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랫만에 햇살이 비친다. 하늘이 겨우 한 뼘만 열렸는데도 세상이 훤하다.
장마가 이제 끝났다고 하는데 믿어야 되는지? 아니 믿고 싶다. 올핸 너무 긴 장마였다.
어제 오려고 했는데 집에서 나와야 할 시간까지 비가 그치지를 않아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리 한 후에 푹 쉬었고, 오늘 배낭을 꾸렸다. 지난주에 우산을 챙기지 않아 비를 맞았기에 오늘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우산부터 챙겼다.
요즘 일하는 곳에서 매상도 올려 줄 겸하여 4개에 만 원짜리를 사서 차에 두었었는데 그중 하나 밀러를 배낭에 챙겼다. 금요일에 산 밥부리또와 참외 한 그릇, 물 한 병으로 등산 준비는 끝이다.
집을 나서니 길이 젖어 있다. 새벽에 비가 내렸나보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무겁지는 않아 보인다. 배낭에 넣은 우산으로 든든한 마음이다. 산으로 가는 길에 배낭을 멘 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니 다들 나섰나 보다.
계곡에 들어가는데 발길이 무겁고 숨이 턱에 찬다. 마스크를 벗어도 나아지질 않는다. 요사이 운동하면서 걷기를 하지 않아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기 편한 근력운동만 한 벌을 받나 보다.
계곡입구가 흰 포말과 물소리로 뒤덮였다. 참 오랫만에 보는 장관이다. 중간에 있는 폭포도 왼쪽 바위를 타고 넘으며 천둥소리를 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공기는 너무 습해 힘이 든다 하는 순간 바로 땀과 어울려 옷이 금방 젖는다. 오늘 고생 좀 할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내일부터 또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하면 일주일이 괴롭다. 조금만 걷자고 다짐을 했다.
길이 많이 패였다. 지난주에도 그랬었는데 오늘은 더하다. 폭우 때문이리라. 그래도 많이 내린 비에 비하면 다행스런 정도다. 길을 보수하려면 공원 직원들이 고생할 것이다. 나도 공단에 자원봉사 지원을 해 봐? 떨어질 것 같다.
비가 그쳤지만 무척 습해서 땀에 옷이 순식간에 젖는다. 빨리 마르는 옷이지만 마를 겨를이 없다.
보국문 오르는 길이 왜 그리 먼 지, 문 위 돌 난간에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옷이 다 마르기 전에 일어났다. 몸이 식으면 다음 발길이 무거워지니까.
이제 거의 내려가는 길이니 마음이 편하다. 성곽을 따라 걷는데 가끔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 몸을 식혀 준다. 짜릿한 시원함 이맛에 산에 오는 거다. 참 오랫만에 능선에서 정말 한뼘짜리 구름 사이로 해가 났다. 대피소까지 세 번 한 뼘짜리 볕이 났다. 경사다.
대피소에서 깔판을 펴고 앉았다. 그러나 배낭을 풀진 않았다. 산영루 위 바위에 자리를 잡으려고 마음을 잡아서 였다. 비 때문에 물러지고 파인 길에 발이 빠져 등산화에 훈장을 달았다. 계곡물에 정리를 했지만 내려오며 돌뿌리에 걸려 다시 그 모양이 됐다. 바지는 빨아야 할 정도다.
산영루 위 바위에서 배낭을 벗고 먹거리를 펼쳤다. 그래봐야 부리또, 참외, 물이다. 시원해져야 할 '밀러'는 계곡물 속으로 갔다. 앉을 자리가 불편해 흥이 나지 않는다. 허리가 아파 와서 빨리 먹고 일어나야 했다.
일욜이니 이시간에 마주치던 친구들 생각이 났다. 동수는 일찍 둘레길을 걸으니 만날 수 없을 거고, 승근이는 휴가 갔는지 안 보였다. 오늘은 다 못 보는가 보다 하고 역사관 앞을 지나는데 운호가 손을 흔들고 온다. 오랫만에 보니 더 반갑다. 벤치에서 한참을 얘기하다 헤어졌다. 오래도록 산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무조건 건강해야 하니까.
요즘 봉사하긴 하지만 많이 남지 않은 귀한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오늘도 또 느꼈지만 눈이 흐려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수술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여행과 차박, 분위기 있는 캠핑....
같이 해 줄 아내와 친구들이 있을 때 해야 하는데....
P.S. 집에 가는 길에 고교 동창의 부고를 받았다. 광화문 로얄빌딩 시절에 변호사회관 1층 국민은행에서 한참 봤고 삼사 년 전인가에 청수동암문 앞에서도 만났었는데.... 이제 내 남은 생은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닌가 보다.
집 출발
원효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계곡. 수구문이 있던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계곡 폭포. 왼쪽 바위를 넘는 물을 본 적이 언젠가 기억이 안 난다.
중성문 아래 계곡에도 폭포가 생겼다.
산영루 앞 와폭.
저 위쪽 소에서 알탕을 했었다.
보국문 위에서 남쪽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를 배경으로.
칼바위 옆으로 보이는 시내. 잘 안 보인다.
대동문.
동장대 앞 표지판. 저 뒤의 산은 다 구름에 가렸다.
드디어 대피소에 도착했다.
산영루 앞 와폭 바위에 배낭을 벗고 자리를 잡았다.
노적사 정자 앞 계곡
다 내려오니 구름이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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