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6.14 보국문 - 대성문

PAROM 2020. 6. 16. 09:32

보름만에 다시 이 자리에 앉았다.

지난주 토욜엔 화천 사내면 계곡에서 7가지 이상의 술로 떡이 됐고, 텐트에서 자다가 매미나방 애벌레 독이 올라 가려워 나흘을 고생했는데, 주중 낮 조차 새로 한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18일이 첫돐인 첫 손주의 잔치를 어제 안산에서 해서 거기에 다녀오느라 일요일인 오늘 산에 왔다.
음력 오뉴월엔 집안 행사가 많다. 어쩌면 오늘이 이달에 산에 오는 유일한 날이 될지 모르겠다. 생일에, 제사도 있는데 일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 아내가 여행도 가 보자고 했으니....

어제 막히는 길을 어두워져서 운전하고 집에 오느라 많이 피곤해서 일찍 잤더니 4시에 깼다. 온몸이 마디마디 늘어지는 것 같다. 일어나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달랬다.

오랫만에 쉰다고 늦잠을 잔다던 아내가 내 부스럭 소리에 깼다. 이런 땐 참 미안하다. 그럼에도 아침 밥에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 집을 나섰다. 수선한 아크 등산화를 신고 나서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다시 들어갔다 나왔다. 한두 번이 아니다.

그바람에 늦었는데 탄현역에서 경의선이 바로 떠났고 대곡역에서 3호선도 바로 떠났다. 다행히도 구파발역에서는 8772번이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 게다가 자리도 널널하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산에 들어서니 조금 더 시원하긴 한데 물소리가 없다. 계곡에 겨우 물이 흐른다. 물속에 낙엽이 많다. 비가 많이 와서 바닥을 쓸어 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를 괴롭혔던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기분이 좋다. 보름 만에 이렇게 자연이 바뀌는구나 싶다.

밤꽃이 피었나 보다. 냄새가 계곡입구에서 부터 코를 홀린다. 나는 유쾌하지 않지만 끌리는 사람들도 있으리리라.
오늘 무척 더울 것인데 산에 산객들이 전 보다 무척 많다.

새로 산 미스테리렌치 배낭을 멨는데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자꾸 흔들고, 끈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몸에 맞춰 보았다. 허리벨트와 겉 덮개에 지퍼가 있으면 더 좋겠다.

다리가 무겁다. 주중에 쉬지를 못해 그런가 싶기도 하다. 아니 그것을 핑계로 삼고 싶다. 금요일 저녁에 대학 동기인 인수형과 현철이가 동네에 와서 늦게 까지 마신 후유증 때문이겠지.
그리고 안산을 다녀 왔으니. 그래도 나온이를 보면 피곤이 사라진다. 어쨌던 자꾸 보고 싶다. 나이 들어 이런 게 낙인가?

끌리는 다리를 토닥여 겨우 보국문에 올랐다. 계획은 여기서 대피소로 가는 거였다. 그런데 능선의 경치는 대성문 쪽이다. 힘들 것을 각오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역시 산은 날 늘 즐겁게 한다. 해는 밝게 빛나고 나무잎은 한껏 푸르름을 자랑한다. 바람이 불면 좋은데 그건 사치다.

대성문 문루에 앉아 배낭을 풀었다. 꿀맛 같은 휴식이다. 쉼을 마치니, 대남문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하지만 내일 새벽에 운동하고 병원에 가고 일도 해야 한다. 참고 아래로 내려섰다.

그저 짧기만 바라는 내리막 길을 걸어 중성문 앞에서 눈에 익은 모습과 마주 쳤다. 중고동창인 승근이다. 일행이 셋이나 있는데 수다 떠느라 뒤쳐지는 줄도 모른다. 대장암 수술을 6개월 전에 했으니 이제 4년 반 후면 소주를 한 잔 할 수 있다고 매일 날짜를 센다고 한다. 참 건강하게 오래 재밌게 살 친구다.
승근이와 헤어져 내려오다 또 눈에 들어오는 이가 올라온다. 초등동창인 운호다. 혼자 몸 풀러 왔단다. 한참을 떠들다 산 아래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짧기를 바랐던 내리막길이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게 했다. 발이 자꾸 돌뿌리에 걸린다. 힘이 없단 얘기와 다름 아니다.
그러고보니 몸도 조금 더 힘든 것 같다.

쉬다가 가기로 하고 오랫만에 쉼터에 들렀다. 누군가 내가 늘 앉는 자리에 있다. 다른 곳에 앉았지만 편하지 않다. 선객이 간 후 옮겼다. 역시 편하다.

운호가 전화했다. 내려온다고.
이제 기다려야지.

 

들꽃에서 만나서 막걸리를 4병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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