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0.24 행궁지 - 대피소

PAROM 2020. 10. 25. 07:13

한숨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다.
이제는 습관이 된 주말 북한산 산행을 평일에 가려고 생각해 봤지만 한 가지 때문에 실행을 못하고 있다.

일찍 자고 새벽 세 시면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뭉기적 대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데 산에 가는 날이라고 예외는 없다. 밤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잤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된다. 밤에 늘 두세 번을 일어나니 잠을 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오늘은 대학 동창의 아들 결혼식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도 있고 구미에서 결혼식을 하기에 참석은 못하고 축하만 했다. 내일의 결혼식도 청주에서 있기에 그렇게 할 생각이다.

아내는 건성으로 산에 갈 거냐고 묻고는 초밥을 과일과 함께 벌허 싸 놓았다. 배낭을 준비하는 사이에 아내는 늦었다며 바삐 출근을 했고 나도 등산화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가 손수건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 신을 벗기 귀찮아 무릎으로 기어 갔는데.... 무릎이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두 번 다시 무릎으로 기지 않겠다. 그런데 아기들은 무릎으로 어떻게 그리 잘 기어 다니지?

전철 안에도 등산복을 입은 이들이 많았는데 구파발역 버스정거장에는 년중 가장 많았고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등산객들로 메워졌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는 보도가 있어서 이리도 많이 몰렸나 보다. 산에 들어가며 어디로 가야 사람들을 보지 않을까 생각하니 행궁지 뒷길 뿐이다. 그래 그리로 가자.

시월 말이 되니 새벽엔 춥다. 6시에 운동하러 갈 때는 장갑에 털모자를 쓰고 간다. 산은 더 추울 것이라 생각되어 겨울 티셔츠에 바람막이를 입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도 넣었으니 든든하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찬바람이 분다. 여름 바지를 입었지만 티셔츠와 장갑 덕분에 시원한 느낌이다. 조금 걸어 오르자 마스크가 숨쉬기 불편하게 한다. 그래도 벗지 않고 걸었다.

산길에 등산객들이 참 많다. 다른 때의 배도 더 되는 느낌이다. 꽃이 필 때 봐뒀던 산딸나무들을 지나며 혹시 열매가 있을까 살폈지만 누가 다 땄나보다.

산이 참 젊어졌다. 아니 앳된 이들이 산에 많이 보인다. 레깅스를 입어 멀리서도 젊은이 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등산복이 좋을텐데.... 그래도 청바지 보다는 낫겠지 생각한다.

산아래에서는 드문드문 보이던 단풍이 역사관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산이 온통 노랗고 붉다. 소나무의 푸르름이 그 변한 색들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고 있다. 단풍이 들며 낙엽이 많이 져서 백운동계곡 정자 위쪽 큰바위 얼굴도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무릎질 등에 집에서 늦게 나왔지만 예전에 걷던 길을 다시 걷기로 작정을 하고 행궁지로 꺽어 들었다. 역시 이 길엔 산객들이 거의 없다. 상원봉까지 서너팀만 오갔을 뿐이다. 한적함과 늦가을의 색들과 능선의 찬바람까지 모든 것을 온전히 즐기며 걸었다. 그러다 산아래에서 보았던 나월봉 높았던 암봉을 저 건너로 보며 편안함과 반가움을 즐겼다. 그래도 아직 덜 올랐고 반의 반도 못 걸었다.

단풍 사진을 찍고 들여다 보느라 시간이 더 걸려 상원봉에 가니 의상능선에서 넘어오거나 가는 사람들로 소리가 넘쳐난다. 이제부터 다시 인파에 휩쓸린 거다. 청수동암문과 문수봉 모두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 했다. 기억을 위해.

문수봉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대남문을 지나 대성문에 이르니 2주전에 있던 금줄이 그대로 있는데 몇몇 등산객들이 그냥 넘어서 간다. 나도 금줄을 넘어 성곽을 따라 걸을까 하다가 2주전에 걸었던 둘레길을 가기로 했다. 이길을 이방향으로 걷는 것은 처음이다. 반대 방향으로 걸어 봐서인지 낮설지 않고 그리 힘들지 않게 보국문으로 갔는데 대성문으로 가는 방향에 금줄이 없고 등산객들이 대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공사한 사람들 제대로 일을 하라고.

보국문부터 대피소까지는 암릉이 없는 평탄한 길이라 마음이 편해지며 느슨해진다.
산 꼭대기에서 먼저 피었던 단풍은 말라서 바사삭 대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중턱부터는 한참 좋고 시야 전체를 물들였다.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산객들이 멈춰 서서 포즈를 잡을 수 밖에 없겠다.

이십리를 넘게 걸어 정오가 한참 지난 시간에 대피소에 도착하니 마당이 산객들로 가득하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처마 밑 빈자리 기둥 옆에 배낭을 벗고 깔판만 꺼내 앉았다. 새벽에 꾸려준 초밥과 과일을 먹고 아주 오랫만에 뜨거운 커피를 과자와 곁들여 마시니 주변은 시끄러워도 가을을 제대로 즐기는 느낌이다.

쉬기를 마칠 즈음 다리를 절룩거리는 여등산객을 공원직원이 부축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친구인 듯한 이는 어정쩡해 보였고. 눕다시피한 환자는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중 구조대원이 도착해 상태를 묻고 응급조치를 하려는 것을 보고 아래로 내려오니 또 단풍이 장관이다. 대피소 바로 아래는 단풍나무가 대부분이라 이즈음엔 단풍 명소가 된다.

조금 더 내려오니 119구조대원 셋이 뛰다시피 대피소를 향해 오른다. 남들 노는 시간에 쉬지도 못하고 참 고생들이 많다. 고마운 분들이다.
등산객들이 많다보니 다친 이들도 많은가 보다. 헬기 소리가 내려오는 내내 들렸다. 나는 이제 더 조심해야 한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썬그라스를 껴야 하는데 근본적인 조치(눈 수술)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산속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아 내려오는 길에 속도를 냈다. 늘 들리던 역사관 앞 벤치도 가지 않고 계곡길로 내려오는데 올라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2시가 넘었는데 지금 가면 언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

출출하진 않았지만 습관처럼 순이네에 들렸다가 금방 나와 버스정거장으로 갔는데 조은네님을 만났다. 들꽃에 들렸다고 했다. 만날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 다음에 보기로 하고 구파발에서 헤어져 집으로.... 샤워하고 막걸리 한 병을 마시니 피곤해 바로 쓰려졌고 2시에 깨어 지금 이러고 있다.

오늘은 안양 처형댁에 들렸다가 아들집에 간단다. 나온이를 어서 보고 싶다. 부쩍부쩍 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 내 다음 세대를.... 이 아이를 통해 다음 세상을 산다.

 

폭포 옆 철계단에서 본 계곡. 이제 붉은 색을 띠려하고 있다.

백운대와 대남문 갈림길의 단풍

중성문 아래 계곡. 잎이 져서 을씨년스럽다.

젊음이 좋다. 산악마라톤을 하는 청춘들. 일행들 제일 뒤에 쳐졌는데 내게도 잡혔다.

낙엽이 져서 큰바위 얼굴도 모습을 드러냈다. 단풍이 얼굴을 한껏 꾸미고 있다.

행궁지의 단풍

남장대지능선 오르는 길에 보인 나월봉. 저 아래에서는 한참 위에 있었는데 이제 마주 섰다. (당겨서 찍음)

능선 바로 아래 바위 위에서 보이는 삼각산. 뒤로 도봉산도 보이고....

청송대(내가 붙인 바위 이름이다)에서 주능선 너머로 보이는 수락과 불암산.

의상능선 너머로 내가 사는 동네가 선명하게 보인다. 추위를 몰고 온 기압골이 준 선물이다.

여기서 증명사진 한 장

여긴 삼각산 작품 사진을 찍는 곳이다.

백내장 초기라 잘 보려면 안경을 쓰라고 해서 빛 속에선....

청수동암문 앞 바위사이로 보이는 저곳은 구파발이다

문수봉에서 보는 구기동계곡

여기서도 증명사진

보국문. 대성문으로 가는 길을 막았었는데 금줄을 치웠다. 그런데 대성문 앞에는 금줄이 있다. 어쩌라고?

칼바위. 이곳도 공사가 끝났는지 말끔하고 길에는 멍석이 깔렸다.

대피소 앞. 구조대원들의 활동에 고마움을 표한다.

대피소 바로 아래 계곡. 단풍이 좋은 곳 중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