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곱아 자판 두드리기가 어렵다. 오늘은 영하의 기온이 아니었는데도 골짜기와 능선 전체에 휘몰아 친 찬바람에 추워 덜덜 떨며 산길을 걸었다. 계곡폭포 앞에서 덥다고 겉옷들을 벗어 넣은 것이 고생을 만들었다.
어제 긴급문자를 받았는데 오늘까지 바람이 무척 많이 분다고 했다. 어제 창밖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나무를 보니 오늘도 저렇게 불면 그냥 집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소리가 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내가 만들어준 샌드위치와 뜨거운 녹차를 한 병 넣고 귤도 한 개 넣었다. 추운 날 차가운 과일을 먹으면 몸이 더 추워져 한겨울엔 가지고 다니지 않았는데 영상의 기온이니 넣은 것이다.
3주만에 토요일 산행을 하려니 엄청 분주하다. 자꾸 빼 놓은 것 때문에 들락날락하다 결국 7시 48분 열차를 탔다. 열차를 탔는데도 뭔가 불편했는데 환승하는 대곡역에서 쉬었다가야 했다.
2월 중순부터 토요일마다 일이 있어 지난 두 주는 목요일에 산에 왔었다. 지난 삼일절엔 게으름 때문에 오지 못했고. 암튼 오랫만에 왔으니 길게 걸으려고 했다.
계곡에 드니 뭔가 산뜻한 느낌이 든다. 3월이 되어 그런가 보다. 계곡입구엔 얼음이 거의 다 녹았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땀이 난다. 계곡폭포 아래 공터에서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는데 산모퉁이 둘을 채 지나기도 전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봄에 부는 바람은 오후에 부는데 아직 봄이 덜 되어 그런지 9시가 조금 넘자 불기 시작한다. 그런데 바람이 차다. 센 바람인데 차갑기까지 하다. 처음엔 흘린 땀 때문에 그렇게 추운줄 몰랐다.
요즘엔 내가 느려져서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아도 그러려니 하는데 소리는 들리는데 앞지르질 않아 돌아보니 간격을 유지하며 뒤따르고 있다. 이러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차라리 멈춰 서서 보내는 것이 속 편하다.
역사관 앞에 이르자 기본 체력이 고갈되어 쉬었다 가야 했다. 그사이 같은 지하철과 버스로 온 여산객도 지나갔다. 쫓아서 백운대로 갈까하다가 더 좋은 날 가기로 하고 오른쪽 길로 틀었다. 두꺼운 티셔츠지만 바람을 막지는 못해 몸이 떨려 왔다. 땀을 내기 위해 빨리 걷지만 마음만 빨리 걷는다. 점점 더 저질체력이 되어 간다. 어쩌랴 세월 탓으로 돌려야지.
계곡을 따라 문수봉으로 바로 오르려다가 오랫만에 왔으니 행궁지 옆길이 잘 있는지 보러가기로 하고 행궁지 옆을 오르는데 햇볕에 길이 녹아 미끄러워진 비탈에서 서너 차례 미끄러지다 기어이 땅을 짚고 말았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잔뜩 쌓여 있는 길은 참 미끄러웠다. 어제부터 많이 분 바람 때문에 낙엽이 날려 무릎 넘게 쌓인 곳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스틱도 펴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그 긴 길을 내려온 것이 행운이다.
남장대지능선으로 가는 큰 길에 닿으니 마주치는 이들이 점점 많아 졌다. 남장대지를 지나 시야가 트이는 바윗길에 서니 집 옆 제니스빌딩이 흐릿하다. 바람이 이리 많이 불면 미세먼지가 다 날려가는 것 아닌가? 양지바른 바위에 먼저 온 산객이 쉬고 있다. 잠시 쉬고 상원봉으로 가는 게 좋은데, 쉬는 것과 상원봉 모두 버리고 지름길로 청수동암문으로 향했다. 청수동암문 앞에서 의상능선을 지나온 여산객-문수봉에서 자주 봤던, 여름엔 시원한 옷을 입던-을 마주 쳤다. 그 여산객의 부탁으로 문수봉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는데 또 다른 여산객이 자기도 찍어 달라고 한다. 그런 것 쯤이야 얼마든지 해야지.
대남문으로 내려와 성곽을 따라 올라 대성문으로 갔다. 거기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아직 다리 힘이 남아 더 걸을 만 해서 보국문으로 갔다. 주능선에서는 이 구간을 제일 조심해야 한다. 돌계단과 바윗길 구간이라 자칫 헛디디면 최소 골절이니까.
백내장 수술을 했으면 좋겠는데 병원들에서 아직 초기니 수술은 아니고 약만 넣으란다. 난 너덜길을 만나면 촛점이 맞지 않아 거의 장님이 되는데.... 그래서 아는, 다니던 길만 다니고 있는데.
대동문에 오니 발길이 무텨진 것이 느껴졌다. 더 걸을 수 있지만 그러면 며칠 힘들 수 있으니 계곡으로 향했다. 능선에서 바람이 부는 것은 그러려니 했는데 계곡에서도 바람이 분다. 계곡에 바람이 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바람 때문에 추워서 싸간 점심도 못 먹고 역사관까지 주~~욱 내려와 배낭을 벗은 김에 뜨거운 녹차를 마시고 샌드위치도 꺼내 먹었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먹지 않으면 집에 다시 가져가야 하는데 그러면....
역사관 앞에 앉아 있는 동안에 내가 지나쳐 왔던 사람들이 다 내려갔다. 찻길로 편하게 내려오려다가 다시 계곡으로 내려섰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고 긴 계곡길을 내려와 곱은 손을 녹이려 쉼터에 들었다. 이제 다 녹았으니 집에 가야지.
집을 나설 때는 완전무장을 했다.
계곡폭포의 얼음도 많이 녹았다.
노적사 갈림길 위의 정자
산영루에서 용학사샘으로 가는 길
행궁지 아래 계곡의 Y자 계곡 얼음
행궁지. 언제나 발굴과 복원이 끝나려는지....
남장대지능선 아래 바위에서. 아직은 힘이 남아 있다.
능선 끝의 의자소나무와 삼각산.
능선에서 나월봉이 가깝다.
남장대지에서 보이는 의상능선
의상능선 너머로 우리동네가 아스라히 보였다.
구기동계곡. 오랫만에 멀리까지 보였다.
문수봉 도착 증명사진
이 문수봉 바위 끝에 앉아 친구들은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을까?
대성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길
전망대 봉우리에서 보이는 삼각산
오늘 지나온 길들. 남장대지능선과 문수봉, 주능선길
칼바위와 형제봉
계곡 상류엔 얼음이 한창이다
계곡과 길이 모두 얼었으니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얼음계곡
행궁지 갈림길 아래 계곡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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