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힘들게 걷고 와서 쉬려고 하니 피곤이 몰려온다. 하품이 계속 나오고 졸립다.
오늘은, 내 작은 기억으로는 올해 처음으로 백운대에 올라간 날일 꺼다. 그런데 정상 턱 앞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여름의 끝자락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 거의 반 시간을 기다리고 나니 앞으로 다시 백운대에 오를 생각이 날 지 모르겠다. 오전 10시 쯤에 위문을 지나 인수봉을 발 아래 둔 것이니 줄을 서지 않으려면 더 이른 시간에 가야 할 터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이제는 원래 그런지, 백운대 커다란 태극기 아래에 외국인들이 더 많았다. 내 앞과 뒤의 열 명 정도가 다 서양인과 동남아인이었었다.
이번주에 추석이 있다. 애들에게 설에는 우리집으로 오고 추석엔 처가에 가라고 했는데 굳이 내 집에 오겠단다. 며느리가 연휴 기간 중에 출근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오겠다는 거다. 큰일 났다. 집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 개구장이 손주들을 어떻게 며칠씩 델구 있나? 그래도 웃는 손주들 모습이 그립다.
부엌이 소란스러워 잠에서 깨니 새벽 5시다. 아내는 한참도 더 전에 일어났겠다. 아침을 먹고 만들어 준 먹거리들을 배낭에 넣고 출근하는 아내 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처음 07:15분 차를 탔다. 주말의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자리가 많다. 핸펀의 일정표를 보니 오늘 친구들 모임이 있다. 어제부터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구파발역 버스정거장으로 가니 배낭을 멘 이들이 엄청 많다. The Peak 로고의 흰 티를 입은 이들이 많으니 그들의 행사가 있나 보다. 같이 들이닥친 34, 704, 8772번 버스들 중에 앞에 온 34번 시외버스를 탔다. 그러면서 떠오른 생각 하나, 이 버스가 50원 더 싸다.
나는 운 좋게 자리에 앉았지만, 콩나물시루처럼 산객들을 태우고 나서야 버스는 출발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지난주에 행궁지를 지났으니 오늘은 반대쪽에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5시에 화정 모임에 가려면? 눈수술 이후 5달만에 근시와 난시를 교정하는 안경을 착용해 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간만에 백운대에 오르자 마음 먹었다.
북한산성입구에서 내려 길을 오르는데 사람들이 많다. 뭐지? 구파발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았는데, 오늘 뭔 일이 있나?
공사중인 제2주차장 옆길을 지났는데도 아무런 표지가 없다. 친목 모임은 아닌듯 한데 이상하다. 하긴 요즘 젊은이들을 내가 어찌 생각할 수 있겠나. 그래도 젊은이들을 보면 덩달아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 은근히 기대를 해 본다.
탐방지원쎈터 앞에 잔뜩 모여 있는 이들을 지나쳐 계곡입구에 왔는데 역시 사람이 많다. 이런 적이 전혀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궁금했지만 이미 그들을 지나쳤으니 상상만 하고 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산으로 드니 조금은 한적하다. 그래, 이래야 좋다. 하지만 계곡 좁은 길에도 발자욱이 빈번하다. 이사람들 다 뭐지? 그리고 이 시간에 마주치는 이들은 또 뭐지? 근처에 살면서 새벽 4시에 백운대나 문수봉에 산보 삼아 다녀오는 분들인가? 그러기에는 오늘만 특별히 사람이 많다.
가을비가 몇 번 내려서인지 계곡을 흐르는 물이 제법 많고 시끄럽다. 하늘도 맑고 시원하다. 여름이 지나 처음 겉옷을 입었는데 벗지 않아도 될 정도다. 오늘 저녁의 동네친구들 모임을 집에 가서 샤워하고 갈까, 아니면 산에서 바로 갈까?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걷다가 상황에 맞게 가자고 생각하며 걷는데 발걸음이 앞에 사람만 보이면 빨라진다. 고칠 수 없는 병이다. 이제는 나를 앞지르는 이들이 더 많아졌는데도 세월에 순응을 못하고 있다.
역사관 앞 광장에도 사람들이 많다. 정말 오늘 뭐지? 이 사람들 다 뭐지? 데크 위의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으니 등이 다 젖었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스틱을 폈다. 이제 백운대까지 계속 오름길이니 다리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다. 배낭을 내린 김에 편히 쉰 후 길로 나섰다. 보리사 앞을 지나니 드디어 한적해졌다. 집을 나설 때부터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듣고 싶다. "This little bird" 1965년에 세상으로 나온 노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노래가 기억이 났지? 중간중간 아는 가사가 나오니 흥얼거리며 길을 오른다. 덕분에 조금은 힘이 덜 든다.
예전에 백운대에 가끔씩 오를 때 의 길 생각이 났다. 돌과 바위투성이의, 가파르고 긴 오름들, 힘들어 하는 사람들, 서둘러 오르다 길가에 퍼져버린 젊은이들, 쇠 난간들, 가파른 바위에 붙여 놓은 시멘트, 한 곳뿐인 물 건너는 다리, 대동사, 쉼터와 그 위의 약수암 터, 그리고 그 위의 너덜길에 놓인 길고 긴 가파른 돌계단, 넓은 바위, 만경대를 돌아 용암문으로가는 길, 폐타이어로 만든 고무줄이 깔린 데크계단과 그 위의 위문, 그리고 백운대로 가는 네 발을 쓰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가파른 절벽의 좁은 길, 그 위에 아무 것도 없는, 태극기 날리는 커다란 바위 백운대. 생각 그대로 길이 있었고 스틱에 매달려 기다시피 올랐다. 단지 대피소로 가는 길과 갈라지는 곳 아래에 쇠파이프들을 날라다 놓은 것을 보니 뭔가 공사를 할 것으로 보였다. 오르는 내내 시간이 많다며 천천히 가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몸은 마음과 달리 어서 힘든 길을 마치고 싶어 했다.
위문을 지나고 나니 절벽을 오를 생각에 다리를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데크계단의 끝에 앉아 스틱을 접어 배낭에 넣고 가파른 바윗길을 올랐다. 안경 덕에 길이 제대로 보였지만 땀이 나 자꾸 흘러내리고 김도 서린다. 안경을 사용한지 열흘도 되지 않아 참 불편하다.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모자를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난간길에서 정체가 시작되었다. 이제 10시 조금 넘었는데 뭔 사람이 이리도 많냐? 살펴보니 외국인이 거의 반이다. 다들 사용하는 말이 다르다.
겨우겨우 밀리듯 난간에 매달리고 의지해 백운대 아래에 닿으니 줄이 꼼짝을 않는다. 백운대에서 사진을 찍느라 늘어선 줄이다. 갑자기 블리디보스톡 금문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섰던 줄이 생각났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핸드폰을 꺼내 난간에 다리를 걸고 사진을 찍다가 카톡을 보니 오늘 모임이 취소되었단다. 이런, 당일에 취소라니. 시간이 남아도는 친구들이라 가능한 일인가 보다. 난간에 매달려 있느라 친구 아버님의 별세 소식을 같이 듣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위로도 못했다. 머리가 굳어져 예전 같지 않으니 역시 늙으면 나서지 않는 것이 자식들을 위하는 길이다.
찬바람 속에 반 시간 쯤 매달려 있다가 내 차례가 왔다. 앞의 외국인 사진을 찍어 주고 나는 그냥 쎌카 한 장에 산 풍경을 몇장 찍고 백운대를 내려왔다. 역시 내려오는 길도 밀렸다. 이제 주말에 백운대에 오를 일은 없을 것 같다. 기다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 바로 내려오려다 너무 단순한 산길을 걷는 것 같아 대피소로 향했다. 만경대를 돌아 가는 길은 이제 많은 데크계단이 깔려서 편하고 거의 안전해 졌다. 노적봉으로 가는 길-막혔다- 앞에서 스틱을 다시 폈다. 이제부터는 편한 내리막길이다. 용암문을 지나니 기운이 없어졌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백운대에 있어서 더 힘이 들었나 보다. 대피소 처마 밑에 자리가 없어 아래로 내려가 늘 앉던 자리에 배낭을 벗고 앉았다. 과일과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는데 깔따구들이 몰려든다. 참 난 모기류들이 싫다. 그런데 걔네들은 내가 좋은가 보다. 죽어라 달려드는 것을 보니. 발목을 몇방 물리고 세 마리를 잡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반바지 차림들이 옆에 자리를 잡는다. 이러면 더 쉴까? 아니다 모기들은 나를 더 좋아할 거다. 그들에게 모기가 많다고 다리를 덮고 쉬라고 말하고 대동문으로 향했다. 백운대를 올랐다가 대피소를 지나 더 가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힘이 남은 것 같아서였다.
동장대를 지나며 다리가 풀렸다. 역시 대피소를 지나 걷는 것은 무리다. 겨우 1.8키로를 더 걷는 것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나? 예전에 설악산과 지리산은 어찌 다녔지? 아, 그땐 젊었지.
돌이 잔뜩 깔린 내리막길이 싫다. 그렇다고 걷지 않을 수도 없다. 스틱에 의지해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며 내려왔다.
발굴조사 중인 경리청상창지 앞의 굵은 다래나무 꼭대기에 달린 다래가 보였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훑어 봤지만 떨어진 다래는 보이지 않았다. 잘 익어 부드럽고 달콤한 다래맛을 생각하며 입맛만 다실 수 밖에.
선암사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엄청난 수의 등산객이 올라왔다. 수도권이나 서울산악회에서 단체행사를 하나보다. 저들 중에 나와 같이 걸었던 이도 있을 것이다. 행여 아는 이가 있을까 싶어 눈을 크게 떳지만 찾을 수 없다. 다시 저런 행렬에 들고 싶나? 이젠 아닌 든 싶다.
다시 역사관 앞 의자에 앉았다. 다리도 쉬고 물도 마시고 스틱도 접어 넣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화장실은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7시에 나와 오후 1시가 넘었는데 이럴 수도 있구나. 그래도 화장실에 들어가 억지로 소변을 보고 나와 대서문을 지나 자연산책로로 걸었다. 산책로 중간쯤 내려와 숲을 보니 푸른 밤송이가 몇개 보였다. 나무 밑으로 들어가니 밤이 들은 것들이 여러개 있어 줍고 있는데 아이를 데리고 올라오던 이들이 들어와 뒤지며 줏을 때마다 즐거워한다. 열 알 정도 주웠으니 그들이 즐기게 놔두고 내려왔다.
시원한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지만 편의점에 들려 크래프트 한 캔으로 목을 축이고 집으로....
이젠 찬물로 샤워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보일러를 틀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한 숨 자고 나니 개운하다. 1시에 깼는데 글을 쓰다보니 너무 주절거렸나 보다. 그런데 벌써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자, 산으로 가자!
이제 본격적으로 걷자.
서암사 돌담 위에 코스모스가 피었다.
폭포에 물이 많다.
이 시간에 역사관 앞에 웬 사람들이 이리 많나? 암벽꾼들도 많다.
보리사를 지나 백운대로 가는 길의 유일한 다리.
이런 쇠난간이 여러곳에 있다.
약수암터 아래의 쉼터에서 쉬어야 했다. 힘이 많이 들어서 한참을 쉰 후 다시 올랐다.
위문을 조금 남겨 놓은 너덜길 계단에서 잠시 뒤돌아 봤다.
대피소로 가는 갈림길 아래에 자재가 쌓여 있다.
대피소로 가는 길
위문에 드디어 왔다.
백운대 암벽에 오르기 전에 올려다 봤다.
백운대 아래 너른 암반에 등산객들이 많다.
저기 태극기 있는 곳까지 반 시간이나 걸렸다.
내 뒤로 늘어선 줄. 인수봉에 아무도 없었다.
주능선 끝으로 문수봉이 보였다.
앞에 의상능선이 있고 왼쪽 앞에 노적봉
기념사진을 찍고
앞에 염초봉과 원효봉, 지축리 삼송리 원당, 일산, 덕이동,탄현도 보였다.
꼭대기에서 쎌카를 찍고
저들을 뒤로 하고 이제 내려가야 한다.
만경대를 돌아가는 길에서 보이는 삼각산
원효봉과 염초봉
의상봉과 원효봉 사이로 지축차량기지가 보인다.
노적봉
첨부할 사진이 많은데.... 할 줄을 모르겠다.
아래 사진은 HEIC를 JPG로 힘들게 변경했다.
용암문
북한산대피소
동장대로 가는 편안한 길
동장대
국화과 꽃들이 모여 있다.
제단 뒤로 보이는 삼각산
제단 앞의 억새
아직 공사중인 대동문
산영루
중성문
역사관 앞
대서문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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