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5.10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0. 5. 10. 18:40
어제는 모임이 있어서 오늘 산에 다녀왔다.
금요일에 아들이 덕산막걸리 20병 한 상자를 가지고 와서 다섯 병을 식구들과 마셨고, 어제 모임에서 두 병을 넘게 마셔서 오늘 컨디션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창밖에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운동을 못하고 먹기만 해 5키로가 늘었다. 해서 비가 와도 산에서 땀을 흘려야 할 터였다. 하지만 내일부터 새로 일주일이 시작되니 무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모처럼 쉬는 날인 아내는 오늘도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놓고 수박을 몇 조각 담고 비가 와 추울 거라며 뜨거운 둥굴레차를 보온병에 담아 놓았다. 늘 고맙다. 
 
비가 막 그친 후라 쌀쌀하고 눅눅하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집으로 가서 마스크를 쓰고 탄현역으로 갔다. 지난 연휴에 이태원클럽들에서 퍼진 코로나19 때문에 느슨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동안 잘 지켜야한다. 
 
계곡 입구에 들어서니 구름이 산 중턱까지 내려와 있다. 물안개와 같이 몰려오는 물소리에 이가 시리다. 불어난 몸무게가 다 허리에 붙었는지 배낭허리끈이 불편하다. 다행히도 허리는 처음에만 찌릿하고 이내 조용하다. 
 
역사관 앞에서 쉬는 것이 이젠 정례화 되었다. 의자가 다 젖어  있어서 덜 젖은 자리를 골라 쿠션을 꺼내 깔고 앉는다. 한 숨 돌린 후 이어폰을 꺼내 끼고 물 한 모금 마신 다음 다시 걷는다. 
 
한 청년이 꾸준히 거리를 유지하며 쫓아 온다. 올라가며 사진 몇 장을 찍는 사이에 지나간다. 간격이 점점 더 벌어졌다. 그 청년이 부왕동암문 갈림길 이정표 앞에서 백운대 가는 길을 묻는다. 오늘은 대피소로 가기로 작정했으니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냥 길을 알려줄 걸, 나보다 빨리 걷는데 내가 힘들어 죽거나 저 청년이 지루할 것이었다. 결국 죽어라 올라간 바람에 대피소에서 쓰러질 뻔 했다. 청년이 고맙다고 포도즙 한 봉지를 주고 갈 길을 갔다. 
 
이제 천천히 걷기로 한다. 보국문에서 내려갈 것이니 크게 힘들 곳도 없다. 그렇게 걷는데 마른 여산객이 휙 지나쳐 간다. 따라 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다. 대피소 오르느라 힘을 너무 썼다.  
 
능선길은 구름 속이었다. 옅은 분홍빛을 띤 철쭉이 밤새 내린 비에 많이 떨어져 지난주 남장대지능선길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땀이 나지만 티셔츠 하나만 입어서 쌀쌀했다. 길이 다 젖어 있어서 돌계단과 바위길을 되도록 피했다. 미끄러짐 조심에 요즘 부쩍 발아래가 어두워진 것도 이유 추가다. 
 
행궁지 갈림길 공터에서 배낭을 벗었다. 11시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이지만 더 가면 먹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뜨거운 차 부터 한 잔 마셨다. 속이 따스해졌다. 바람이 불지 않고 기온도 높지 않아 땀에 젖은 옷이 마르지 않았다. 뜨거운 차와 김밥을 번갈아 먹었다. 
 
그리고 늘 그러듯이 죽어라 내려오는 길, 5미터 앞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모자를 눌러 쓰고 일부러 부딪쳤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승근이다. 참 오랫만에 산에서 만났다. 대장암 수술을 하고 열두 번의 치료를 마쳤단다. 얼마전부터 다시 산에 오는데 어서 다리에 근육이 붙어야 한단다. 그 좋아하던 소주를 5년 동안 마시지 못한단다. 빨리 완쾌되라고 하고 승근인 일행들을 쫓아 오르고 나는 집을 향했다. 
 
오늘부터 2주 동안 식도염 치료를 위해 금주를 할 것이다. 늘 쉬던 쉼터를 그냥 지나치는 기분은 죽을 맛이다.
이제 금주 첫날인데 집 냉장고에 맛있는 덕산막걸리가 가득이다. 이게 뭔 아이러니냐? 에휴....


집을 나서며....

이제 시작이다. 구름이 중턱을 내려섰다.

어제부터 아침까지 내린 비로 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이젠 여기서 쉬어가는 것이 정례화되었다.

중성문 아래 계곡. 계곡이 깨끗해 지고 수량도 많이 늘었다.

중성문

산영루도 구름에 잠겼다.

대피소. 쓰러지지 않고 오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참 좋아하는 이 길이 구름에 휩싸였다.

                                          나무와 땅에 핀 철쭉.

철쭉을 지나 구름 속 동장대에 간다.

대동문. 늘 이곳은 그냥 패스다.

보국문 위에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다가 오르는 승근이를 만났다. 어서 완쾌하길 빈다.

역사관 앞에서 본 삼각산. 안 보인다.

서암사. 천막 담장을 치웠다.

아침 보다 구름이 조금 더 올라갔다. 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