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어젠 둘째 손주 백일이라 안산 아들집에 다녀오느라 오늘 산에 갔다 왔다. 보지 못한 보름 사이에 두 녀석이 다 엄청나게 컸다. 지금이 제일 빨리 크는 시기이긴 하지만 그걸 보는 내겐 가는 시간이 너무 아쉽다. 아이들이 튼튼하게 크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밀리는 외곽고속도로 덕분에 집에 조금 늦게 도착해 씻고 바로 누웠는데 산에 갈 설레임에 서너 번을 깼다. 오늘 딸아이도 같은 학교 선생님들과 내가 다니는 코스를 걷는다고 했었다. 아내는 늦게 일어나 내 먹거리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아들 식구들을 보고 와서인지 잠을 푹 자고 꿈도 꿨단다.
어제 밖에 나갔다가 추위에 덜덜 떨었던 기억에 준비를 단단히 했다. 계피나무가지 삶은 물을 보온병에 넣고 두꺼운 겨울용 옷들로도 모자라 윈드자겥까지 넣었다. 이것저것 넣다보니 집을 나서는 시간이 늦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뛰기까지 했는데 역 계단을 밟는 순간 기차가 떠난다. 다행스럽게 다음 열차는 4정거장 앞에 있다.
이제 구파발역 버스정차장 공사는 끝났나 보다. 1번 출구 바로 앞 벽돌 건물도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제 준공이 거의 다 됐나보다. 옛 정거장 앞에 섰는데 새로 생긴 정거장 쪽으로 버스가 정차한다. 이런저런 안내문구 하나 없다. 이놈들 다 욕 먹어라.
버스에서 내려 두꺼운 겨울옷 차림에 부지런히 걷는데도 땀이 별로 나지 않는다. 손이 시려 웃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계곡에 드는 곳까지 거리감이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 텅 빈 느낌인데 물소리는 요란하다. 서암사 앞에서 딸 전화를 받았다. 백운동계곡을 따라 대성사를 향하는 중인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3키로 이상의 차이를 극복하긴 힘들다. 그래도 부지런히 걸어 역사관 앞 바위에서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스틱을 펴고 물도 안 마신 채 그대로 추격에 나섰다.
빠르게 걸으려고 하는 바람에 주변 경치는 눈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길 중간에 붉게 물든 단풍은 요염한 색시 마냥 눈길을 붙잡는다.
어디로 오를까 하다가 딸 일행이 문수봉에 올랐다 다시 백운동계곡으로 내려올 거로 짐작하고 주능선을 타고 걷기로 했다. 위치를 알면 쉽게 중간에 탈출하여 볼 수 있으니까.
산에서 딸을 보겠다는 일념에 나름 빠르게 걸었다. 특히 최근 들어 대피소로 오르는 길을 비록 스틱에 의지하긴 했지만 이렇게 멈추지도 않고 걸은 적은 없었다. 대피소에 올라서도 사진 한 장 찍고는 바로 대동문으로 향했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피곤함은 없다. 그러나 스틱에 실리는 힘이 점점 늘어남을 느낀다.
딸에게 또 전화가 왔다. 문수봉에 올랐다 내려가는 중이란다. 나는 이제 대피소인데 바삐 가야 오늘 10키로를 걸을 것 같다. 부지런히 걸어 대동문을 앞에 두고 내려가는데 또 전화를 해서 자기는 이제 대남문을 지나 성곽을 따라 걸어서 대성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곽을 따라 대동문으로 오겠다고 한다. 내가 1.3키로를 걸었는데 0.3키로를 왔다고? 얘가 지명에 혼돈이 왔나 보다. 그런데 이제 내가 바빠졌다. 보국문에서 보려면 바삐 걸어야 한다. 서로 600미터씩 남았다. 내가 가는 방향이 오름길이지만 완만하고 편하다. 먼저 보국문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다릴까 하다가 마중가기로 하고 돌계단을 올라 산 꼭대기의 전망대로 갔다. 거기서 잠시 기다리니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리며 귀여운 놈이 저 아래 나뭇잎 사이로 들락거린다. 같은 학교 선생닙들 세 분과 같이 온 것이 보였다.
그렇게 넓디넓은 산속에서 아롬이를 만났고 반갑기 그지 없었다.
만나서 곧 뒤돌아 보국문으로 같이 내려와 바로 하산을 했는데 걸음이 참 더디다. 너무 느려 겉옷을 입어야 될 정도로 땀이 나지 않았다. 이런 속도 차이니 녀석이 같이 다니지 않겠다고 했구나! 배가 고프다고 해서 내 배낭에 들은 샌드위치를 주려고 했는데 칼이 없다. 늘 넣어 가지고 다녔는데 배낭을 큰 것으로 바꾸며 빼고 넣지 않았다. 이런....
힘들게 계곡으로 내려와 들꽃에 들었다. 막걸리를 마시려는데 딸이 제 엄마보다 더 무섭게 주문을 막는다. 오늘 이녀석을 만난게 참 잘못됐다. 결국 안주를 반찬으로 먹어야 했다.
들꽃에서 기다렸다는 듯 쥔장이 나보다 공부 잘 했다는, 마르고, 키 크고, 잘 생기고, 주중에 두세 번 들리는 동기 놈 이름을 알려주신다. 그래, 승근이 넌 줄 짐작했다. 이제 3년 고생했으니 2년만 더 참고 고치면 된다. 어서 완쾌되어 잔을 마주 들 수 있길 바란다. 그런데 청운20과 도상47, 우리 동창들 각 419명 모두 다 나보다 공부 잘 했지. ㅋㅋㅋ
이제 나도 주중에 산에 다닐까 보다. 너희들 보러. ㅎㅎㅎ
계곡폭포가 춥다. 얼음은 얼지 않아 더 추워 보이는 것인가?
중성문 아래 계곡의 나무가 옷을 다 벗었다.
용학사로 가는 옛길에 단풍이 들었다.
대피소 갈림길 앞 밭에 억새가 한창이다
대피소에 아래에 단풍나무 하나가 먼저 색을 칠했다.
대피소. 오랫만에 쉬지 않고 올라온 것은 스틱 때문일까, 딸을 보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동장대 앞. 여기도 억새가 이쁘다.
칼바위 앞으로 시야가 좋다.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혹시나 오늘 제일 높은 곳일까 해서 멈춰섰는데 왼쪽 전망대 봉우리까지 올랐다.
보국문에도 단풍이 들었다.
북쪽전망대에서 칼바위를 보면 그 너머로 수락과 불암산 아래 동네도 다 보인다.
북쪽전망대.
전망대봉우리에서 보는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나뭇가지 하나가 크게 자라 삼각산을 다 가렸다.
아롬이가 아래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아롬이가 행궁지 갈림길을 오르는 나를 찍었다. 11:44
여기는 지난 여름 알탕을 하던 곳이다.
아롬이와 선생님 일행들
이녀석이 평소엔 이러지 않는데 카메라 앞에서 안 하던....
서암사 앞 계단에서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
다 온 기쁨에 까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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