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을 푹푹 찐다고 한다. 기온이 높고 습도도 높은데 비 까지 내리니 산을 오르는 것이 즐거움 보다 고행에 가깝다.
오늘 오후에 아들 식구들이 집에 온다고 했다. 큰 손주가 놀다가 눈썹을 다쳐 여덟 바늘을 꼬매는 바람에 계획한 휴가는 못 가고 가평에 하루 갔다가 집에 들리겠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손주들을 보게 되니 난 좋지만 아내는 해 먹일 생각에 벌써 힘이 드나 보다.
요즘 날이 너무 더워 아침에 헬스장 가서 땀을 흘리고 오면 힘이 들어서 나도 계곡이나 바다로 쉬러 가고 싶었다. 더운 날에 땀으로 흠뻑 젖어 걷는 것도 힘 드니 산도 쉬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계획도 없이 무작정 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힘들지 않게 살짝 다녀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새벽에 일기예보를 보니 두 곳이 서로 다르다. 비가 온다고 한 곳이 있으니 작은 새 우산을 챙겼다. 아내가 만든 샌드위치와 수박을 한 통 넣고, 보온병에 얼음도 채웠다. 클라우드는 며칠 전 부터 들어 있었으니 됐다. 애들이 온다고 하여 아내는 출근 준비와 애들 먹거리를 만들어 놓느라 바쁘다. 돕는 것도 없이 덩달아 나도 바빠 하다가 시계를 보니 빨리 나가야 할 시간이다.
신호를 한 번 기다렸다가 역으로 가니 앞 역에서 열차가 떠났다. 열차에서 보이던 사람들이 오늘도 보였다. 역 까지 걸어오는데도 땀이 많이 나고 힘이 들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진관사계곡에서 발 담그고 쉬다가 집으로 갈까? 그것이 좋은데 거리가 너무 짧다. 그럼 구파발 부터 걷자. 그래, 그렇게 하자.
구파발역 2번출구 옆의 나무계단을 올라 이말산을 넘는다. 낮은 봉우리인데 초입에서 벌써 땀이 흐른다. 하나고 옆까지는 2.4키로 정도니 이 정도 쯤이야 했는데 오늘 날씨가 사람 잡을 기세다. 오늘 따라 길가 무덤들이 자주 눈에 띤다. 내려가는 길가의 봉분이 없어져 망주석만 남은, 묘비만 남은, 상석만 남은, 경계만 남은 무덤들이 안쓰럽다. 이곳 무덤의 주인은 대부분이 궁녀다. 후손도 없는 쓸쓸한 무덤들....
하나고 옆으로 내려와 큰 길을 건너 한옥마을을 가로질러 진관사로 향하다가 입구에서 삼천사로 발길을 돌렸다. 아무래도 너무 짧다. 부왕동암문을 넘어 가 백운동계곡에서 알탕을 하려고 마음을 바꿨다. 그러면 10키로는 걷는다. 삼천사로 가는 길이 멀다. 비탈길도 힘들다. 조금만 더 가면 물이 나오니 참고 걷는다. 땀이 손수건을 적셔 짜면 물이 한 그릇 씩 나올 정도다.
삼천사 뒤의 계곡에 물이 많다. 맑다. 절 뒤 계곡으로 가 쉬려다 난간을 넘어가기 귀찮아 계속 올랐다. 이길 초입엔 많이 무너져내린 돌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그 돌들이 젖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힘들어 돌아 내려가려다 산 넘어 시원한 계곡에서 몸을 담글 생각에 견디고 올랐다. 어제 까지도 내린 비에 비탈진 바윗길이 무척 미끄럽다. 물가 바위엔 이끼까지 끼어 잘못 딛으면 큰일이다. 부암동암문 아래 큰 비탈바위까지 세 번을 쉬며 올랐다. 미끄러움 때문에 계곡바위에서 쉬면서 스틱을 폈는데 그 덕분에 조금은 덜 힘들었다.
부왕동암문에 가까이 올라갔는데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진다. 암문 아래에서 한참 동안 비를 피하다 한양유통에 다닌다는 분과 같이 비를 그냥 맞으며 내려왔다. 비에 젖은 흙길이 많이 미끄럽고 바위길도 미끄럽다. 내려오는 중에 비가 그쳤다. 조심조심 내려와 용학사 아래 물가에서 배낭을 내리고 30분 넘게 족욕을 하며 수박과 보온병에 클라우드와 홍주를 붓고 섞어 마시는데 기가 막히다. 자리를 접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족욕 덕이다. 알딸딸하기까지 하다. 기분 좋다. 그렇게 산을 내려와 바로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잠시 쉬고 있는데 아들식구들이 들이 닥쳤다. 손주들이 귀여워 꼭 안아줬다. 이제 나가서 녀석들을 봐야겠다. ㅎㅎㅎ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몰랐다. 오늘 얼마나 습하고 더울 지....
구파발역 2번 출구 옆의 이말산 등산로 입구에서 올라가다 돌아봤다.
이말산 산책로 중간 조금 넘게 가서 있는 이정표
길가엔 최근에 뿌리가 뽑힌 나무도 누워 있고....
하나고로 내려가는 길 쉼터와 아래의 망주석들
보분은 없는데 비석은 가까이 있다. 무덤이 근처에 있었겠다.
진관사로 들어 가는 길
진관사 입구의 화장실 앞이 공사중인데 길에서 들어갈 곳이 없다. 삼천사를 가기위해 어쩔 수 없이 차단줄을 넘었다.
삼천사로 가는 길의 미륵교
삼천사 아래도 공사 중이었다.
부왕동암문으로 가다가 힘이 들어 이 비탈진 계곡 바위에서 쉬었다. 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곳인데 벌써 두 번이나....
나월봉이 보이는 너른 바위에서
이 비탈바위까지 왔으면 거의 다 올라온 거다. 여기는 늘 쉬며 경치를 구경하던 곳이니 또 쉬어야지. 세번 째 쉼.
뒤쪽의 능선 너머로 사모바위가 보인다.
좀 쉬었더니 살 만하다.
내려오는 길 구름 속에 노적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중성문 옆의 계곡. 저 위에서 쉬었었다.
역사관 앞
내려오는 찻길가에 핀 꽃. 누구냐 넌?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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