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고 날씨를 보니 오후 2시부터 비가 온단다. 그리고 기온은 16도. 초가을 날씨다. 지난주에 못 갔으니 오늘은 하늘이 반쪽이 나도 산에 간다.
김장을 해서 피곤해 하는 아내를 깨워 같이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그런데 옷을 겨울 것으로 잘못 입어 탄현역으로 가는 데 벌써 땀이 난다. 6-1승차장에서 헬스장 친구인 계사장을 만났다. 그제 저녁에 같이 진하게 마셨고 어제도 운동하며 봤는데도 역시나 반갑다.
새로 생긴 37번 버스 덕에 탄현역에서 한 시간 만에 산에 왔다. 산에 닿자마자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으니 살 것 같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썰렁하다. 활엽수 잎이 거의 다 져서 하늘이 환하게 보인다. 산 아래 계곡엔 아직 가을이 조금 묻어 있다. 희미한 물소리를 옆에 끼고 땀을 흘리며 긴 계곡을 기를 쓰고 올랐다. 관절염에 부은 손가락을 맛사지하며 오르느라 다리가 아픈지 손가락이 아픈 것인지.... 그래도 아침 마다 오래 계속한 맛사지 덕에 이제 상태가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
역사관 앞에서의 쉼은 일상이 되어 이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늘도 데크에 올라가 쉬며 몸을 풀었다. 그러다가 옆 의자에서 뭔가를 먹는 산객을 넋을 잃고 보는 바람에 길로 늦게 나섰다. 출발 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딸이 사 준 새 이어폰을 끼고 작은 고양이 세 마리의 음식 탐구도 보았다. 근처에 개들도 있었는데 모두 고양이들만 보는 듯 했다.
바위꾼들로 보이는 몇몇을 앞질러 걸으며 어디로 갈까 생각을 했다. 지난번에 행궁지에서 대피소로 걸었으니 오늘은 반대로 대피소 부터 시작하자.
옛길을 통해 중흥사 앞을 지나는데 가슴에 번호판을 단 젊은이가 휙 뛰어 내려간다. 뭐지? 지난 번 대회 때의 번호를 달고 연습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태고사를 지나는데 번호판을 단 이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온다. 뭔 대회가 또 있는가 보다. 대피소로 오르는 좁은 길에서 그들을 마주치니 서로 피해주느라 불편하다. 대피소로 오르며 마주친 이들이 백 명도 넘은 것 같다. 그런데 대피소 바로 아래 물이 흐르는 바위 구간에서 여러 명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엎어지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위험한 구간에 진행자는 없었다. 대피소에 올라가 쉬다가 길 옆에서 방향을 안내하는 진행자에게 상황을 얘기해 줬는데 사실 진행자가 뭔 결정권이 있겠나. 다음에 기획할 때 참고해서 잘하라고....
잎을 떨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문수봉을 뒤로 하고 대동문으로 향했다. 이젠 급하게 오르는 길은 없으니 마음이 편하고 길도 편하다. 이제 시작한 동장대 보수공사 때문에 빙 돌아서 가는 길이 불편한데 오랫동안 이럴 것이다. 보수공사가 끝날 때까지 대피소와 동장대를 거를까? 그래도 될것 같다. 대동문으로 올라서 능선을 걸으면 되니까. 대동문 위의 제단을 지나다 옷옷을 벗은 놈을 봤다. 제단 위에 배낭을 던져 놓고 뭔 짓들을 했는지.... 배낭은 셋인데 두 놈만 있으니 한 놈은 성벽 넘어서 배변을 하는 것 같았다. 등산 인구가 많아지니 걸레들도 많아 지는 듯하다.
보국문에 가까워지며 고민을 했다. 대성문으로 갈까? 하지만 오늘은 그만 내려가고 싶다. 8시 37분에 계곡에 들어섰고 지금 2시간이 지났다. 이제 한 시간 반 정도 내려가야 한다. 보국문에서 내려가는 길,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뚜렷하지가 않다. 잔뜩 쌓인 낙엽과 흔들리는 돌들이 깔린 길이 참 싫다. 한참을 고생해 큰 길이 나오면 진이 빠져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길은 늘 이렇다. 내려오는 길에서 대동문을 향해 뛰는 뜀꾼들을 다시 만났다. 숫자와 이름을 보니 대피소로 오를 때 본 기억이 났다. 참하게 인사하던 얼굴도. 코스가 어떻기에 다시 만나는 지 궁금했는데 산을 내려와 산성입구 오들로 매장 앞 결승선을 둘레길에서 와서 뛰어드는 이들을 보았는데 몇 키로인지, 코스가 어떤지 궁금했다.
다시 역사관 앞 데크에 올라 쉬는데 옆에 아침에 봤던 이가 또 뭔가를 먹은 후 일어선다. 오늘 뭐지? 같은 장면이 이렇게 이어져도 되나?
쉬고 일어나 내려오는 길을 오랫만에 계곡길로 잡았다. 힘 들지만 요즘 다니는 찻길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나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 희망은 거의 그것으로만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
산을 내려와 바로 집으로 와서 샤워하고 열흘 만에 막걸리를 마셨다. 좋다. 이러니 산을 어찌 다니지 않을 수 있겠나.
가자! 산으로....
원효봉과 단풍에 빠진 계곡
산 아래 계곡.
게곡폭포가 보이는 풍경
명색이 폭포라고 물이 떨어지고 있다. 이나마도 흐르는 것은 지난주에 내린 비 덕분이리라.
역사관 앞에 닿았다.
백운대 가는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에 단풍이 예쁘다.
낙엽이 져서 휑해진 계곡
중성문도 이제 온전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에 가려졌던 계곡가의 정자도 보였다.
산 중턱의 큰바위얼굴도 보이고
용학사 모퉁이에서 보이는 나월봉
산영루 옆의 와폭
대피소 아래에서 만난 뜀꾼들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마당 앞 나무 사이로 문수봉이 보인다.
동장대로 가는 길. 마음도 편하고 길도 편하고....
전에는 괜찮았을 것 같던 일들도 이젠 늙은 표시인 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그 뒤 오른쪽의 백악. 지난 토요일에 그 아래에서 취했다.
보국문으로 내려가기 전에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을 배경으로
보국문
발굴 중인 경리청상창지 옆길
아미타사로 가는 다리와 원효봉 풍경
다 내려왔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7 행궁지 - 대성문 (6) | 2024.12.08 |
---|---|
11.23 대성문 - 행궁지 (1) | 2024.11.24 |
11. 2 행궁지 - 대피소 (1) | 2024.11.03 |
10.19 보국문 - 북한산대피소 (4) | 2024.10.20 |
10.12 보국문 - 행궁지 (7) | 2024.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