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0.12 행궁지 - 대피소

PAROM 2019. 10. 13. 09:55
이제  가을인데 산은 여름을 보내기 싫은 가 아직 푸른 빛을 가득 담고 있다.
영남알프스를 다녀온 지난주 부터는 붉은 빛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다음주나 되어야 중턱이 겨우 변할 것 같다. 
 
한글날 산에 오려고 하다 아내와 대명포구로 생새우를 사러 가서 못 왔는데 오늘 아침에 미안한지 묻지도 않고 버섯을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사과, 뜨거운 녹차와 함께 싸 놓았다. 늘 고맙다. 물을 한 병 더 넣고 집을 나서는데 배낭이 너무 가볍다. 지난주 박 배낭 무게에 몸이 놀랐었나 보다. 
 
가을 바람이 부는 계곡을 조금 걸으니 땀이 난다. 겉옷을 벗었더니 찬기운이 느껴진다. 이럴땐 부지런히 걷는 것이 답이다. 산에 산객들이 심심찮게 있다. 그런데 거의가 쌍쌍이거나 동행이 있다. 나 같이 혼자 걷는 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랫만에 왔으니 어디로 갈까 하다가 제일 편한 길이라 생각하는 행궁지로 발길을 옮겼다. 어쩌면 기가 막히게 멋진 단풍구경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면서.... 산속은 아직 가을색이 이르다. 도토리며 밤은 이미 다 떨어졌는데 단풍은 아직이었다. 행궁지길로 접어들어 능선에 닿을 때에야 겨우 지나는 사람을 한 명 만났다. 늘 이길은 호젓해서 좋다. 
 
오늘 참 희한한 것이 배낭무게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지난주에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랬을까? 배낭을 등에 지는 식으로 걸었으니, 스틱에 의지해 땀을 비오듯 쏟았으니 알만하다. 배낭 무게를 느끼지 못했어도 능선으로 오르며 멈춰 몇 번이나 숨을 골라야 했다. 아니면 무릎에 손을 짚고 오르거나..... 이젠 4시간 안에 늘 다니던 코스를 완주하긴 틀린 것 같아 아쉽다. 
 
상원봉을 지나 문수봉에 오르니 먼저 와 있던 이가 어쩌고 저쩌고 아는 체를 한다. 내가 보기엔 문수봉을 처음 오른 이 같아 보인다. 대꾸를 하지 않고 증명사진만 찍고 바로 대남문으로....
능선을 따라 보국문에 가니 조금 쉬고 싶다. 그런데 그냥 통과하고 대동문도 그대로 지나쳤다. 그러니 시단봉 오르는 돌계단을 두 번이나 쉬고 올랐지.  
 
오늘 중요한 것 두 가지를 확실히 알았다. 대동문 앞 표지판에는 대피소까지 1.3키로 대남문까지 1.6키로라고 표시 되어 있다. 그런데 대피소에는 대동문까지 1.4키로 란다. 기준이 다른가? 계곡입구에서 대피소까지가 4키로, 대피소에서 대남문 3키로, 대남문에서 상원봉까지 0.6키로, 상원봉에서 계곡입구까지 5.2키로면 모두 12.8키로고, 정거장에서 계곡입구까지 왕복 1키로니 거의 14키로의 거리다.
 
이제 오늘부터 내가 걷는 길의 정코스가 바뀌어야 된다. 동장대를 지나 대피소로 가는 길 중간에 작은 봉우리로 가는 성곽길이 오늘 눈앞에서 폐쇄되었다. 별 이상 없던 곳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난 태풍에 소나무가 쓰러졌던 것 빼고는 문제가 없던 곳인데. 오히려 봉우리에서 보는 서울 동북부 경치가 좋았는데. 그리고 보국문 전망대까지 유일하게 삼각산을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참 아깝게 되었다.   
 
아쉬움에 대피소에 닿으니 가을 볕이 따스하기 그지 없다. 앉으면 졸릴 것 같다. 지붕 아래 자리를 펴고 배낭을 내리고 앉았다. 옆에 먼저 와 자리를 잡으신 분들 중 반은 자고 있다.
식사를 하고 난 후 마신 따스한 차가 정말 마음과 몸을 편하게 했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니 그런 것도 있으리라.  
 
또 하는 얘기지만 내려오는 4키로의 길은 없으면 좋겠다. 빨리걸었지만 삼사 년 전 오를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다리도 휘청거리고. 이젠 천천히 내려올 일이다. 
 
쉼터에 닿으니 어디 갔었냐며 반긴다.
한동안 오지 않았었나 보다. 
 
확실히 가을이라 건조해서 옷이 빨리 마른다. 햇살이 아직 뜨거워 그늘을 찾는다.


산 입구는 가을 기색이 없다.

중성문 아래 계곡. 나뭇잎이 거의 떨어졌다. 태풍 때문에 단풍 들 새가 없었다.

용학사로 가는 옛길의 단풍. 수줍게 숨어 피어 있다.

남장대지능선으로 오르는 바위길에서 돌아 본 삼각산

주능선 너머로 보이는 수락과 불암산.

날이 맑아 집 옆의 제니스가 선명하게 보였다. 의상능선도 다음주엔 붉어질 것 같다.


상원봉 근처에서 본 삼각산

문수봉에서 본 구기동


                                             대남문에서 대성문으로 가는 성곽길 꼭대기에 핀 단풍

보국문으로 가는 중간. 오른쪽 봉우리 끝에 남쪽전망대가 있다.

보국문 내려가는 마지막 계단길에서

이 표지판에 의하면 대피소에서 정상까지 1.8키로인데 대피소 앞 표지에는 1.7키로로 되어있고 이곳까지는 1.4키로로 적혀 있다.

대피소. 지붕 아래 앉아 있는 분들 옆에 자리를 폈는데 그 옆에서 자고 있는 분들을 한참 후에야 봤다.

카메라 명도와 채도를 조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