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4. 2 행궁지 - 대동문, 눈비돌 만남

PAROM 2022. 4. 4. 09:31
행궁지로 해서 능선을 따라 대동문까지 걷고 집에 와 막걸리 한 병 마시고 곯아 떨어졌다가 속이 쓰려 날이 바뀌기도 전에 깼다. 하루 걸러 즐기던 막걸리를 당분간 쉬는 것이 좋겠다 싶다. 술만 마시는 혼술의 해악이 드디어 내게 온 듯하다. 
 
며칠 전까지도 손주들 봐주러 토요일에 안산에 가기로 했는데 금요일에 갑자기 일요일에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면 태풍이 불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산에 가는 거다.
2주 전에 남장대지능선에서 행궁지 옆으로 돌아내려오다 잃은 아이젠과 파란 오클리가 혹시 제 자리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좀이 쑤신다. 분실 사실을 안 즉시 되돌아 올랐어야 했는데, 그땐 정말 힘이 들었어서 찾는 것을 포기했는데 이후 계속 아깝고 궁금했었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5시 전에 잠이 깼다. 이젠 새벽 바람이 차긴 해도 겨울의 모진 기운은 확실히 없다. 아내가 만들어 준 샌드위치와 뜨거운 커피 한 병, 그리고 혹시 몰라 보온용 여벌 옷을 넣고 지난주에 넣었던 새 아이젠을 뺐다. 어? 그런데 핸드폰이 충전이 덜 됐다. 충전선이 접촉불량이다. 집에서 나가는 시간을 늦추며 최대한 충전했다. 충전율이 88%가 된 것을 보고 플러그를 뽑고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서기까지 3분이 걸렸다. 7시 38분 열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갔다.

대곡역에서 환승하며 임산부석에 앉은 이를 노약자석으로 보내고 구파발에서 만원인 704번을 보낸 후 바로 뒤에 온 주말버스를 탔다. 옆에 앉은 등산객들에게 숨은벽으로 가는 교통편 이용법을 얘기하니 고맙다며 박사란다. 근처에서 자랐다고 하니 그들 일행 중 한 명이 나를 보고 비싼 옷을 입었다고 한다. 상표가 그런 것이긴 해도 아주 오래된 것들이라 하고 산입구에서 내리니 뒤에 구파발에서 먼저 출발한 704번이 왔다. 가끔은 쉬었다 천천히 가는 것이 좋고 편한 경우도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푸른 기운이 돈다. 새소리와 물소리가 함께 어울려 봄 분위기를 돋운다. 그래 이런 느낌에 죽어라 산에 오는 거다. 그런데 이제 걷기 시작이니 몇 군데 오르기 힘든 곳이 떠오르며 넌 이제 죽었다 겁을 준다.  
 
서암사를 지나 돌계단을 내려가니 길모퉁이에 진달래가 피었다. 색이 연해서 그런지 모습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진달래는 무리 지어 있는 경우 외에는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것도 기후변화 때문인가?
생강나무도 노랗게 피었다. 그리고 버드나무도 연한 연두색 잎사귀를 살포시 내밀기 시작했다. 참 귀엽고 예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노란 것 같은 연한 연두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색을 찾아 계곡을 오르다보니 힘든 것도 둘째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역사관 앞 쉼터.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걷는다. 백운동계곡 길 가 물색이 참 맑다. 아주 작은, 이름 모르는 노란 들꽃, 보라색 들꽃도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 이제 또 다시 새 계절이 온 거다. 새 시절에 맞춰 살아야 하는데 코로나를 이유로 움추리기만 하는 것은 그냥 핑계일 뿐일까? 
 
"백운동문"이 암각된 선바위가 있는 옛길로 오르는 바윗길을 네 발로 오르며 늘 희열을 느낀다.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 때문일 거다. 그런데 옛길로 오르는 일이 이제 점점 더 힘이 든다.
산영루 앞 계곡에 한 덩어리의 얼음이 아직 남아 있다. 아직 겨울이 끈을 놓지 않았구나. 
 
아마존에서 김이 서리지 않는 것이라 해서 보안경을 샀는데 얼굴에 잘 맞지 않고 김도 서려 그동안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클리를 잃고 나서 지난주부터 배낭에 넣고 다니다 오늘 썼더니 확실히 발아래가 잘 보였다. 그러나 자꾸 흘러내리고 김이 서려서 모자 위에 올려 뒀다가 험한 구간에서 내려 쓰며 걸었다. 썬그라스는 매장에 가서 써 보고 맞는 것을 사야 되겠다. 
 
행궁지 앞에서 배낭을 내리고 스틱을 폈다. 젖은 진흙길이 미끄럽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힘들게 올라가는 구간이 시작되는 데다가 잃은 물건들이 있나 보려면 낙엽을 뒤적여야 해서다. 낙엽을 뒤적거리며 내려왔던 길을 되짚었지만 혹시나 했던 작은 기대는 역시나였다.
힘들게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니 2주 전에 무릎까지 쌓였던 눈은 흔적도 없다. 이제 이 능선도 꽃밭이 될 준비로 나뭇가지들이 망울을 키우느라 분주하다. 진댈래가 먼저 꽃밭을 이루고 곧이어 정향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어 향기를 날릴 것이다. 기대된다. 
 
남장대지앞에서 의상능선 너머로 오랫만에 희미하게 동네가 보였다. 반갑다. 상원봉에서 보이는 산이 맑아졌다는 느낌이다. 비가 지난 겨울의 때를 다 벗겨냈나 보다. 문수봉에서의 시야도 맑고 넓다. 봉우리 바로 아래에서 등산객이 빨리 내려가는 길을 묻는 젊은이들에게 버벅이며 답하는 것을 듣고 대남문으로 내려왔는데 길을 묻던 이들이 지도판 앞에서 손가락을 짚으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 물어보니 가장 빨리 민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단다. 대성문에서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고 나는 성곽길로 올라섰다.  
 
대성문에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좀 전에 통화해서 대성문에서 보기로 한 눈비돌이 대동문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곳에 있으라고 하고 보국문을 지나 대동문으로 빨리 가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기다리고 있던 눈비돌을 만나서 같이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북한동으로 내려오던 중 알탕을 하고 싶단다. 아직 얼음이 있는데.... 길을 내려오다보니 물가에 앉아 족욕을 하고 있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난 차가운 물속에 손을 넣기도 싫은데.... 눈비돌은 중성문 옆 계곡으로 내려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늘 내려오는 길은 큰 감흥이 없고 힘이 들어 길이 어서 끝나기 만을 바란다. 오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관 옆 산비탈에 핀 진달래, 길가에 얼굴를 내밀기 시작한 개나리, 만개한 생강나무꽃,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도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올라갈 땐 예뻐서 되돌아보기까지 했는데, 오를 때와 내려올 때의 차이가 참 크다. 그렇게 바삐 걸어 산을 내려왔다. 등산복을 살피러 클라터와 몬츄라 매장에 들린 눈비돌의 치킨을 위해 쉼터에 잠시 들렸다가 집으로.... 
 
전날 마시고 또 마신 후 바로 자리에 누우니 당연히 속이 쓰리지....  언제나 이 못된 습관을 고치나, 완전히는 못 고치겠지?
 
 

서암사 위의 돌계단을 내려가서 모퉁이를 돌아드니 진달래가 살포시 미소 짓고 있다.

물가 버드나무가 잎을 내고 있다.

계곡폭포에 물도 많이 흐르고.....

연한 연두색의 잎들이 계곡을 환하게 만들고 있다.

역사관 앞. 이제 봄이라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등산객들이 제법 있다.

산영루 옆 계곡에 아직 얼음이 남았다.

행궁지 아래 계곡의 Y자 얼음. 내가 아는 한 이곳의 얼음이 가장 늦게 녹는다.

이 암벽을 넘어서 10미터를 더 오르면 남장대지능선 끝의 의자소나무가 있다.

윗 사진의 암벽 위에서 보이는 삼각산

건너편 주능선에 대성문이 보인다.

내가 사는 동네도 살짝 보이고 살았던 동네는 잘 보이고 의상능선은 저 아래 있고....

의상능선 끝 나한봉에 성랑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상원봉에서 보이는 삼각산

문수봉에서 보이는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삼각산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요즘 문수봉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인데 같이 다니는 이들이 부럽다.

여기서 쉬면 좋은데 앞뒤로 갈길이 멀다. 어서 내려가서 쉬어야지....

남쪽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 북쪽전망대는 보국문 쪽으로 조금 내려가야 한다.

남쪽전망대 봉우리에서 본 주능선과 남장대지능선

남쪽전망대봉우리의 모습. 성곽 뒤로 보이는 왼쪽 끝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북쪽전망대에서 보이는 칼바위

보국문

칼바위와 형제봉

대동문. 오늘은 여기까지 걸었다. 점심은 동장대 쪽으로 가다가 있는 쉼터에서....

넌 누구니?

대동문 앞에서 눈비돌을 만났다.

중성문 옆 계곡

오늘은 하늘이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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