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1.28 대피소 - 행궁지

PAROM 2020. 11. 29. 15:03

추운데서 돌아다니다 볕이 드는 창가에 앉으니 눈이 부시고 얼굴이 따갑다. 오늘은 무척 추운 날이었다.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았는데 겨울 초입이라 더 춥게 느껴졌나 보다. 검색해 보니 북한동이 아침에 영하 5도 지금은 2도다.

새벽에 추워서 깼다. 아직 보일러를 켜지 않아 이불 속에 있는데 발이 시렸었다. 깬 김에 뭉기적거리다가 아내가 출근 준비하러 일어나는 것을 보고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거실이며 부엌이며 다 추웠다. 며칠 전에 손주가 왔을 때 보일러 배관 모인 곳만 따스해던 생각이 나 보일러 배관 라지에타에서 공기를 한참 빼고 등산 준비를 했다. 등산이 아무리 좋아도 집이 추운 것을 막는 것보다는 후순위다.

아내가 담아 놓은 과일, 둥글레 차를 넣은 보온병, 전날 봉일천에 갔다가 가지고 온 샌드위치를 배낭에 넣고 겨울 옷을 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핫팩 작은 것을 하나 뜯어 바지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마스크 없이 나가다가 아내에게 불려 들어갔다. 언제나 마스크 없이 살 수 있으려는지.

탄현역을 오르려는데 전철이 도착했다. 한참을 기다리려나 했는데 4정거장 앞에 다음 차가 있다. 오랫만에 눈앞에서 차를 놓쳤다. 앞 신호에 길을 건넜어도 앞차를 타는 거 였는데.... 어쩐지 뛰고 싶더라니.

다른 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와 계곡입구에 왔는데 9시가 되지 않았다. 혹시 동수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비슷한 이들도 없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이젠 가을을 넘어서 그런지 썰렁하다.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는 몸을 움추리게 했다. 불어오는 찬 바람은 옷깃을 꼭 여미게 하니 한겨울이 따로 없다. 이제 단단히 하고 와야겠다 다짐을 한다.

그냥 혼자 마음대로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유롭다. 어디로 걸을까 생각해 보니 대피소에서 행궁지로 걸은지 한참 됐다. 그래 오늘은 일단 대피소로 올라가 힘 닿는데 까지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전엔 힘 닿는게 아니라 무조건 다 걸었는데 이게 무슨.... 슬프지만 어쩌랴. 세월이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을.

그냥 힘 되는 대로 걷자고 매번 다짐하지만 1분을 못 간다. 앞에 누가 있으면 얼굴을 확인해야 하고 누가 뒤에서 오면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힘이 딸리니 앞사람 얼굴은 보지만 내 얼굴도 보여주고 만다.
대피소에서 동장대를 가다 나를 지나친 젊은 산객은 대성문까지 샛길로 계속 앞질러 갔는데 만나는 길에서 보면 내 뒤에 있다. 성곽길이 도는 길 보다 짧은 가?

산길을 걷다 힘이 들면 늘 중간에 내려가고 싶다. 그런데 한쪽에선 그냥 처음 생각대로 하라고 꼬득인다. 난 마음이 약해 꼬드김에 넘어간다. 오늘도 처음엔 대성이나 대남문에서 빠지려고 했는데 앞에 가는 여 산객의 엉덩이에 이끌려 문수를 올랐다. 앞지르지도 못하고.

문수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남장대지능선으로 향했다. 청수동암문 옆으로 가야 하는데 위로 갔다. 상원봉에 가니 그리 맑은 날이 아니었음에도 집 옆 제니스빌딩이 분명히 보여 기분이 좋아져 늘 쉬는 양지 바른 바위로 갔는데 먼저 온 분들이 있다. 옆에 비집고 앉으려다 코로나 시즌에 민폐일 것 같아 그냥 하산길을 걸어 행궁지가 보이는 양지 바른 바위 아래에 배낭을 내렸다. 그런데 가끔씩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혼자 쉬기엔 훌륭한 자리였다.

이제 바삐 내려와 집으로 향할 일만 남았다. 내려오는데 무릎이 가끔 걸리적 거린다. 아픈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 오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요사이 허리를 잊고 지냈다. 아침에 하는 운동이 도움이 되는
건가? 정선근 교수의 책을 어서 다 읽어야겠다.

쉼터에 들어오니 텅 비었다. 늘 앉던 자리에 있던 쥔장이 인사하며 일어나기에 만류했지만.... 그런데 이자리 햇살에 따갑고 역광에 자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자리로 갈 수도 없고....

오늘 14Km 풀코스를 4시간 17분 만에 걸었나 보다. 참 오랫만에 빨리 걸은 것이, 추워서 동동걸음을 해서?

좋다. 내 발로 죽을 때까지 산에 올 수 있으면....

 

지난주에 온 비 덕분에 아직 폭포가 살아 있다.

떨어진 나뭇잎 때문에 나무에 겨울의 을씨년이 담겨 있다.

대피소와 봉성암 갈림길. 이제 한 달 쯤 뒤에는 이 계곡이 얼음으로 덮힐 것이다.

대피소 앞마당. 저 멀이 안부에 대남문 기둥이 보인다.

대동문. 언제나 이 금줄이 치워지려나....

여기서 보면 서울은 없고 산만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제 저 뒤의 능선들을 모두 걸어야 한다.

북쪽전망대 위에서 본 삼각산과 도봉산

앞의 성곽을 따라 저 뒤 남장대지능선을 모두 가야 한다.

여기서 보니 보현봉 보다 문수봉이 확실히 높아 보인다.

문수봉

대남문 위에서 본 시내

날이 맑아 멀리 까지 잘 보였다.

구기동계곡

청수동암문 앞으로 보이는 구파발

상원봉으로 향하다 본 비봉능선

의상능선 너머로 내가 사는 동네가 보인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남장대지능선 끝의 소나무

북한동역사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