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중간에 나와 나온이의 생일이 있어서 식구들이 다 금요일에 집에 모였다. 나온이는 조금 더 커서 두려움과 낮설음이 생겨 한참을 오지 않는다. 놀이터에서도 잘 타던 그네와 미끄럼틀에 오르지 않았다. 떨어진 기억이 있어서인가 보다.
아들 식구들이 10시 쯤에 집에 간다고 해서 손주와 놀려고 했는데 산에 가는 것이 일주일의 컨디션에 더 좋을 것 같아 여러번을 뒤돌았다가 탄현역으로 갔다. 평소보다 한참 늦었다. 배낭엔 아내가 아침에 아들들 먹으라고 싸놓은 김밥과 유부초밥을 덜어 넣고 수박도 한 그릇 담았다.
한참을 기다려 탄 8772번 제일 뒷자리에 앉아 산성입구에서 내려 산으로 가는데 날이 푹푹 찐다. 산에 들기도 전에 땀이 흐른다. 이렇게 더운 날 더욱 늦게 왔으니 고생길만 남았다.
계곡입구로 가니 밤꽃향이 난다. 참 특이한 향이라 금방 알 수 있다. 당집터 앞 쉼터에서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올들어 처음 반팔 산행이다. 깔따구가 덤비지 않고 찔레에 끍히지 않기를, 그리고 볕도 피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듯 싸리꽃이 환하게 웃는다. 참 오래 피는 순한 꽃이다.
이틀전 운동을 하며 무리를 한 듯하다. 걷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고관절이 걸리적 거렸다. 이러면 큰일이라 조심스럽게 걷다가 어느새 다시 앞서가는 이들을 지나치고 있다. 버릇 고치기 참 어렵다. 그런데 날도 덥고, 볕은 쨍쨍하고, 배낭은 무겁고, 땀은 줄줄 흐른다.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이들이 부럽다. 늦게 온 탓에 내려가는 이들이 많다. 그냥 어디 물가에 앉아 발 담그고 쉬고 싶다.
오늘 같은 날은 멀리 가자고 해도 못 가겠다. 대피소까지 80분이 걸렸다. 등산사상 제일 오래 걸린 듯 싶다. 대피소에서 십여 분을 쉰 후 겨우 일어나 동장대로 향했다. 평이한 그늘길인데도 힘이 든다. 오늘 왜 이렇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전날 막걸리 두 잔 마셨다고 이러진 않는데.
볕이 따가워 팔이 벌겋다. 주능선길엔 큰나무가 많아 그늘도 지고 성곽 총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와 걷기가 좋은데 힘이 드니 그도 싫다. 하늘이 맑아 중간중간 서울시내가 보이는 곳의 전망이 좋지만 이내 남은 길 걱정이다. 보국문에 겨우 닿아 대성문으로 가는 길을 쳐다보지도 않고 내려섰다. 여기서 더 갈까하고 고민하지 않기도 참 오랫만이다.
용학사 아래 계곡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벗었다. 그늘진 편한 자리를 찾았지만 내키지 않아 얼마전에 앉았던 곳에 다시 앉았다. 산 아래 편의점에서 사간 막걸리도 꺼냈다. 등산화를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시원하다. 더운 여름 산행의 재미다. 이맛이 흘린 땀의 보상이다.
더운 날이지만 막걸리는 아직 차갑다. 집에서 가지고 온 수박은 미지근하다. 첫 잔이 제일 좋다. 시원하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먹거리를 다 비우고 나니 배낭이 가볍다. 계곡에서 벗어나기 싫지만 집엔 가야한다. 억지로 일어나 없으면 좋을 하산을 했다. 계곡길로 내려오는 것이 더 힘이 들어 오랫만에 찻길로 내려왔다. 산을 내려와 바로 집으로 오니 한낮이다. 찬물에 샤워를 하니 극락이 따로 없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막걸리 한 병을 꺼내 저녁을 대신했다. 오늘 산행이 왜 그리 힘들었는지는 잊은 지 오래다. 다음 산행엔 모기기피제와 매트를 가지고 가서 한숨 자고 올까?
물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시원함을 선사한다.
계곡바닥에 물때가 끼어 누렇다. 비가 많이 내려야 때가 벗겨진다.
힘겹게 역사관에 도착했다. 한참을 쉬었다.
산영루. 이 앞 계곡에서 그냥 퍼져 놀고 싶다.
대피소 앞 광장. 풀이 많이 자랐다.
내가 좋아하는 산길. 올핸 이길에서 꽃을 보지 못했다.
동장대 앞. 저 앞의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을 오늘은 못 갔다.
시단봉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삼각산과 시단봉 제단
칼바위 앞으로 형제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시내가 보인다.
칼바위 갈림길 앞에서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오늘은 여기 보국문에서 계곡으로 내려섰다.
대서문.
다 내려왔다. 오랫만에 백운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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