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8.13 문수봉 - 대성문

PAROM 2022. 8. 14. 08:36

요즘 부쩍 꾀가 늘어 핑계만 생기면, 아니 핑게를 만들어서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침 운동도 그렇고 오늘 산에 가는 것도 비를 이유로 쉬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산엔 가야지. 배낭여행 중에도 기회만 닿으면 갔었으니까. 
 
입추가 며칠 전에 지났고 이틀 뒤가 말복이다. 계절은 역시 절기를 따라 간다. 그 덥고 잠 못 이루던 열대야도 옛일이 되었다. 더위도 한풀 꺾이고, 주말이 되었으니 산에 가야 한다? 된다? ㅎ~~ 둘 다다. 가기 싫어하는 마음은 접어 둔다. 
 
정 박사와 오래전에 오늘 산에 가기로 했던 약속이 비 소식에 어그러졌다. 두 곳의 일기예보를 보니 서로 다르다. 한 곳은 오전 8시부터, 다른 곳은 오후 1시부터 비가 온다고 나왔다. 비가 오기 전에 내려오면 좋을 것 같아 일찍 서둘렀다. 그 덕분에 늘 타던 차의 앞차를 탔다. 물론 부지런히 탄현역까지 걸은 덕분이다.  
 
플랫폼에 내려서니 저 앞에서 열차가 들어온다. 지난주 보다 20분도 더 빠르다. 기분 좋게 대곡역에 가서 환승을 하려는데 3호선에서 올 열차가 아직도 대화역에 있다. 탄현역에서 앞차를 타며 번 시간을 대곡역에서 반 넘게 잃었다. 뭐 그럴수도 있지. 
 
주말버스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아직 어디로 갈 지 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10키로는 걷고 내려오기로 다짐을 하고 계곡으로 다가서니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이번주에 비가 많이 와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데 그 흔적이 산에도 많이 남았다. 길은 파였고 나무는 넘어지고 가지가 부러져 내렸다. 빗물에 흙과 돌이 쓸려 내려가 길이 낮아진 곳도 여러 곳이 보였다. 대신 계곡 바닥에 검게 피었던 이끼들은 모두 없어져  맑고 밝게 되었다. 
 
입추가 지나긴 했어도 아직은 8월 초니 한여름의 더위가 남아 구슬땀을 흘리게 한다. 계곡을 얼마 오르지 않아 웃옷이 다 젖었고 손수건은 짜내야 할 정도다.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참 고맙다. 눈비돌이 산에 온다고 전화가 왔다.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11시 경에 보국문에서 보자는 무언의 약속이다. 
 
오늘은 계곡물 속에 몸을 많이 담글 생각이다. 그러려면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다. 지난 두 주엔 너무 더워서 문수봉 근처에 가지 않았으니 그리로 가기로 한다. 백운동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길이 참 많이 파였다. 공단에서 흙과 돌로 복구를 많이 해 놓았지만 하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곳곳에 쓰러진 나무와 부러져 내린 큰 나뭇가지들도 이번주에 쏟아진 비의 규모를 가늠케 했다.  
 
열 시 반 전에 대남문을 지나 문수봉에 올랐다. 아직은 비가 오지 않는다. 비가 먼지를 쓸어가서 그런지 멀리까지 보였다. 그런데 삼각산은 구름을 이고 있다. 멋지다. 문수봉에서 한참을 쉬며 땀을 말리고 내려가는 거친 너덜 바윗길에 대비해 스틱을 폈다. 대남문에 내려오니 전화가 왔다. 대성문에서 보기로 했는데 생각해 보니 서로 바로 내려가는  좋을 것 같아 다시 전화를 해 알탕장소에서 보기로 하고 아랫길로 대성문으로 갔다가 대성암 앞으로 내려갔다.  
 
길이 젖어 있어서 내려오는 중 두 번이나 엉덩이가 길에 닿을 뻔 했다. 스틱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었다. 오늘은 배낭에 샌드위치와 수박, 물 외에 우산과 아주 오래된 판쵸우의가 있다. 우산을 챙기다가 눈에 띄어 간만에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배낭에 넣었다. 무너진 길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내려와 길가에서 통화 중인 눈비돌을 만나 길 뒤에 숨겨진 소 옆 평평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바로 물속으로 풍덩. 그런데 생각보다 물이 차지 않다. 바닥의 낙엽은 다 쓸려갔는데 모래와 자갈들이 계곡 바닥을 높여 놓았다. 머리끝까지 담그고 물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가 오니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을 수 없어서 배낭을 닫고 판쵸우의를 입고 길을 내려오는데 덥다. 역시 판쵸우의는 산행에 적합하지 않다. 땀이 배출되지 않고 빗물이 종아리를 적셔 기분이 찝찝하다. 비가 점점 거세진다. 중성문으로 올라가 앞선 이들이 나간 자리를 차지하고 점심을 먹었다. 판쵸우의는 둘둘 말아 배낭에 넣고 우산을 쓰고 내려오는데 허리가 아프다. 잘못 앉았었나 보다. 다행이 비는 가늘어져서 작은 우산으로 비를 막을 수 있다.  
 
비가 오니 계곡길은 미끄러워 큰   찻길로 내려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결국은 들꽃. 해물파전에 막걸리. 
 
오늘 산행은 이렇게 접었다.

 

지난주에 내린 비로 계곡이 맑고 깨끗해졌다.

계곡폭포도 검게 이끼가 끼었었는데 다 씼겨 갔고 수량도 많아졌다.

역사관 앞

중성문 아래 계곡. 물이 차고 넘쳤다. 중성문으로 오르는 길은 커다란 바위들이 떠내려 갔고 길도 많이 파였다.

중성문 아래에 가로 걸린 소나무. 저게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면?

산영루

산영루 옆의 와폭이 시원하다.

경리청상창지 옆길

대성암 대문이 오랫만에 열렸다.

대남문

문수봉. 이른 시간인데 참 부지런한 분들이다.

비봉능선이 끝까지 다 보였다.

구기동계곡.

삼각산 봉우리가 구름에 잠겼다.

대성문. 오늘은 여기서 내려섰다.

알탕을 하기 딱 좋은 소

중성문에서 비를 피하다 고개를 드니 노적봉이 비에 젖고 있었다.

눈비돌과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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