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3.20 대성문 - 행궁지

PAROM 2022. 3. 21. 09:19

무릎까지 쌓인 눈이 신발 사이로  들어가 양말과 등산화가 다 젖어 발이 시렵다. 게다가 습설이라 아이젠에 눈이 들러붙어 벗겨지는 바람에 되돌아 가서 찾아 신고 했지만 남장대지능선에서 내려오면서 두 짝 다 잊어버렸고 썬그라스도 서너 번 미끄러지는 사이에 사라졌다. 다시 찾으러 올라갈까 했지만 행궁지 옆 미끄러운 비탈을 올라가기가 저어해서 그냥 다 잊기로 했다. 
 
어제가 토요일이고 산에 오는 날이었는데 밤부터 비가 내려 포기하고 조금 더 춥지만 맑은 오늘 왔다.
요즘엔 4시에 잠이 깬다. 5시 반부터 움직이니 다시 자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DAUM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다 보기 싫고 듣기 싫은 소식들 뿐이다. 그나저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끝나야 할텐데.... 잘못된 지도자 하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에 당선 되어 처음 하는 일이 제 사무실을 수천 억 들여서 옮기는, 그것도 국방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리더인가 싶다. 5년을 이딴 짓거리 할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다. 
 
어제 아내가 일터에서 가지고 온 샌드위치와 천혜향 한 알, 뜨거운 녹차 한 병, 물 한 병을 넣고 혹시나 해서 털모자도 넣고 배낭을 여몄다. 시간을 보니 아직 7시 전이다. 손수건이며 이어폰, 지갑을 챙겨 넣고 등산화 끈을 매니 7시 4분이다. 이번 열차는 늦었다 싶어 천천히 걸어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서울역으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늘은 일찍 나왔으니 조급함은 없지만 조금 서둘렀으면 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에는 이 열차를 타야겠다. 내가 탄 열차시간에는 대곡에서 14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니까. 
 
구파발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많은 등산객들이 3분 뒤에 8772번이 오는데도 만원이라 문도 닫히지 않는 704번에 타려고 분주하다. 참 급한 우리들이다. 편히 앉아와 산 입구 내려 보니 704번이 앞에 가고 거기서 내린 산객들이 길모퉁이를 돌고 있다. 
 
이번주에 걷기를 너무 빨리 하지 않았더니 고관절이 편하다. 앞으로도 한 시간에 10.2Km를 걸어야겠다. 
 
입구를 지나 계곡에 접어드니 물소리가 크다. 새들이 뭐라 말 하는데 물소리 때문에 누가 뭐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제 하루에 온 비 때문에 하류의 얼음이 다 녹고 수량이 이리 많아 진 것인가?
어제 비 맞고 산길을 걸었으면 저체온증에 걸렸을 듯하다. 그런데 어제 온 비와 눈이 먼지를 다 씻어가지 않았는지 하늘이 멀리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은 추워 자켓을 입은 채로 계곡길을 올랐다. 
 
역사관 앞에서 겉옷을 벗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물과 새소리 때문에 벗었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오르는데 분위기가 점점 싸해진다. 선봉사 앞에서 본 의상봉이 하얗고 검다. 꼭대기는 구름에 가렸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눈을 가득 쓰고 있다. 오, 오늘 3월 20일의 따스한 날에 눈을 즐길 수 있겠다 싶어 은근히 기대 되었다. 
 
길을 오를수록 미끄럽다. 녹아내리는 젖고 눌린 눈이 오를수록 점점 희게 변해 갔다. 중성문을 지나고 노적사 입구를 지나면서부터는 뒤로 밀리기까지 한다. 이러면 아이젠을 해야 안전하다. 정자에서 아이젠을 신고 나서부터 씩씩하고 용감하게 걸었다.  
 
내일 새벽에 운동을 해야하니 적당히 걷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백운동계곡을 따라 대성문과 대남문을 거쳐 남장대지능선으로 내려오거나 그 반대로 걷기로 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와서 그런지 산에서 내가 지나치는 산객들 보다 마주치는 산객들이 많지 않아 좋다.  
청수동암문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보니 아무도 걷지 않은 생 눈길이다. 저길로 들어가면 내 발은 남의 것이 된다. 그냥 대성문으로 가자. 
 
눈이 많이 쌓여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한 쪽 발은 눈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넓은 산길에 한 명이 걸을 폭만 눈이 다져졌다.
눈이 돌과 바위, 낙엽을 다 덮으니 푹신하니 걷기가 참 좋다.
그런데 이 눈이 습설이었다. 대성문을 오르는데 발바닥에 자꾸 눈이 달라 붙었다. 탁탁 털며 오르지만 참 불편하고 힘들다. 이러면 내려가는 길에서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성곽길을 포기하고 둘레길로 대남문으로 갔다. 대남문에  오르니 광화문쪽으로 한 뼘 정도 구멍이 뚫렸다. 신기하다.  
 
습설에 고생하며 문수봉에 올라 사위를 살피니 보이는 곳이 거의 없다. 이러면 어서 내려가야겠다. 눈 쌓인 바위를 돌아 청수동암문으로 갔다. 이제  내려왔으니 후회하는데 그냥 대남문으로 바로 내려왔어야 했다. 그 길이 오히려 더 길다. 하지만 무슨 객긴지 남장대지능선으로 갔으니.... 
 
청수동암문에서 상원봉으로 가는 길은 오름길이니 그냥 발바닥에 들러붙는 눈만 털어내며 가면 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내려가는 길은 빈틈만 보이면 바로 나를 자빠뜨렸다. 3월 중순도 넘어 아니 내일이 춘분인데 하얀 산에서 뒹굴고 있다니....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이 시렵다. 나무를 붙잡느라 젖은데다 바람까지 불어 그런가 보다. 그런데 남장대지에서 보니 아이젠 왼쪽이 없다. 길을 되돌아가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아이젠을 주워 다시 신었다. 내려가는 길, 습설은 여전하다. 눈이 무릎에 찼다. 드디어 눈이 등산화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행궁지 뒤 계단길로 내려오려다 부황사로 가는 길로 빠졌다. 내 앞에는 한 명이 올라온 자국만 있다. 스텝이 맞지 않아 새롭게 깊은 발자국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길은 먼저 번까지도 미끄러운 낙엽길이었다. 그 위에 눈이 덮인 거다. 그러니 당연히 더 미끄러운 줄 알았다. 그렇게 서너 번을 자빠지며 더 자빠지지 않으려 행궁지 앞에 왔는데 썬그라스도 없다. 오늘 같이 눈이 있는 날엔 눈 때문에 써야 하는데.... 마스크 때문에 김이 서려 벗어 모자 챙에 올린 것이 ....  아,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포기해야겠지. ㅠㅠ 
 
내려오는 길, 기온이 오르면서 눈이 녹아 길이 질퍽하다. 이런 길에서 자빠지면 큰일이다. 행궁지 위에서 아이젠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폈던 스틱에 온 몸을 싣고 조심조심 내려와 역사관 앞에서 샌드위치를 뜨거운 녹차에 먹으니 꿀맛이다.
그런데 아직 한참 내려가야 한다. 
 
아침에 보이던 풍경과 사뭇 다른 하산길. 역사관 앞에서 보았던 커다란 한 무리의 4050산객들 속에 내가 아는 이를 찾으려 휘번뜩였지만 이령 비슷한 이만 있었다.
아직 다리 힘이 남았기에 계곡길로 내려오니 백운대가 맑게 웃고 있다. 진작 얼굴을 좀 보여주지. ㅎ~~ 
 
들꽃에선 어제가 참 좋았다던데, 3월의 산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 백운대가 구름에 가렸다.

계곡폭포에 얼음이 다 녹았고 물이 넘쳐 흘렀다.

선봉사 앞에서 보는 의상봉. 역시 구름에 가렸다.

의상능선의 작은 봉우리. 눈모자를 썼다.

지난주엔 봄 같았는데 오늘은 한 겨울이다.

이제 잎이 나기 사작하면 작년에 피었던 단풍들은 다 떨어질 것이다.

산영루도 하얗게 눈을 이고 앉았다.

금위영이건기비 앞. 눈 세상이다.

대성문에 왔다. 어제 눈이 무척 많이 와서 발이 빠졌다.

대남문에서 보는 광화문방향. 하늘이 잠깐 아주 조금 열렸다.

문수봉으로 가는 길. 

문수봉으로 오르다 뒤돌아 본 대남문

문수봉 증명사진

이번 겨울에 상고대를 오늘 처음 본 것 같다. 문수봉 아래의 상고대

청수동암문 앞 바위 사이로 구파발이 보였다.

표지판에 715봉이라고 적혀 있는데 예전엔 상원봉이라 써 있었다.

의상능선이 구름에 가렸다.

남장대지에 가까워지니 의상능선 넘어 삼송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상능선은 뚜렸이 보였지만 저 뒤의 덕이동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삼각산 꼭대기만 가렸다.

남장대지능선의 바람골. 눈이 무릎을 덮을 정도로 쌓였다.

능선의 끝자락. 의자소나무에도 눈이 쌓쳤다.

저 앞의 주능선으로 갔으면 아이젠도, 썬그라스도 잊어버리지 않았을텐데....

삼각산이 얼핏 보이기에 얼른 한 장.

주능선이 이제 확연히 보였다.

남장대지능선에서 내려와 행궁지를 돌아가는 길로 드는 순간부터 눈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다. 내 앞 길에 한 명이 올라온 발자국만 있었다. 중간 사진은 없고 다 내려와서 돌아 본 사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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