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일기예보를 봤는데 잘못 눌렀나 싶었다. 새벽 5시에 섭씨 13도였다. 낮엔 21도라고 나왔다. 오늘 같은 날에 겨울옷을 입고 산에 가면 땀으로 목욕해서 쩔은 냄새가 진동할 터였다. 해서 배낭부터 작은 맨티스로 바꾸고 비상용 3백 미리 물 한 병, 5백 미리 물 한 병, 샌드위치, 쵸코렛 세 개 넣고 끝. 하절기용 복장에 바람막이를 입고 집을 나섰다.
탄현역에서 7:38분 열차를 타는 것이 승객도 얼마 없고, 대곡에서 환승하는 시간도 좋아서 가급적이면 이 차를 타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구파발에서도 3분만 기다리면 주말버스가 텅 비어 오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버스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는데 발걸음이 무겁고 비틀거린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이라고 단정을 하니 후회스럽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숲이 환하다. 입구에서 부터 진달래가 잔뜩 피었고 버들강아지도 연두빛을 자랑하고 있다. 계곡 안으로는 개나리와 생강나무꽃도 만발했고 서암사 앞 살구꽃도 나무들 뒤에 숨은 듯 피었다. 산새들이 반갑게 아침인사를 하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잘 다녀오라 손 흔들어 걱정해 주고 있다.
이젠 전날의 행동에 따라 다음날의 컨디션이 좌우되고 있음을 부쩍 느끼고 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좀체 정렬이 되지 않지만 어쩌냐? 산에 왔으니 힘들어도 올라가야지. 역사관까지 두 명이나 앞질러 간다. 앞지르진 못하고 뒤쳐지기만 했다. 역사관 앞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이어폰을 꺼내 끼고 다시 일어났다. 산에 들어온 시간 상으로는 풀코스를 걷는 것이 맞지만 오늘은 어제 때문에 10키로만 걷기로 한다. 그래 보국문에서 대피소로 걷자.
산영루 옆 계곡엔 아직 얼음이 손바닥 만큼 남았다. 대피소 갈림길을 지나니 길가에 작은 보라색꽃이 많이 무리 지어 피었다. 이름을 모르니 "모야모"에서 묻기 위해 사진을 찍어 두었다. 경리청상창지 위쪽 행궁지 계곡의 얼음이 길에서도 보였다. 이 골은 한여름에도 차가운 바람이 내려오는 곳이다. 산을 오르며 비틀거림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하다. 맨티스배낭에는 스틱을 꽂을 수가 없어서 불편하다. 접으면 배낭에 쏙 들어가는 작은 스틱을 하나 장만해야 할까 보다. 오늘은 스틱을 쓰는 이들이 부럽다.
보국문까지 휘청휘청 돌부리에 채이며 힘겹게 올라 성문 위에서 한참을 쉬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봄이 되어 그런지 주능선에 등산객들이 많이 늘었다.
내 기억에 4월엔 바람이 오후가 되어서야 불었다고 생각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쉼 없이 계곡이건 능선이건 가리지 않고 불어댔다. 그래도 새들은 여전히 서로를 부르고 있다.
대동문과 동장대를 지나 대피소를 향해 가는 길 길가에 작은 노란꽃들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피었다. 넌 또 누구니? 오늘 산에서 이름을 아는 꽃은 진달래, 개나리, 살구꽃, 벚꽃, 산수유, 생강나무꽃, 백목련 조금 더 있으면 피는 개복숭아 그러고 보니 다 나무들이네.
부지런히 걸어 대피소에 도착하니 텅 비었다. 그러나 내가 독차지한 것도 잠시 다른 등산객들이 쉬러 들어왔다. 그런데 이 세 명은 물 한 모금 마시고 그냥 앉아만 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집에서 싸간 샌드위치가 빵이 두꺼워 양이 너무 많았다. 다음엔 두께가 얇은 식빵으로 사야겠다.
옆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던 이가 어깨쌕에서 3백 미리 얼음병 두 개를 꺼내는 걸 보니 얼음만 있고 물이 없다. 열심히 흔드는데 그런다고 얼음이 물이 바로 되진 않지. 한여름에 내가 했던 고생과 목마름이 생각나 물을 나눠주려는데 벌써 저만큼 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 길. 이 길을 좀 쉽고 편하게 갈 수는 없을지. 늘 내려가는 일이 걱정이다. 그래도 올라오는 이들 중에 아는 얼굴이 있나 살펴보며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무사히 잘 내려왔다.
오늘은 집에 가면 꽃게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서 가야지....
집. 역시 꽃게는 맛있다. ㅎ~~
계곡입구의 연두와 초록빛
개나리
진달래
서암사 앞 살구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계곡 물가의 버드나무에 버들강아지가 피었다.
폭포에 물이 많이 줄었다. 이번주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졸졸 흐르겠다.
"모야모"에서 많이 이름을 들어 본 "현호색"이라고 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역사관 앞에 등산객들이 많다.
중성문 아래 계곡에도 연두와 초록빛이 감돈다.
이제 잎이 나면 저 인면바위도 많이 가려지겠다.
용학사 모퉁이를 돌기 전에 보이는 나월봉. 이 자리에서는 무척 높아 보인다.
나무들에 둘러쌓인 산영루. 잎이 나면 이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산영루 옆 계곡에 남은 작은 얼음
용학사샘 앞 나무들이 잎이 나기 시작했다. 맨눈으로는 붉은 기운이 많았는데 사진으로는 노랗네.
행궁지로 향하는 계곡 저 위에 얼음이 보인다. 왼쪽이 경리청상창지이다.
좋지 않은 컨디션에 오느라 고생했다.
칼바위 앞에서
제단이 있는 봉우리에서 동장대를 향하다 보이는 삼각산과 동장대
동장대에서 보이는 주능선,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의상능선
이 노랗고 작은 애는 노랑제비꽃이라 했다.
텅 빈 대피소. 내가 저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봉성암 가는 길에서 갈라지는 대피소 가는 길. 얼마전까지 얼음으로 덮였던 곳이다.
산영루 앞에 세워진 김정희의 "산영루" 시판
백운대로 가는 길에 백목련이 피었다. 노적사 아래 계곡 정자 위의 보라색 적목련은 아직 꽃몽우리도 맺지 않았다.
보안경이 생각 외로 길이 잘 보이고 김이 서리지 않아서 이러고 긴 길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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