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추워서 몸이 덜덜 떨고 있다. 여름을 장마로 다 보낸 후 늦여름, 어쩌다 비가 오지 않은 날, 산에 왔는데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맞은 비에 속옷까지 다 젖었고 몸은 와들와들 떨리고 커버를 씌운 배낭도 거의 젖었다. 어제만 해도 볕이 나서 햇살이 따갑고 덥고 푹푹 쪘는데.
이번주는 참 좋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주식들이 다 많이 내렸고 두 달만의 상가 모임도 시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일하러 간 곳에서는 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했다. 해서 오늘 산에 오기 위해 막걸리를 마시지 않아야 했는데, 잊으려고 한 병을 비워야 했다.
오늘 새벽에 아내가 일하러 멀리 간다고 해서 차로 일산읍내까지 태워다 주고, 집에 와 배낭을 꾸렸다. 이미 아내가 다 담아 놓은 것을 배낭에 넣는 것이지만 오늘은 그것도 제대로 못했다. 빼 놓은 것이 있으니. 늘 맘이 편치 않으면 벌어지는 일이다.
어제 밤에 만들어 놓은 머쉬드포테이토(내가 참 좋아하는)와 과일, 얼음물, 빵을 넣고 어제 미리 챙겨 넣어둔 700미리 캔맥주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챙긴 후 집을 나섰다. 혹시하는 생각에 동수에게 카톡을 넣었다. 같이 걸으면 참 좋아서.
집에서 7시 40분도 안 되어 나오니 전철과 버스 다 널널하다. 산으로 들어가는데 계곡이 지난주 보다 좀 헐거운 것 같다. 그래도 매미란 놈은 죽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번주는 집주변인 탄현동과 야당동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다녔다고 하여 집에서 몸 풀기만 하고 헬스장을 쉬었다.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무조건 땀을 좀 많이 빼야 한다.
계곡길 반을 걷기 전에 늘 허리가 신호를 보냈는데 오늘은 가만히 있다. 대박이다. 근력을 키우며 허리 관련 코어 근육 운동을 한 덕인가? 아무튼 좋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역사관까지 올랐다. 거기서 잠시 쉬며 따라갈 이를 찾는데 읍따.
오늘은 제대로 걷기로 했으니 14키로 짜리다. 행궁지로 향했다. 길가에 있는 산딸나무를 살폈다. 아직 열매가 없다. 붉게 익으면 채집을 할거다. 왜? 말려 차로 마시면 내게 좋단다. 잎도 좋다는데.... ㅋ~~
남장대지능산을 걸으며 세 팀. 여섯 명을 만났다. 그것도 1명, 2명, 3명으로. 이러긴 처음이다.
그런데 이 숫자가 계곡길에서도 그랬다. 게다가 저 멀리 4명이 올라가고 있었고 올라갈 즈음 5명이 지나갔다. 이런 재미보다 주식이나 올랐으면.... ㅋㅋㅋ
산아래에서 그랬듯이 능선에서도 구름에 가려져 산봉우리들이 보이질 않았다. 구름에 쌓인 산은 신비스럽다. 해서 이런 날은 무조건 좋다. 눈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발아래가 잘 보이지 않지만 늘 걷던 곳이니 돌덩이 하나까지 신경 쓰며 걸었다. 아픈 곳이 없이 다리에만 신경 쓰니 걱정할 것도 없다. 죽을 때까지 이랬으면 좋겠다.
상원봉에서 내가 사는 동네를 보니 허옇다. 구름이 덮었다. 문수봉에서도 그랬다. 구름에 사방이 보이지 않는데도 등산객들은 계속 올라 온다. 도망 가야겠다. 물 한 모금과 초코렛 한 조각으로 몸을 달래고 대남문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성곽을 따라 대피소까지 가기로....
여름엔 이렇게 걷는 것이, 겨울엔 대피소에서 행궁지로 걷는 것이 좋다. 아직 여름이니....
보국문을 지나 걷는 데 해가 언뜻 비치다 이내 하늘이 검어졌다. 그리고 계속되는 천둥소리. 불안하다.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그래봐야 굼벵이 걸음이지만. 대피소에 도착해 쉬려다 계속 울리는 천둥소리에 배낭을 다시 메고 서둘러 하산을 했다. 내 딴엔 비오기 전에 찻길까지 가겠다고....
대피소에서 내려오다 보니 등산화와 바지가 진흙에 엉망이다. 계곡에서 닦는데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다. 게다가 방울이 크다. 큰일 났다. 오늘도 우산과 블루투스를 챙기지 않았다. 바보.
산영루에 이르니 비가 아니라 이건 양동이로 쏟아 붓는다. 바로 앞에서 배낭커버 씌우길 참 잘했다. 불안하다. 핸드폰에 물이 들어가거나 버스카드가 젖어 안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한다. 그래봐야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산에 다니면서 우비를 입느니 비를 맞겠다 했는데, 비를 맞으니 춥다. 추우니까 우비를 입고 싶었다.
중성문 아래에서 비를 한참 피하다 그칠 기미가 없어 그냥 내려오는데 역사관 앞 작은 공간에 비를 피하려 모여 있는 사람들이 참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뒤돌아 몇 걸음 가서 사진을 찍고 모른 척....
그런데 계곡 폭포를 지나는데 빗줄기가 약해진다. 조금 더 걸으니 비가 안 온다. 내가 어렸을 적 같이 개구장이 날씨다. 수암사를 지나니 비가 그쳤다. 불당 처마 밑에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서정적이다. 그런데 나는 물에 빠진 생쥐다. 50년도 넘게 만에 이런 일을 당했다.
갑자기 빈대떡 생각에 순이네로 들어가 순식간에 비웠다. 젖은 옷에 너무 추워서.... 추워서 이가 부닥친다. 뜨끈하고 얼큰한 것이 먹고 싶다. 그리고 들꽃이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다. 이제 가야 되는데 또, 비가 온다. 겨우 옷이 말랐는데 그것도 많이. ㅠㅠ
다행이다. 그쳤다. 어서 집에 가야겠다. 왜 갑자기 마누라가 보고 싶지? 오늘도 늦게 올텐데....
자유로마트에서 막걸리를 한 병 사서 나오는데 또 비가 퍼 붓는다. 비닐 한 장 둘러쓰고 집으로 와 더운 물로 샤워하니 세상 참 좋다.
산 제일 아래에 있는 서암사. 아직 짓는 중이다. 서암사에서 보는 원효봉.
아침에 본 계곡폭포. 저랬던 폭포가 내려올 때는.......
중성문. 내려올 때는 저 문 아래에서 비를 한참 피했지만 그치지 않아 그냥 맞고 내려와야 했다.
행궁지 뒤에 능선으로 가는 나무계단. 오래되어 많이 무너져 내렸다. 다른 길로 다니다 오랫만에 이길을 걸었다.
건너편 주능선 위에 동장대가 보인다.
의상능선 나월봉. 저 뒤로 증취봉과 용혈봉이 보인다.
남장대지 옆 너른바위에서
길가에 많이 보이는 이 꽃 이름은?
청수동암문 위로 구름이 무척 빠르게 흘렀다.
문수봉을 아래에서 보았다.
저 뒤에 삼각산이 보여야 하는데....
내가 요즘 지고 다니는 미스터리렌치25 배낭이다.
여기를 올라오고 나서 현기증이 나 앉으려고 했는데 못 앉고 서서 버텼다.
제정신을 차린 후에
방금 지나온 주능선. 저 뒤 능선은 남장대지능선이다.
북쪽전망대
동장대
대피소. 잠간 앉았다가 천둥소리가 심해지고 가까워져서 서둘러 내려섰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속옷까지 이미 다 젖어서 배낭과 핸드폰, 지갑만 성하면 됐다.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은 이들도 다 젖기는 매한가지였다.
아침의 폭포와 물색과 물량이..... 비는 거의 그쳤는데 젖은 모습이 초라해 웃고 있다.
구름이 비로 내려서 하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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