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9.26 행궁지 - 보국문

PAROM 2020. 9. 27. 12:33

지난주 토요일에 손주가 왔고 일요일엔 약속이 있어서 산에 오질 못해 이번엔 꼭 와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다음주엔 추석이 있어서 주중에 두어 번 올 수도 있지만 그땐 그때고, 이제 가을로 향해 가고 있는 나무들을 가까이서 더 느끼고 싶기도 했다.

요즘 하는 일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잘 보이지도 않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힘도 없고 무엇보다 기억력이 떨어져 문제였다. 낮, 한참 움직일 시간에 움추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느꼈고, 내게 많이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나를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도 생겼다.
이제 곧 하루가 내 시간이 된다. 잘 써야 한다.

아내가 싸준 포도와 유부초밥을 배낭에 넣고 책장서랍에 두었던 중국술 한 병도 꺼내 넣고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섰다. 조금 쌀쌀했지만 겉옷을 입을 정도는 아니어서 배낭에 바람막이를 넣었는데 점심을 먹느라 쉴 때 깔따구를 막는 용도로 요긴하게 썼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지난번에 까지 들렸던 계곡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단풍이 들지 않은 잎을 많이 떨구고 있다. 덕분에 숲에서 하늘이 더 많이 보인다. 계절은 시간에 따라 여지없이 오고 있었다.

전날에 산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점심 때 즈음에 보국문 근처에서 보기로 했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 행궁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길가에 가을 꽃들이 가득 피어 발길을 가볍게 하고 눈을 시원하게 하고 있다. 누렇게 변한 나뭇잎이 스산한 바람을 흘린다.

산이 많이 시원해 졌다. 땀이 나는 것이 지난번과 다르다. 힘이 들어도 옷이 다 저치를 않는다.
계곡이 마른 곳이 많다.그래도 바람은 시원함을 품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허리 아픈 줄 모르고 산길을 걸었다. 귀가 마스크 때문에 아프다. 벗어서 가슴께에 걸고 길을 올랐다. 숨쉬기가 한결 편하다. 그러나 마스크를 하고 내려오는 이와 마주치면 미안하다. 위로 오를 수록 마스크를 벗은 이들이 많아 졌다.

행궁지를 지나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니 시야가 좋다. 지난 계절들 보다 하늘이 깨끗하다. 맑고 시원하니 가을이 분명하다.
남장대지 못미친 곳 길가에 진달래꽃이 세 송이 피었다. 나무들도 가끔 정신줄을 놓는구나.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오늘 산행길 중 가장 높은 곳인 문수봉에서 잠시 쉬었다. 산객들이 참 많이 올라온다. 젊은이들이 다 잘 생기고 키도 훌쩍하고 늘씬하고 풍성하다. 나도 다시 태어나면 저런 몸매를 가질 수 있을까? 잠시 부러워하다 제정신이 든다. 이제 보국문으로 달려야 한다.

대성문을 지나 걷는데 전화가 왔다. 보국문이란다.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봉우리로 가는 길을 막고 옆으로 도는 길을 만들었다. 늘 사진을 찍던 곳인데....

보국문 앞에서 쉬고 있던 눈비돌을 만나 보국사지터로 내려가 자리를 폈다. 바람이 차졌는데 아직도 깔따구가 덤빈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으니 모기도 막고 몸도 따스해졌다.

500미리 병을 다 비우고 일어나 북한동으로 향했다. 내려오다가 눈비돌이 알탕을 하고 싶다고 해서 계곡으로 들어갔다. 나는 물이 차가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물에 들어간 삐돌은 아주 흡족해 한다.

산을 내려와 탐방지원썬터 바로 앞 식당에서 홍어무침에 호떡을 주문해 둘이 막걸리 세 병을 비웠다.
그리고 집에 와 샤워하고 바로 꿈속으로 빠졌다. 자는 중간에 손주가 와서 비몽사몽 간에 껴 앉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들 식구가 자고 있단다.
꿈이 아니라 사실이었구나.

 

 

집 출발

물이 말라 건폭이 되었다.

대피소 갈림길 아래 억새밭

행궁지. 이 산에서 단풍이 가장 먼저 예쁘게 물드는 곳 중 한 곳이다.

막바지 능선 바위길. 이 바위만 올라서면 완만한 능선길이다.

저곳에 집옆 제니스빌딩이 보인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계절을 잊은 진달래꽃

문수봉 아래에 핀 국화과 꽃

구기동계곡

문수봉으로 오르는 바위길. 데크는 비봉능선에서 바로 오르는 길이다

대남문에서 본 구기동길

대남문 지붕 아래로 보이는 똥싼바위

담장이덩굴이 단풍이 빨리 든다.

전망대로오르는 길을 막았다.

보국문에서 눈비돌을 만났다.

점심상

계곡이 말라 물고기가 말라 죽었다.

산아래에 핀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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