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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행궁지 - 대피소

2021.01.01. 오늘이다. 지금은 오후 3시가 넘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2021년이 왔다. 오지 말라고 그리 부탁했건만 도둑고양이 처럼 몰래 왔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재단해 놓은 시간 단위가 큰 의미를 갖게 되어 우리의 삶을 옭아 매고 있다. 나 또한 그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새해 첫 해를 산에서 보겠다고 집을 나섰다. 코로나 때문에 북한산 문을 7시에 연다고 했다. 그러면 예전의 새해 첫 날, 내가 산에 들 때 마다 떼로 내려오던 이들을 볼 수 없단 얘기다. 동네 산에 가거나 차를 갖고 해맞이 하기 좋은 곳을 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다. 그냥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배낭엔 과일도 김치도 없이 튀김컵라면 작은 것 하나만 넣었다. 그런데 동네 아침 기온이 영하 ..

등산 2021.01.02

12.26 보국문 - 대피소

얼마 전에 태양계를 벗어나는 우주선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봤다. 그냥 밤하늘을 봤을 때 보이던 별에 더도 덜도 아니었다. 그 푸른 점 하나, 그 속에서도 보이지 조차 않는 작은 나라의 아주 작은 동네 속 조그만 집에 둥지를 틀고 있는 내가 얼마나 의미있는 존재일까 생각했었다. 25일에 아들이 제 식구들과 같이 집에 왔다. 나에겐 손주를 보는 것이 종교인들이 구원자를 보는 것 만큼 의미있고 신난다. 그런 녀석이 왔으니 허리 아픈줄도 모르고 무등도 태우고 같이 놀며 신이 났었다. 뗑깡을 부려도 그저 예쁘고, 아무리 집안을 어지럽혀도 그저 웃음만 나오게 하는 녀석이 왔었던 거다. 내가 산으로 가기 위해 보통 때처럼 집을 나설 수가 없었다. 산에 가는 것보다 손주를 보고 있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10시..

등산 2020.12.27

12.20 대피소 - 대성문

일요일에 산에 오면 다음날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없어서 가급적 토요일에 오는데 어젠 아내의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산에 오질 못했다. 코로나 보균자가 널리 퍼져 있어 조심을 많이 해야 되는데 누군지 알 수가 없어 이젠 밖에 다니지 않고, 다니더라고 마스크를 잘 쓰는 수 밖엔 없는 것 같다. 아내가 어제 사무실에서 가지고 온 빵과 단감을 한 개씩 넣고 중간치 보온병을 넣는 것으로 배낭 꾸리기를 마쳤다. 아침 기온이 영하 11도라 내복바지를 입고 핫팩을 뜯어 주머니에 넣고 몽골제 울양말을 덧신고 귀마개에 넥워머까지 하니 바람 한 점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인데 몸이 둔하다. 추워서 그런지 코로나 때문인지 차에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니 열차도 버스도 거의 텅텅 비었다. 썰렁한 기운이 차내에 돈다..

등산 20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