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8.27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2. 8. 28. 12:26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하늘 아래 푸른 빛을 뿜는 원효봉, 만경대, 노적봉이 길 건너에서 나를 보고 있다. 염초봉과 백운대도 같이 봤으면 더 좋을텐데 이 자리의 한계다. 
 
지난 주말에 못 왔다고 산이 화가 많이 났나 보다. 큰 길은 흙과 돌로 파인 곳을 복구해 놓았지만  작은 길들은 그대로라 험상궂게 내 발을 맞았다.
지난 화요일 새벽에 근력운동을 하다가 무리를 했는지 집에 오느라 자전거를 타면서 부터 오른쪽 어깨 뒤를 쓰지 못한 것이 어제까지 이어져 거의 꼼짝 못하고 지내다 오늘 새벽에 깨니 불편하긴 해도 배낭을 멜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 애인들이 있는 산으로 와야지.
아내는 그동안 아팠던 내가 영 불안한 가 보다. 어제까지 아파 죽겠다고 하던 이가 새벽에 눈 뜨자마자 산에 가겠다고 하니. 내가 생각해도 같은 마음이겠다. 
 
아내는 불안한 마음에도 어느새 빵을 굽고 감자와 단호박을 쪄 마요네즈와 뭉개서 샌드위치 속을 만들고 사과와 복숭아도 한 그릇 깎아 담아 놓았다. 나는 배낭에 담기만 하면 될 일이다. 늘 고맙지만 아내의 불평은 집 근처 고봉산이나 심학산을 서너 바퀴 돌고 오면 같은 데 왜 멀리 차비까지 써가며 가냐는 것이다. 산에 다니는 분들은 다 같겠지만 각자 좋아하는 산이 있다. 더구나 내 경우는 일주일에 한 번만 집밖에 나가는 것이다.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있는데....  북한산에 오면 우선 맘이 편하고 사람 구경도 한다. 게다가 매번 10키로 이상, 네 시간 넘게 걸으니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집근처에서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그건 매주 월욜과 수욜에 헬스장에서 한 시간에 10키로를 넘게 걷는 것의 연장에 불과하니.... 
 
늘 같은 시간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같은 사람들을 보며 북한산성입구에서 내렸다. 지난 여름엔 계곡입구까지 오며 땀을 흠뻑 흘렸는데 땀이 나지 않는다. 티셔츠 하나만 입어서 그런지 찬바람이 닿는다. 계곡입구에 들어서니 물소리가 차갑다. 계곡길이 그대로인 것 같지만 파여서 복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오늘은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찬기운이 잔뜩 실려 있다. 그래도 기를 쓰고 오르니 등에 땀이 난다.  
 
여러 팀을 지나쳐 올랐는데 역사관 앞에서 숨을 고르느라 다시 다 앞으로 보냈다. 땀이 식기 전에 다시 걸어야 한다. 백운대로 가는 이들을 보며 갈까 하다가 이내 그만 뒀다. 난 오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등이 불편하면 내려와야 한다. 짧게 대피소에서 보국문까지만 걷기로 했다. 햇볕이 눈부셔 썬그라스를 꺼내 모자 챙에 올리고 이어폰을 끼었다. 새로 내려 받은 노래를 틀었다. 발걸음이 가볍다. 
 
대남문으로 가는 계곡길은 나뭇잎 때문에 볕이 가끔씩만 든다. 그때만 썬그라스를 쓰면 된다. 불편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어디냐? 그늘 속 파헤쳐진 길에 발이 자꾸 걸려 엉터리 샹하이춤을 추며 대피소로 올랐다. 갈림길에서 부터 대피소까지 길이 파인 것 뿐 아니라 멧돼지가 흙을 뒤집어 놓아 오르기에 힘이 더 들었다. 
 
대피소 지붕 아래에서 배낭을 벗고 쉬는데 모기가 덤비지 않는다. 긴 비에 다 쓸려 갔나? 아무튼 고맙다. 지나쳐 온 사람도 지나가고 뒤에서 쫓아오던 이도 지나가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동장대를 향했다. 한참을 쉬었는데도 발이 돌과 나무뿌리에 걸린다. 저질 체력이 됐다는 말이다.  
 
그래도 능선 위의 성곽길에 닿으니 새로운 기분이다. 발걸음 가볍게 걷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고개가 돌아가질 않아 보질 못한다. 멈춰서서 돌아서면 아무도 없다. 이게 뭔 일이람.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아랫길로 두 명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아, 저들이었구나!
그런데 동장대로 가지 않고 아랫길로 간다. 그래 니들이 그래서 빠른 거지 하며 스스로 위안을 하며 만족해 한다. 좋은 기분으로 살아야 건강하게 산다. 대동문 위의 제단 앞 성곽에서 삼각산을 봤다. 맑아서 백운대의 태극기가 보였다. 가을이구나! 
 
불현듯 백운대에 오르고 싶다. 바위도 깨끗하니 오르기에 좋을 듯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어깨가 아파오니까. 대동문이 보수공사 중이라 철판담장을 둘렀다. 회사 한 곳에 공사를 주려고 한 것 아니면 성문 보수공사 발주를 동시에 구간별로 했을텐데 내내 공사를 하는 이유가 뭔가 궁금하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 보국문에서 계곡길로 내려오는 길은 내가 다닌 중 최악으로 변해 있었다. 도대체 비가 얼마나 왔길래 이렇게나.... 스틱을 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더듬더듬 긴 내리막길을 돌뿌리에 걸려 춤을 추며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오며 보니 올라가는 이들이 참 많다. 남자들은 다 키도 크고 몸집도 엄청나다. 여성들도 대단하다. 언제 이렇게 변했지? 옛날 버스로 중학교 등교할 때는 내 머리가 버스천장에 닿았는데. 아, 발꿈치 들고. ㅋㅋㅋ 그들을 보다가 겉만 그들 중에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처럼 맑은 하늘이 얼마만인가? 천천히 맘껏 즐겨야 지. 그런데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아프니 더 느껴진다. 
 
앞 산은 거의 영겁을 사는데....

 

 

자, 산으로 가자!

비가 많이 내려서 계곡에 물이 많고 맑다.

폭포를 찍으려고 했는데 역광이라 폭포 위에서 비스듬하게 찍었다.

역사관 앞

중성문 아래 계곡

산영루 위의 와폭

용학사샘으로 가는 길

고생깨나 해가며 대피소에 올랐다. 1시간 5분이면 올랐는데 13분이나 더 걸렸다. 이젠 옛 기록을 다시 하긴 어렵겠다.

쉬었으니 출발해야지. 나무들 사이로 문수봉이 보인다. 다음엔 저기까지 가야지....

동장대

제단 앞 성곽 너머로 보이는 삼각산.

제단 앞에서 보이는 서울 동남부. 롯데타워가 보인다.

여긴 서울 동부

공사중인 대동문

칼바위를 배경으로

이제 보국문으로 내려간다. 문수봉이 보인다.

공사중인 보국문에 담장이 쳐졌다.

담장에 둘러싸인 보국문

계곡에 여러 곳 있는 징검다리 중 하나

무성한 나뭇잎 때문에 큰바위 얼굴이 많이 가려졌다.

중성문 아래 주의표지판과 머리 위에 걸려 있는 나무

백운대 갈림길

서암사 뒤로 보이는 원효봉

수문터에서 보이는 원효봉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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