭포 상단의 계곡길. 이곳은 평화로운 길이다.

중성문으로 향하는 길

노적교를 지나 용학사로 가는 길

산영루 앞 계곡과 비석들

지난 여름 알탕을 했던 작은 소

경리청상창지 앞 길이 얼음과 눈으로 덮였다.

대성암으로 가는 길이 눈으로 덮였다.

대성암. 천도제를 지내는 지 신도들도 보이고 독경소리가 요란했다.

대성암

대남문에서 본 구기동계곡

대남문

하늘이 이리 맑으니 더 춥다.

오랫만에 서울시내도 깨끗하게 보이고...

문수봉 증명사진

나뭇잎이 지고 나니 얼굴바위도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역사관 앞 광장과 쉼터

수문자리에서 본 원효봉과 계곡

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