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내게 큰 육체적 고통을 주었다. 주초에 내린 큰 비로 팔곡동 밭의 토사가 아랫 논으로 쓸려내려갔고 농수로도 막았으니 치워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전한 큰 형님은 팔순 여행 중이라 정선에서 토요일이나 오실 수 있으시단다. 얘기를 듣고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60대 중반이었지만 지금은....
얼마 되지도 않는 밭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참 많이도 벌어졌다. 팔려고 해도 팔리지도 않고 끌어안고 가자니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답답하다.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제헌절 아침에 일찍 아내와 같이 안산 밭으로 갔다. 가서 보니까 복개한 곳이 물에 쓸려 내려가서 한 두어평 정도가 너댓 자 가량 파였고 복토한 모래가 아랫 논과 농수로를 덮었다. 난감하다.
모래주머니를 만들어야 하는데 마대자루를 파는 농협 영농자재쎈터는 휴일이라 문을 닫았다. 큰 형님에게 전화하여 산아래 창고에 가서 빈 푸대자루를 찾아와 수로부터 모래를 치우는데 깨진 독에 물 붓기다.
작전을 변경하여 논에 들어찬 모래를 먼저 치우기로 했다. 삽을 다 찔러 넣어도 논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푸대자루에 흙을 담는 것도 고역이다. 가장 큰 문제는 벼포기 사이에 들어찬 모래의 제거인데, 벼가 상할까봐 한 삽 이상은 들어가지 못했다. 피해 면적이 열서너 평 정도는 되어 보인다.
기온은 30도가 넘고 볕이 따갑다. 내가 허리가 아파 껴안거나 들어올리지 못하니 아내가 양동이에 담은 흙을 파인 곳으로 퍼올리느라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이게 무슨 고생이람. 더위와 볕에 하늘이 노랗다. 고생 끝에 논 가장자리에 쌓인 모래를 대충 치웠다. 이미 옷은 다 땀으로 흥건하다. 아내가 수로에 쌓인 모래를 파여나간 곳에 메꾸기를 수십 차례 한 끝에 좁은 물길이 다시 트였다. 논에서 퍼올린 모래를 담은 크고 작은 자루가 열 댓 개에 달하는데 혼자서는 무거워 들어 올릴 수가 없다.
너무 힘들어 오늘은 대충 마무리하기로 했다. 오전 11시가 넘었다. 아내는 이제 안성으로 가야한다. 일 시작 전에 아내가 따 두었던 고추와 깻잎을 싣고 아들 집으로 갔다. 거기서 씻고 다음날 다시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출근을 했다. 고추와 내가 쓰던 플립4를 주고 집으로 오는데 힘이 든다. 다행이도 길이 막히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깻잎을 씻어 넣고 나니 8시가 넘었다.
새벽 시끄런 빗소리에 깼다. 문이 열렸었는지 부엌 발코니에 비가 들이쳐 엉망이 되었다. 한참을 치웠다. 참 일이 많이 벌어진다. 이것보다 어제 논과 수로를 복구해 놓은 것이 쓸려내려갔을까 걱정이다. 정오 경에 밭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10시에는 나가야 한다. 서둘러 밥을 해 먹고 치우니 시간이 많이 남는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 후 바로 집을 나서 밭으로 갔다. 3일 연휴라 그런지 길이 막히지 않는다.
밭에 가서 보니 다시 모래가 흘러 어제 한 일들의 대부분이 묻혔다. 삽자루와 푸대자루를 들고 논으로 갔다. 혼자 하려니 어제보다 배는 힘들다. 큰 형님이 오시기 전에 논의 흙을 먼저 걷어냈다. 힘들어 죽을 맛이다. 모래주머니 만드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오늘은 만들기만 하고 묶지는 않으니 더 많이 만들었다. 바람 한 점 없고 햇살은 따갑다. 옷은 이미 흙 투성이에 다 젖었다.
약속 시간 보다 이르게 큰 형님이 애들 외숙모와 함께 오셨다.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수박, 커다란 보온병에 얼음물을 잔뜩 가져 오셔서 이른 점심을 먹고 수해현장으로....
만들어 둔 모래주머니들로 둑을 만들었다. 나는 이미 기진맥진해 작은 모래주머니도 들지 못하겠다. 큰 형님이 하루 전에 팔순이었지만 농사를 지으셨어서 그런지 아직 힘도 좋으시고 어찌해야 할 지를 아신다. 그래서 쓸려 내려간 곳을 정리하고 둑을 쌓고 물길을 유도한 후 둑을 조밀한 부직포로 덮고 마무리.
농수로는 어제 수준으로 다시 파냈는데 그 흙과 모래는 그냥 옆 둑방에 놓았다. 둑방길에 누가 콩을 심었는데 대여섯 그루가 쌓은 흙에 묻혔다.
냉수와 수박을 많이 먹었는데도 소변이 안 나온다. 땀으로 다 나왔나 보다. 큰 형님이 밭에서 호박을 따 주시고 외숙모가 고구마줄기, 부추, 상추, 감자 그리고 오전에 먹다 남은 수육을 싸주셨다. 그걸 차에 실으며 보니 차 안이 모래밭이다. 의자며 바닥이며 트렁크며 창문들까지 모두 그렇다. 대충 털어내고 집으로 오는 길이 조금 막힌다. 하품이 나온다. 연 이틀의 막노동 삽 일 덕이다.
집에 도착해 고구마줄기부터 손질을 했다. 어두워졌다. 서둘러 상추도 씻고 부추도 씻었다. 그리고 찬물에 샤워를 하고 어제와 오늘 입었던 흙 투성이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그리고 씻은 부추를 작은 찜기 바닥에 깔고 수육을 올렸다. 막걸리가 없는데 사러 나가긴 피곤해서 싫다.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니 뚜껑이 따인 4홉들이 소주가 있다. 아내가 집안행사 때 쓰고 남은 것이다. 김치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꺼내 소맥을 만들었다. 한 잔 마시니 시원하다. 그런데 바로 알딸딸해 진다. 수육에 네 잔을 만들어 마시고 술상 옆에 널부러졌다. 소주 반 병에 맥주 한 캔 반을 마시다 기절했다. 자다깨니 온몸이 욱신거린다. 어제 미리 청소 해놓길 잘했다.
내일부터 닷새 정도 비가 올 거라는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