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에 북한산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동수를 보기로 했다. 해서 다른 날보다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지만 몸은 딴 생각인 듯하다. 동수를 보고 연신내역에서 11시에 출발하는 산친구들을 만나러 둘레길을 걸을까 하다가 헬스장에 가지 못해 나온 배를 불러들이기 위해 산길을 더 걷기로 했다.
봉일천에서 가지고 온 샌드위치와 300미리 물 두 병과 보온병을 넣는 것으로 짐꾸리기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56도 짜리 이과두주는 전날 배낭에 미리 넣어 두었다. 아내에게 보이면 산에 못 갈 수도 있으니까.
산으로 가는 길, 열차는 제대로 탔는데 주말버스가 늦게 왔다. 해서 버스 안에서 동수의 전화를 받았고 탐방지원쎈터 못미쳐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외환은행 입행동기들인 박일규, 우제용 셋이 격주 마다 불광에서 송추까지 5시간을 늘 걷는 대단한 친구들이다. 산입구에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하고 아쉽게 서로 가던 길로 갈라 섰다. 다음엔 더 많이 오래 얘기하며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9시에 산에 들었으니 연신내에서 출발할 친구들 보다 2시간 반 이상 더 걸을 수 있다. 자, 그럼 어디로 걸을까? 산친구들의 최종 목적지는 비봉능선의 한 봉우리일 것이고 그리로 가야 한다. 대피소로 올라 능선을 따라 걷다가 청수동암문에서 비봉능선으로 내려설까 하다가 여유롭게 걷기 위해 보국문으로 올라 걷기로 했다.
평온한 겨울 날씨라 조금 걸으니 추위가 가신다. 손등만 약간 시릴 뿐 발이나 손가락은 괜찮다. 계곡으로 오르려다 자연탐방로 길로 바꿔 부지런히 오르니 숨이 턱에 찬다. 운동을 못한 지 벌써 2주가 되었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 허리는 불편함이 전혀 없는데 초반 나무계단을 너무 빨리 올랐는지 오른쪽 고관절이 삐걱 거린다. 오른쪽 무릎 아래도 자신을 드러낸다. 이럴땐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렇게 한동안 조심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걸음이 또 빨라져 있다. 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앞지르고 있는 거다. 다행히 불편한 곳이 없어졌다.
모바일 메모리가 꽉 차 지하철에서 대부분의 동영상과 사진을 지웠다. 그래야 오늘 찍을 사진이 자리할 장소가 생기니까. 옛사진과 영상은 이제 집의 PC에서 봐야 한다.
보국문에 오르니 하늘이 뿌옇다. 이제 능선에 올났으니 성곽을 따라 걸으면 된다. 문수봉 까지는 봉우리를 너댓 개 넘으면 된다. 대성문에 가까워졌을 때 전화를 했다. 이제 출발 준비중이란다. 대성문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계단길을 무릎을 짚으며 올랐다. 숨이 턱에 닿았다. 마스크를 내리니 조금 낫다.
문수봉에 올라 잠깐 쉰 후 청수동암문에서 내려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제 출발이란다. 진관사계곡으로 오를 거란다. 그러면 병풍바위 앞에서 내려가면 되는데 내려가면 다시 올라와야 될 것 같아 사모바위 근처에서 쉬려고 했다.
참 오랫만에 승가봉을 올랐다. 전엔 바위를 짚지 않았는데 하도 오래되어 그런지 바위길이 눈에 익지 않고 균형 잡기도 어려워 바위를 잡으며 올라야 했다. 몸이 더 굳어지고 낡아져서 인가 보다. 그러나 승기봉에서 보는 풍경은 언제 봐도 좋다. 이런 맛이 산에 오는 재미를 더한다.
사모바위에 도착해 쉬려고 보니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 모이지 못하게 금줄을 쳐 놓은 것이 눈에 거슬린다. 더 걷기로 한다. 비봉을 지나 병풍바위 아래 갈림길에서 기다릴까 망설이다가 계곡으로 내려섰다. 통화를 하니 진관사계곡을 오르는 중이란다. 만나면 점심을 먹을 거란다. 아래에서 먹을 생각에 더 빨리 걸었다. 그렇게 비봉과 향로봉 갈림길에 거의 다 가서 통화를 하며 걷는데 비봉으로 가는 길이 보이고 사람들이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니 산친구들이 다른 길로 비봉으로 오르는 것이 보였다. 소리쳐 멈춰 세웠다. 조금 늦었으면 못 만날 뻔했다.
반가움에 주먹 인사를 하고 조금 더 올라가 길가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었다. 뜨끈한 순대, 베이컨, 닭가슴살 등을 안주로 56도 500미리 이과두주를 순식간에 비웠다. 그리고 내려갈 줄 알았는데....
올라갔다. 비봉으로. 나는 먹고나면 오름길이 지옥길인데. 올라갈 줄 알았으면 비봉이나 사모바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걸하고 후회를 했지만 내려와도 너무 많이 내려왔다. 바위길을 숨 가쁘게 다시 오른 덕분에 알콜 기운이 조금은 더 빨리 가셨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게 해서 승가사로 내려가 찻길로 구기동으로 내려왔고 빈대떡집에 들러 생굴과 빈대떡을 안주로 소맥 한 잔씩에 막걸리로 뒷풀이를 하고 집에 오니 늦었다.
왜 늦었냐는 질문에 길을 잘못 내려갔다고 했다. 비봉에서 바로 내려가야 했는데 더 가서 다른 길로 내려간 것은 맞고 다시 능선으로 올랐으니까. ㅎ~~
왼쪽에 다리를 건너는 동수와 일규의 뒷모습이 보인다.
산영루 앞 계곡폭포.
뱀처럼 구불거리며 이어진 성곽길을 걸어야 한다.
저 뒤로 보이는 비봉능선을 더 걸었다.
오랫만에 온 바윗길.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승가봉에서 본 의상능선과 문수봉
승가봉에서 본 사모바위와 비봉. 이 사진을 찍느라 장갑을 흘려서 다시 올라와야 했다.
사모바위. 금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이곳에서 쉬지 않았다.
점심 후 비봉으로 올라가는 중 탁트인 곳에서 은단풍 님과
오후를 함께했던 산친구들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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