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거르고 산에 오니 더 반갑다. 그런데 내마음은 전혀 편치 않다. 걷는 내내 근심걱정으로 쉴 틈이 없었다. 월요일에 화일이 제발 제 자리를 찾아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화요일의 검사결과도 좋게 나오길 바란다.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삶이 다 큰일이 난다. 내시경 검사를 핑게 대고 오늘 산친구들 모임에 가지 않았다. 웃고 즐길 기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히 정한 일이 없는 날이라 산에서 점심거리로 아내가 빵 반 쪽과 머쉬드포테이토를 해 놨다. 수박은 씨가 있다고 주지 않았다. 대신 우유 한 팩을 꺼내 놓았다.
일기예보가 종일 흐린다고 나오기에 하늘을 보니 구름이 두껍다. 비가 내릴 것같은 날씨다. 이럴 땐 비옷과 우산을 챙겨야 한다.
탄현역에 가니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조금 일찍 나올 걸. 열차에 타니 빈자리가 없다. 일찍 나와 앞 차를 탈 걸. 대곡에서 갈아 타고나서 부터는 편하게 산으로 갔다.
산으로 들어가니 물소리가 우렁차다. 계곡 가득 물이 흐른다. 아침까지 내린 비 때문이겠다.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산에 와야 하는 까닭을 웅변해 준다. 그순간 잠시 고민을 잊는다.
울적해서 이어폰도 꺼내지 않았다. 그럴 기분이 아니다. 걷는 내내 여러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눈앞도 뿌옇다. 조심해서 걷지만 돌뿌리에 숟하게 걸려 휘청거렸다. 대성문으로 올라 짧게 걷고 일찍 내려가다가 물가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해 봐야 나올 대책도 없지만 그렇게 걷다 정신 차려 보니 발이 행궁지로 가고 있다.
코로나가 오고부터 운동을 하지 않아 시작된 살찌기가 70키로를 넘었었는데 지난달부터 한 일 때문에 다시 옛 몸무게로 돌아왔다. 아침에 운동을 하러 갈 때 1984년에 산 7부 등산바지를 입고 간다. 아침 외에는 잘 먹지 못해 그런 것 같아 몸에 미안하지만 다행이다. 그런데 배가 고파 온다. 요새 잘 먹지를 못해 문제가 있다. 조금만 더 먹으면 배가 불러 쩔쩔 매고....
톡을 보니 산에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들 모임이 깨졌다. 나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미안하다.
하늘은 어두운데 시야는 확 트였다. 공기가 맑고 시원한 것이 비가 먼지를 다 씻어가서 그런가 보다. 이런 맛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어라 산에 오는 거다.
내가 사는 동네에 큰 불이 났다고 문자가 불이나케 온다. 공장에서 불이 났으면 집 창문을 닫았어야 했는데....
행궁지에서 부황사 가는 길로 가다가 남장대지로 올랐다. 집 옆 제니스빌딩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선명하게 보인다. 저 건물이 준공된 후 처음이다. 맑은 날이라 혹시 사진 쓸 일이 있을까 하여 픽셀을 최대로 하여 찍었다.
문수봉을 지나 성곽을 따라 걷는데 대성문을 지나니 해가 나왔다. 일기예보가 또 틀렸다. 어제도 그랬는데 또.... 장마철 일기예보는 엉망이다. 걷는 김에 대피소까지 가려다가 보국문에서 내려섰다.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비에 길이 많이 패였다. 흙길 돌길 다 자연 앞엔 버티는 것이 없다. 대서문 위의 찻길도 차가 못다닐 정도로 차도블럭이 떨어져 나갔다.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해 고개를 돌려보니 백운동암문 근처에 머물고 있다. 큰 사고가 아니길 빈다.
보국문 아래 계곡에서 장마철인데 아직도 매미나방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참 보기 싫은 놈들이다.
역사관을 지나 계곡길을 피해 큰 길과 자연관찰로로 내려왔다. 망막 앞에 낀 막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어야 했나보다. 내려 딛을 때 잘 보이지 않아 큰 일이다.
일 하는 곳을 비우기가 쉽지 않은데....
그러고 보니 칼 댈 데가 많네. 이게 뭐야, 다 늙어서. ㅠㅠ
삶의 마감을 위한 정리는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것도 해 둬야지. 싫지만....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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