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영루 앞 너른바위에 앉았다. 짧게 걷고 막걸리 한 잔 하려고 했는데 대피소에서 행궁지까지 걸었다. 능선에서 내려오다 절벽 아래에서 올라오는 운호를 만나 대남문을 돌아 내려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어제 밤에 방개가 산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새벽에 아내는 산에 갈 줄 알고 건성으로 "산에 갈 거지?" 라며 묻고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놓았다. 중국술을 좋아하는 친구라 배낭에 중국술 한 병을 넣고 300미리 물 두 병을 챙겨 집을 나섰지만 혼자 걸은 바람에 술은 배낭에 그냥 남았다.
또 마스크를 쓰지 않아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했다. 요즘은 한 번에 다 준비하고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 기억력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삼 일 연휴인데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고 하니 휴일 기분이 나지 않지만 삼 일 내내 만날 사람들이 있으니 활기가 생긴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 맞다.
지하철이 텅 비었다. 다들 놀러 갔는지,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두문불출을 하는 건지 아무튼 편히 앉아 가니 좋다.
사람들이 차에 없던 것이 다 산에 와서 그랬는가 보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산객들로 가득 찼다. 집에서 나올 때는 오슬거려서 겉옷을 입었는데 차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바로 땀이 났다. 계곡입구에서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산길을 올랐다. 가을이다 보니 땀이 그리 심하게 나지 않는다. 그것이 참 좋다.
지난주에도 그랬는데, 왜 산길로만 들어오면 갑자기 길이 텅 빌까? 다 찻길로 가나? 앞에 아무도 없다가 산모퉁이를 돌면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들. 이런 현상도 신기하다. 산 아래는 아직 푸른 빛을 품고 있다. 나무는 잎을 많이 떨어뜨렸지만 끝까지 가는 계절을 붙잡고 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삶은 본능이겠지.
법룡사 앞 쉼터에서 쉬던 여자 셋이 바삐 쫓아 오는 바람에 쳐졌다가 대피소 막바지에서야 겨우 잡았다. 이젠 이러는 것이 힘들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남을 의식하지 않고 걸었으면 좋겠다. 고약한 버릇이 안 고쳐져 고민이다. 대피소 아래 마당에서 냄새(은행나무 열매 냄새가 아니었다)가 심하게 나서 잠깐 앉았다 동장대로 향했다. 화장실을 철거하여 옮기는 중이라 그런가 보다. 대피소에 화장실이 없다니, 아니 있던 화장실을 없애다니....
대피소 오르는 길의 단풍이 지난주 보다 많이 익었다. 28일이 절정이라는데 그 전에 만개할 것 같다. 이젠 전 만큼 찾아다니면서 보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지만 눈앞에 있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푸른 잎들이 노랗고 붉게 물드는 것이 꼭 내가 나이들어 흰머리가 되는 것과 같아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보국문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걷다보니 대성문에서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거기선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것이 대남문에선 여기까지 온 것 그냥 남장대지능선으로 가자고 해서 예전에 걷던 길을 오랫만에 다시 걸었다. 단지 보국문에서 성곽을 따라 대성문으로 가는 길을 막았기에 오래전 눈길에 한 번 걸었던 둘레길을 따라 대성문으로 갔다. 가다보니 차라리 성곽길이 계단길이어도 그 길이 낫다 싶었다.
옆에 노인네가 큰 소리로 제 친구들과 통화하며 시끄럽고 신경 쓰이게 하더니 이젠 젊은 아줌마들이.... 시끄러워 아무 생각도 안 나 일어나야겠다.
(14:16)
문수봉이 마주 보이는 양지바른 바위 옆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비우고 일어나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요즘 다니던 길을 버리고 예전에 다니던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지나가던 이가 나 아니냐고 묻는다. 썬그라스에 마스크에 모자까지 썼는데도 알아본다. 고개를 돌려보니 운호다. 반갑게 이야기를 하다가 산영루 앞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져 천천히 걸었다.
안과에서 백내장은 썬그라스를 쓰는 것이 조리개를 크게 해서 시야가 더 좋아진단다. 그래서 어두워도 길이 더 잘 보였던 것이었어서 이제는 가급적 쓰려고 한다. 수술하는 것보다 그냥 지내려고 하는데 안과에서도 필요가 없다고 하니 굳이 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이제 연식이 오래되어 가니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일어나 운호에게 전화하니 벌써 산영루 앞에 와 있단다. 바로 만나서 함께 내려와 동태찌개에 막걸리로 뒷풀이를 했는데 괜찮았다. 맛도 있고 깔끔해서 산악회들에서 꼭들 이용하는가 보다.
오늘은 친구와 같이 걷기로 해서 이어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없이 혼자 걸으려니 심심했다. 다음부턴 챙겨야 겠다.
계곡폭포가 말랐다. 해가 많이 늦어져서 이시간에 역광이다.
3일 연휴 첫날인데 코로나 때문에 멀리는 못가고 산으로들 왔나 보다.
대피소 아래 제일 잘 익은 단풍. 내가 걸은 길가 나무들 중 가장 예뻤다.
이제 데피소에 왔으니 곧 내려갈 줄 알았다. 그러나.....
동장대 앞의 단풍
코로나 때문에 대동문 광장도 사람들 모이지 말라고 다 막아 놨다.
칼바위로 가는 길을 막았다. 길에 자재도 잔뜩 쌓아 놨고.
칼바위와 형제봉
보국문으로 내려가기 전에 단풍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었다. 곧 내려가려고, 그러나....
보국문에서 성곽을 따라 대성문으로 가는 길을 공사한다고 막았다. 그래서 옆구리를 끼고 도는 길로 걸었다.
여기서 평창동으로 내려가려다 성곽을 따라 대남문으로 갔다.
대남문에서 보이는 구기동과 똥싼바위. 여기까지 왔으니 구기동으로 내려갈 것이 아니라 남장대지로 갈 일이었다.
문수봉에서 구기동. 이 장면이 내 데스크탑 배경화면이다
문수봉에 왔으니 증명사진 한 장 찍고 가야지.
상원봉 앞에서 본 삼각산
의상능선 너머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신원리와 지금 사는 일산이 보이고 ......
여기서 정면으로 보이는 삼각산이 좋다.
이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운호를 기다리며 글 앞부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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