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면서 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온이 가장 낮은 아침에도 27도가 넘어 에어컨이 없으면 견딜 수가 없다. 강원도 깊은 산속 시원한 계곡으로 들어가 숨고 싶다.
또 토요일이 왔다. 너무 더워서 더위 먹고 쓰러질 까 봐 산에 가고 싶지 않은, 그러나 집에 있으면 못가서 안달이 나고 후회할 것이 뻔해 배낭을 꾸렸다. 둘째 손주를 보러간 아내 없이 열흘 넘게 혼자 밥 해 먹고, 청소하고 빨래 며를 다 하자니 도시락 준비하기가 귀찮다. 그래서 MRE B20번을 뜯기로 했다. 그외에 수박을 넣고 알탕 후에 마실 것과 육포를 하나씩 넣고 보온병에 얼음도 담았다. 그리고 갈아입을 옷도 넣었다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라운드시트만 넣었다. 그러다보니 26리터 짜리 배낭이 꽉 찼다.
덜 더울 때 산을 오르려고 7시도 한참 전에 집을 나섰다. 탄현역에 도착하니 열차가 접근 중이란다. 뛰어가서 열차를 타니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핸드폰을 보다가 대곡역을 지나쳤다. 능곡역에 가서 돌아오는데 계속 열차가 역에 접근 중이라 뛰어다녀야 했다. 구파발역에서 한참을 기다려 704번을 타고 산으로 향했다. 산에 들어가기도 전에 뛰어다니고 서서 오느라 지쳤다.
계곡으로 드니 물소리가 시원하다. 다행스럽게 그리 덥지는 않았다. 하지만 걸을 수록 더워졌다. 게다가 바람 한 점 없다. 이대로 중흥사 위 계곡에서 발 담그고 놀다가 한 숨 자고 내려오고 싶다. 오르는 내내 이 더위에 어찌할 지 고민했다. 그렇게 걷다가 생각했던 알탕 장소를 지났다.
배낭에 물도 있고 얼음도 있으니 대성문에 갔다가 대동문이나 대피소에서 내려오자고 마음을 먹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무더운 산길을 걷는 것은 고행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늘 속을 걷는다는 것. 조금 이른 시간 임에도 산길에 사람들이 많다. 모두 더위를 피해 일찍 나왔나 보다. 아직은 계곡에 발 담고 있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성사를 지나 대성문으로 오르는 길이 참 힘들다. 땀으로 다 젖은 옷과 배낭이 무거운 몸을 더 힘들게 한다. 이럴 때 시원한 바람이 분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을 멈춰 숨 고르기를 한 후에 간신히 대성문에 올랐다. 이미 많은 이들이 쉬고 있다. 나도 보국문 쪽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얼음물을 만들어 마셨다. 목 부터 뱃속까지 시원해진다. 옆자리 산객이 누웠는데 편해 보인다. 나도 따라서 누웠다. 누우니 바람이 부는 듯 시원해진다.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잠들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내가 누웠던 자리가 다 젖었다. 조금 옆으로 옮겨 다시 누웠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는다.
충분히 쉬고 일어나 어디로 갈까 하다가 한동안 오르지 않았던 문수봉을 가기로 한다. 이미 처음 생각과 산길이 많이 달라졌다. 성곽을 따라 돌계단을 오르는 발길이 곧 무뎌진다. 충분히 쉬었고 기력을 회복했는데도 곧 힘들어진 것이다. 이게 나이탓인가 보다. 이제는 오르막 산길에서 내가 뒤쳐져도 그런가보다 한다. 이제껏 산에 다닐 수 있음을 감사해 한다. 욕심이지만 앞으로 이삼십 년 정도 더 다닐 수 있으면 정말 고맙겠다.
헐레벌떡 문수봉에 오르고 나니 이제 내려갈 일이 남았다. 당연히 남장대지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꾀가 생겨 청수동암문에서 상원봉을 오르지 않고 옆길로 빠져 자주 쉬는 바위로 향했다. 그리고 암릉을 내려와 옆으로 도는 길로 행궁지를 지났다.
계곡엔 오를 땐 없던 사람들이 쉬고들 있다. 내가 쉴 장소에도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아무도 없다. 배낭을 벗고 서둘러 자리를 펴고 바위 아래 물속으로 들어갔다. 시원하다 못해 저리다. 너댓 번을 잠수한 후 물밖으로 나와 점심을 하려는데 조은네 님이 전화를 했다. 두어번 더 통화를 해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쉬다가 내려오는데 역사관에 내려오니 이미 옷은 다 말랐다. 더운날 짧지 않은 길을 걸어서 그런지 알탕을 했음에도 피곤해 대서문을 지나 자연관찰로로 내려왔다. 그리고 들꽃에 들려 뒤풀이를 하고 집으로....
집에 와서 땀에 절은 옷을 빨아 널고 막걸리를 한 병 마시다 꿈속으로....
다행스럽게 오늘 아침은 아직 덥지 않다.
평화의 댐 상류 계곡이나 미천골자연휴양림 숲속에 들고 싶다. 그곳은 한여름날에 천국이었는데....
이제 산으로 들어간다. 하늘이 한증막 같아 보인다.
올들어 이 폭포는 한번도 마르지 않았다. 비가 계속 온 덕분이다.
중성문 아래 계곡. 내려올 때 이 자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백운동계곡길. 숲이 짙푸름이 한여름이다.
겨우 대성문에 닿았다. 여기서 쉬다가 성곽을 따라 문수봉을 올랐다.
대남문으로 내러서기 전에 본 문수봉과 똥싼바위
저 아래 비봉능선이 있다. 지난주에 걸은 길이다.
문수봉에 왔으니 증명사진을 한 장 남겼다.
청수동암문 사이로 구파발이 보인다.
의상능선 너머로 내가 살던 동네가 보인다. 지금 사는 곳은 뿌예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장대지능선길에서 본 주능선. 앞에 대성문이 보인다.
능선 끝의 의자소나무. 힘이 들어 이 의자 신세를 졌다.
행궁지로 내려오는 암릉에서 보이는 삼각산.
행궁지 아래 공터에 핀 꽃들
알탕을 하고 조은네님을 만나 도시락을 폈다.
조은네 님과. 처음엔 응달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들었다.
역사관 앞 데크에도 금줄이 쳐졌다. 여럿이 모이지 말라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해 놓으니 마땅히 쉴 곳이 없다.
힘이 들어서 편한 대서문으로 내려왔다.
다 내려왔다. 하늘이 맑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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