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1997년부터 2000년 2월까지 매일 들어보고 써보고 하던 단어인데 이제 8년이 넘게 지나 신성건설의 부도로 다시 친근(?)하게 듣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이 ‘법정관리’란 주제로 신성건설 이사였던 김종섭 건인회 전 회장이 운영하던 사이트에 전문적인 내용을 게재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때 만든 자료가 지금도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의 홈페이지 건설자료 란의 경영정보 편 법정관리 란에 올라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일을 겁도 없이 해치웠다. 같이 어려움을 겪던 단자사들의 동의를 받으러 서울과 부산이며를 쉴 새 없이 돌아다녔고 은행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설득했었다. 기업의 존속가치를 청산가치보다 높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고 사업계획을 인정받기 위해 공인회계사를 밤새 붙잡고 있어야 했었다. 겨우 은행의 동의를 얻고 단자사와 건설공제조합, 관련 채권자들의 동의를 모두 얻어 법정관리인가를 받기 위한 찬성 채권자를 확보하여 법원에서 인가가 떨어졌을 때의 기쁨도 잠시였다. 당시 상업은행에서 추천하여 법원에서 임명한 관리인이 말하기 뭣한 사람이라서 많은 임직원들이 고생을 했고 결국 나는 그 사람을 그만 두게 하기 위해 준비를 하다가 아부 꾼의 고자질에 걸려 그만두게 되었는데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길게 몇 달간 원 없이 쉬어 봤고 이후 대학이란 좋은 직장을 얻었으니 자존심 꺾지 않고 고집스레 일 해온 보람을 적어도 지금까지는 느끼고 있다.
만약에 다시 한 번 법정관리업무를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물론 예스다. 지금의 직장은 대학이라 업무가 6개월 1년마다 되풀이되는 조금은 따분한 직장이다. 반면에 건설회사는 같은 업무가 두 번 다시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다이내믹하고 사나이답다.
법정관리인가업무 추진 중 가장 중요하게 검토 되어야 할 것은 청산가치가 더 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금융기관은 반드시 파산시켜 빚잔치를 할 것이다. 금융기관뿐이 아니라 나부터도 그럴 것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정리채권과 담보권을 확정하여 이를 근거로 정리계획안을 만들어 채권자들로부터 가결을 받는 것이다. 지금 말로는 무척 쉬운데 이게 보통 작업이 아니다. 내가 다녔던 국제종합건설은 채무의 규모와 인원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담보채무만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체규모가 7 -8천억 원이었지 않나 싶다. 계열사였던 동서증권과 극동건설의 채무는 부정을 하고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채무확정을 위한 채권자연락 등 자질구레한 업무는 다른 부서에 맡기고 정리계획안을 만들고 금융기관의 동의를 받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뺏겨서 시간표대로 움직이기에도 몸이 모자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빚도 다 갚을 수는 없으니까 깎아야 되는데 이것이 매우 중요하고 어렵다. 담보채무를 깎으면 담보를 처분할 테고 무담보채무와 보증채무 등을 위주로 해야 되는데 아무튼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어렵게 법정관리 인가를 받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관할 법원이 부산이라 중요한 사안은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했으므로 수시로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법원이 관리인의 얘기만 듣는다는 것이었다. 관리인이 회사를 잘못 운영하므로 이걸 어떻게든 바로 잡아야 하는데 법원은 다른 경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자가 자신의 경영 잘못을 법원에다 알리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그 부분이 가장 큰 맹점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상한 관리인 때문에 회사가 다시 한 번 망할 뻔 했고 어렵게 모아 놓은 피 같은 자금을 관리인이 제 목구멍에 다 털어 넣어버려 화가 났지만 법원이 꿈적도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법원의 담당 사무관에게 사정을 해서 그분을 통해 얘기를 해도 듣지 않으니 결국은 내가 나가야 될 처지에 이르게 될 밖에 없었다. 내가 그만두고 들은 얘기는 관리인이 법정관리중인 회사를 헐값에 모 회사에 넘기고 자신은 법원에서 억대의 보너스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제 10년 만에 전과 같은 상황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법정관리는 정리계획을 잘 세우면 회사가 오히려 부실채무를 떨치고 건실하게 살아갈 기회를 갖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회사의 주인이 바뀔 수 있지만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전의 회사관리자도 관리인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무분별하게 사업을 펼치다 타인자본에 의지하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 쉽다. 사업을 계속하던 입장에서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상황이면 그냥 하고 마는데 주변경제상황이 예측범위를 벗어나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고 어서 떨치고 나가야 할 것이다.
법정관리라고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기가 막히게 좋은 제도가 있는데 이것을 활용하여 살아나가야 된다. 빚을 깎아주면 나머지 빚을 갚겠다는데 그냥 망하게 해서 모든 채권을 날릴 바보는 없을 것으로 본다. 단지 그 깎고 설득하는 기술이 어떻고, 관리하는 책임자의 마음자세가 무엇이냐에 따라 회사와 임직원의 향방은 정해질 것이다.
최근 보도되는 뉴스에 이런 유의 기사를 안 보았으면 하는데 그건 내 ka이고 경제상황은 그렇지 않으니 어쩌랴.
10년 전의 기억이 나서 끼적거려 봤다.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 업무라 기회가 오면 또 해보고 싶다.
2008.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