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9.16 행궁지 - 대성문

PAROM 2023. 9. 17. 08:05
8.19일에 북한산 행궁지 뒷길을  걷고 4주만에 다시 그 길을 걸었다. 그땐 보국문까지 갔는데 오늘은 대성문에서 내려왔다. 그것도 아주 피곤하고 힘들게....
온 몸이 나른하고 쳐진다. 힘들게 걷고 집에 와서 막걸리를 한 잔 한 탓이라 믿고 싶다. 이젠 점점 산길을 걷는 것이 힘이 들고, 숨도 많이 가빠지고, 덜 걷고 싶고, 그낭 퍼질러 쉬고 싶다. 친구들이 산에 다니지 않는 이유가 내게도 왔나 싶어 겁이 난다. 그래도 힘이 닿는 한은 가야지. 아니 계속 갈 수 있도록 열심히 몸을 유지해야겠지. 
 
새벽 2시에 잠이 깨어 핸드폰으로 사고 싶은 텐트들을 구경하다가 5시 반에 아내가 깨우는 바람에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7시 전에 열차를 타긴 늦었다. 한 달만에 가는 북한산이라 준비하는 것이 바빠 그런지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아내가 벌써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와 과일그릇을 담고 물병 넣고 이어폰 넣고 안경 두 개와 손수건 넣고 모자 쓰고 버스카드 넣고, 일기예보가 못 미더워 우산 넣고 감마자켓 접어서 넣고.... 등산화 신을 시간이 없다. 행여나 싶어 뛰어 가면서 시간을 봤는데 신호등 앞에서 2분 전이다. 7시 15분 차는 틀렸다. 봄에 늘 타던 7:37분 열차를 타야 한다.

느긋하게 역으로 가니 못 보던 하얀 안내판이 있다. 노조에서 파업중이라 정시운행이 안 된단다. 게시된 임시시간표를 보니 7시 5분 열차인가 후에 37분 열차다. 뛰지 않길 참 잘했다. 죽어라 뛰고 난 후 엄한 이에게 욕할 뻔했다. 노조원들이 오죽하면 정책이슈로 파업을 하겠냐? 망할, 나쁜 놈들 정치인들이다. 
 
다행스럽게도 환승도 잘 했고 주말버스도 바로 왔다. 사실 시내버스 타는 횟수를 줄이거나 안 타는 방향으로 산을 다닐까 했는데 다른 산으로 가지 않는 한 결코 쉽지 않다. 이참에 나도 노고산이나 예봉산 등 지하철 만으로 갈 수 있는 산을 다녀볼까?
오랜만에 내린 산성입구에서 산으로 들어가는데 발이 자꾸 꼬이며 땅에 걸린다. 그간 오지 않았다고 산신이 삐져서 벌을 주는 가 보다.  
 
계곡입구에서 백운대를 보니 원효봉이 구름모자를 썼다. 가을비가 자주 내려서 그런지 계곡바닥이 희다. 수량은 많지 않아 물소리가 겨우 들릴 정도다. 날이 후덥지근해 땀이 금방 흐른다. 길게 걷고 싶지 않게 만드는 날씨다. 천천히 걷자고 다짐했는데 발걸음이 빨라진다. 역사관 앞에서 쉬며 이어폰을 꺼내 끼고 스틱을 폈다. 안경을 끼었으니 썬그라스는 낄 수가 없다. 병원에서 이제 백내장수술 전의 시력으로 돌아왔다며 처방해 준 안경 덕에 잘 보이기는 하지만 불편하다. 김도 서리고 자꾸 흘러내리고 거북하다. 그래도 잘 보이는 것이 어디냐. 
 
오늘 손주들이 집에 온다고 했으니 4시 전에 집에 가야한다. 어제, 그제 안산에 가서 봤는데도 또 보고 싶다. 큰 녀석은 얼굴이 덜 이뻐졌지만 재잘거리고 작은 녀석은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해서  귀엽기 그지없다. 물을 한모금 마시고 앞 마당에서 몸을 풀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다가 깔따구가 달려들어 일어났다. 그새 물린 팔이 가렵다.
이제 어디로 갈까? 오랫만에 왔으니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 네 발로 옛길로 올라 균형을 잡기 위해 대피소갈림길을 지나서 부터 스틱을 쓰기 시작했다. 바위와 돌들이 이제 제대로 보이는데 몸은 휘청이니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앞에 뭉쳐 가던 중년들을 지나치기 위해 힘을 너무 많이 썼는지 다리가 지쳤다.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추월 당하기 전에 행궁지길로 피해 들어갔다. 
 
길 옆이 온통 파헤쳐져 있다. 멧돼지들이 먹이활동을 한 것인데 뒤집어진 흙이 생생한 것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을 마주치면 도망갈 나무를 찾지만 내가 오를만한 나무들이 아니다. 행궁을 돌아 오르는 길이 미끄러워 스틱에 더욱 의지해 올랐다. 눈앞이 뿌연게 안경에 낀 습기가 아니라 구름이 낮아진 것이었다. 구름이 나무며 풀에 물방울을 잔뜩 달아놓아 건들면 비를 후두둑 쏟아내 온몸을 차갑게 적셨다. 좁은 숲길을 헤치며 오르는데 얼굴이 자꾸 간지럽다. 거미줄에 걸리는 것을 보니 오늘 내가 처음 지나는가 보다. 거미줄에 구름이 걸려 들어 하얗게 반짝였다. 
 
길이 점점 높아지니 보이는 거리가 더욱 짧아졌다. 남장대지능선에 거의 올랐는데 인기척에 돌아보니 누군가 맹렬한 속도로 뒤쫓아 오고 있다. 능선 끝의 의자소나무로 가서 배낭을 벗고 물을 마시며 지나보내고 가면서 보니 청송대에서 쉬고 있다. 구름에 능선 아래는 완전히 가려져 온 세상이 허옇다. 그런데 경치고 뭐고 너무 힘들어 어서 내려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벌컥이고 싶다.  
 
상원봉에 닿으니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며 의상능선이 보이고 우리 동네도 살짝살짝 보였다. 산은 이럴때가 참 멋지다. 구름이 능선을 넘으며 흩날리는 모습 사이로 푸른 숲과 작은 집들이 보이는 풍경 말이다. 성곽을 따라 청수동암문으로 내려와 문수봉을 오르는데 이어폰이 빠져 길 아래로 굴렀다. 마침 뒤따라 올라오던 산객이 고맙게 줏어 주었다.
문수봉에 오르니 서너 마리의 개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산에 있는 개나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면 좋은데.... 작은 의자 바위에 앉아 구름이 흐르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대남문으로 내려왔다. 구기동으로 내려갈까 생각하다보니 구기동으로 가면 손 씻을 곳도 없고 내려가다 쉴 곳도 두 곳 밖에 없어 대성문으로 내려가 문앞 의자에서 가지고 간 메론과 포도, 샌드위치를 다 비웠다. 배를 채우고 기운을 차려 젖은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발굴지 대문이 열려 있는 대성암을 보니 반갑다. 미끄러워진 돌들을 조심하며 밟고 내려와 다시 역사관 앞에 앉았다. 하늘이 무거워 그런지 다른 때에 비해 올라오는 산객들이 적다. 땀에 절은 옷과 몸에서 냄새가 나는데 이러면 버스와 지하철에서 민폐란 생각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알탕을 할 곳도 이미 다 지나쳤으니. 날이 습해서 옷을 말릴 수도 없다.  
 
자연산책로로 내려오다 길 끝에서 밤톨을 세 개 주워 주머니에 넣고 편의점에 들려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고 나니 살 것 같다.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아침에 만났던 중학교 동창인 영훈이를 다시 만났다. 우연이 하루에 겹쳤다.
집에 오니 3시다. 샤워하고 막걸리를 마시고 났는데 애들이 내일 온단다. 이런....

 

문수봉에서 둘러본 풍경

원효봉이 구름모자를 썼다.

가을비가 오랫동안 내리더니 폭포가 깨끗해졌지만 양이 많지 않아 수량이 줄었다.

역사관 앞 마당에 젊은이들이 둘러서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중성문 아래 계곡이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훤해졌다.

산영루

행궁지 옆을 돌아가는 숲길. 구름이 나무에 물방울을 달아 놓아 밑을 지나가면 물벼락을 맞기 일쑤였다.

거미줄에도 물방울을 달아 놓았다.

이 바위를 올라가면 남장대지능선이다.

저 앞에 삼각산이 있는데....

남장대지능선길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건너편의 의상능선이 사진에는 희미하게 나왔다.

상원봉에 이르니 구름이 몰려가며 의상능선과 삼송리가 보였다.

의상능선 북쪽봉우리들은 아직 구름 속에 있다.

삼각산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상원봉의 표지판과 상랑터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는 성곽에서 본 문수봉

문수봉 아래로 비봉능선이 보인다.

문수봉에서 본 비봉능선

구기동계곡을 배경으로

문수봉. 내 배낭과 스틱

문수봉 옆에서 보이는 남장대지능선. 삼각산은 아직 구름 속이다.

대남문이 숲속에 쌓여 있다.

대성문. 오늘은 여기서 내려간다.

열린 문으로 대성암이 보였다.

힘들게 역사관 앞에 왔다.

여기서는 삼각산이 보였다.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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