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8/31 행궁지 - 대성문

PAROM 2024. 9. 1. 07:07

바로 이런 기분이었다. 토요일 일찍 산에 다녀와 샤워를 한 후 마루바닥에 앉아 김치와 호박전에 시원한 막걸리 마시는 이 기분. 맨 정신에 집에 와 마시는 게 얼마 만인 지 기억이 안 난다. 참 좋은 기분이지만 집에 막걸리가 한 병 뿐이라 아쉽기 그지 없다.
북한산 능선에 오른 것이 숨은벽능선 이후 24일 만이고 문수봉에 올랐던 것은 몇 년이 지난 느낌이었다. 
 
손주들 등교 시키러 안산에 갔던 아내가 어제 한낮에 돌아왔다. 혼자 살림을 하다 아내가 오니 몸과 마음이 다 편하다.
열대야 때문에 북한산에 갈 엄두도 못 냈는데 요 며칠 새벽 기온이 24도에서 22도를 찍었다. 운동을 하러 새벽에 집을 나서면 서늘한 기운이 들었었다. 이러면 북한산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아내는 늘 "내일 산에 가지?" 하고 묻는다. 나는 "응" 아니면 "네" 고 귀찮으면 "...." 다. 내가 편의점에서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가져온 것이 남아 있으면 물과 과일을 챙겨 준다. 늘 참 고맙다.  
 
오늘은 아내도 오랜만에 일을 하러 간단다. 앞으로 여드레를 계속 간단다. 그 바람에 다음 주 화욜 부터 금욜 까지 내가 새벽에 안산으로 가야 한다. 덕분에 손주들 얼굴을 보게 됐다.
새벽 4시인데 부엌이 소란하다. 참 부지런하다. 잠이 깼지만 일어나지 않고 버티다 6시에 방밖으로 나왔다. 밥을 먹고 배낭을 꾸리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새벽에 만들어 준 샌드위치와 수박, 물 두 병을 넣고 집을 나서는데 등산화 끈을 매는 일이 서툴다. 이젠 신발끈 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서둘러 탄현역으로 가서 6시 57분 차를 탔다. 일찍 나서니 편히 구파발역 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정거장으로 가는데 704번이 지나  간다. 다음 버스는 15분 후에 온단다. 대곡역에서 환승할 때도 15분 정도 걸렸는데....  이러면 일찍 나온 혜택이 없다. 시외버스나 주말버스가 일찍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8시가 다 되어 만원인 704번을 타고 산으로 향했다. 그냥 평시 처럼 7시 37분 차를 탈 걸, 그러면 5분 차이 주말버스로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랜만에 밝고 시원하다. 탐방지원센터 앞에 등산객들이 무척 많다. 날이 더우니 모두 부지런해 졌나 보다. 그들을 힐끗 보며 지나쳐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에 작은 물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미풍이 분다. 다행이고 고맙다.
발걸음이 가볍다. 허리도 튼튼하다. 이게 뭐지? 오랜만에 왔다고 산신령 님이 보호해 주시나?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실력은 금방 들통났다. 서암사 옆 나무데크를 오르는 발이 중간을 넘자 흔들거린다. 에구, 오늘 죽었다. 그래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곡을 올랐다. 대신 옷은 젖어들고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 갔다. 바람이 없다. 
 
힘겹게 역사관 앞 데크에 올랐다.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리를 풀고 있는데 지나쳐 온 이들이 모두 지나 간다. 서두르나 여유를 갖나 결국은 같은 결과다. 이어폰을 끼고 길로 나섰다. 아주 오랜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이 흐른다. 오랫만에 들으니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로 가지? 주능선이든 남장대지능선이든 봉우리 하나는 오르자 맘 막었다. 역사관을 지나자 등산객들이 뜸하다. 힘이 더 드는 기분이다. 백운대에 못 간다는 소식을 모르고 온 등산객들이 이정표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선봉사 앞 비탈이 힘들다. 이제 계속 오르는 길이다. 힘 드니 그냥 돌아갈까?
계속 오르기만 하는 계곡길을 따라 죽을 힘을 써 가며 오르는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거의 평지인 여기서 이리 헤매는데 행궁지를 지나 본격적인 오름길에선 어쩌려나?  
 
흐르는 땀에 앞가슴이 다 젖었다. 갈림길에서 행궁지길로 접어드니 풀이 깊다. 길에 돌들도 마구 흩어져 있다. 헛 짚어 발이 뒤틀린다. 이길을 오를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행궁지 오름 옆 작은 공터에 들려 배낭을 벗고 스틱을 펼치는데 눈 앞이 까매진다. 깔따구들의 공습이다. 물도 못 마시고 도망 나와 깔따구가 따라올까 봐 얼굴에 거미줄이 달라 붙어도 그냥 죽어라 비탈길을 올랐다. 이게 뭐하자는 짓인지 후회가 막급이다. 
 
네 발로 오르는 구간을 지나며 안정을 취했다. 높이가 있으니 깔따구가 없나 보다. 고개를 돌리니 나월봉이 환하다. 볕이 직각으로 쏘고 있으니 눈이 부실 정도다. 본 능선을 만나기 직전 지나간 젊은이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에 낙담했다. 어쩌랴 세월이 야속하지만 아직 여기 올 수 있는 것 만도 감사해야지. 많은 등산객들의 발에 뭉개진 비탈을 스틱에 의지해 겨우겨우 오르다 삼각산과 마주한 바위와 만났다. 여기만 오르면 다 온 거다. 바위를 올라 삼각산과 마주하니 가슴이 탁 트이며 시원해진다. 늘 이런 기분에 여기를 왔다. 바로 능선에 올라 여유를 만끽하며 천천히 걷는다. 
 
청송대 바위에 올라 삼각산과 주능선을 조망하고 남장대지로 향했다. 오랫만에 왔더니 길이 변한 느낌이다. 없어진 바위도 있고 죽은 나무가 길을 막고 있고 힘도 더 많이 들고.... 꽃 피던 시절에 이 능선의 정향나무꽃을 봤어야 했는데....깊은 후회가 나지만 어쩌랴.
힘이 더 들어도 늘 다니던 길을 걸었다.  다음에 올 땐 오늘보다 더 힘이 들겠지. 요즘 운동 시간과 강도를 줄여야 되나 고민이다.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퍼지기만 하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남장대지능선에서 보이는 일산의 높은 건물이 분간이 안 돼 아쉽다. 
 
스틱에 의지해 상원봉을 바윗길로 내려갔다. 눈만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청수동암문 앞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며 잠시 쉬는데 누가 지나간다. 홀린 듯 바로 일어나 따라서 문수봉으로 가는데 왜 내가 앞질러 가냐? 미쳤다.
문수봉에 오르니 반갑고 익숙하다. 다른 때  보다 시야도 좋다. 사진을 찍고 바로 대남문으로 내려섰다.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조금 아쉽다. 대성문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성문 앞으로 가니 아직 이른 시간이다. 이제 내려가면 집까지 그대로 갈 기세다. 성문 앞 의자의 그늘 위에 앉아 시원한 수박과 얼음물, 샌드위치를 비웠다. 
 
내게 내려가는 길은 초죽음의 길이다. 힘들어 발이 뒤틀리는데다 잘 보이지도 앉으니 넘어지지 않고 내려오면 다행이다. 장마 때문에 많이 드러난 돌맹이들 덕에 더 많은 고생을 하며 내려왔다. 역사관 앞에서 다시 쉬었다가 자연관찰로로 내려섰는데 데크 광장에 70명 정도 되는 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혹시 아는 이가 있나 내가 찾을 필요는 없었다. 낮선 이의 출현에 그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으니.... 그리고 너무 많은 이들이라 설사 아는 이가 있었어도 내가 알아 보기는.... 
 
산을 내려와 기분 좋게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싶었으나 CU에 들려 목을 추기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집으로....   
 
앗! 그새 막걸리가 뜨거워졌다.

 

자 오랜만에 북한산으로 가자!

 

탐방지원쎈터 앞에 등산객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제 등산 시작이다. 물소리가 반가웠다.

 

수문자리에서의 원효봉

 

폭포에 물도 떨어지고....

 

역사관 앞. 

 

중성문 아래 계곡. 물이 맑아 그냥 들어가 발을 담고 싶었다.

 

네 발로 바위를 오른 후 보이는 나월봉

 

산영루

 

인적을 느낄 수 없는 행궁지. 발굴 안내판도 오래 되었고, 언제 다시 공사를 한다는 안내도 없고....

 

이 바위를 오르면 능선에 거의 다 온 거다.

 

앞 사진의 바위에서 본 삼각산

 

앞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보이는 주능선

 

남장대지능선 끝의 의자소나무

 

능선의 편안한 길

 

능선의 나무들 사이로 나월봉이 보였다.

 

주능선 뒤로 칼바위가 보이고 능선의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청송대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볕에 얼굴이 찡그려 졌다.

 

남장대지 옆 바위에서 본 의상능선과 고양시. 내가 사는 동네는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의상능선 끝의 나한봉. 사진을 찍을 때 능선을 걷는 이들이 보였는데....

 

상원봉에서 본 삼각산

 

상원봉의 표지판

 

청수동암문이 나무에 가려졌다.

 

청수동암문 앞의 조망. 왼쪽으로 구파발이 보였다.

 

문수봉에서 보는 구기동계곡

 

비봉능선

 

문수봉에서 증명사진

 

문수봉에서....

 

대남문이 숲에 파묻힌 것처럼 보인다.

 

대성문

 

북한동역사관 앞. 내려가는 중인데 이제 오르는 이들이 많았다.

 

대서문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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