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에는 오랫만에 중고등학교 동창들 일곱이 화정에서 만나 두어 시간을 떠들고 웃다 헤어졌다. 내년이면 칠순이 되는 친구들이라 나이가 제법 들어보였지만 두엇은 아직도 팔팔해 보였다. 나도 그 축에 들면 좋겠다. 그리고 세월이 감에 따라 건강하던 친구들이 여기저기 아파져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되어 어서들 낫기를 바랐다.
오늘은 엄창섭 회장 딸 지혜의 결혼식이 3시에 남산 국립극장 맞은편에서 있다. 4시에 약속이 있어서 일찍 가서 얼굴만 보고 오려고 했는데 가족들은 2시에나 식장에 도착한다고 해서 축하를 먼저 전했다.
생각 같아서는 일찍 북한산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러면 너무 피곤해서 운전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동네 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 산에 가서 고봉산의 높이를 확인했는데 202미터란다. 더 높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낮아서 실망이 컸다.
아침을 먹고 아내는 출근을 했고 난 뭉기적거리다가 8시가 한참 지나서 간단하게 배낭을 꾸리고 집을 나섰다. 물 한 병과 찹쌀떡 한 개, 작은 곶감 두 개가 전부다.
물론 늘 넣어 다니는 썬그라스, 방석, 돋보기, 이어폰 등등등은 꺼내놓지 않으니 따로 챙길 필요는 없다.
큰 길을 건너 황용산으로 가는 길가에 은행이 잔뜩 떨어졌는데 밟아 뭉개져서 냄새가 났다. 은행을 밟지 않기 위해 피해 걷는 것이 사방치기하는 것 같다. 이젠 낮과 밤의 길이가 비슷해져서 아직은 해가 낮아 눈에 볕이 들어왔다. 황용산 입구의 공원 의자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등산화에 들은 모래를 털고 일어나 약수터를 지나 걸었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길가에는 밤송이가 가끔씩 떨어져 있다. 두리번거려 찾아 보지만 밤톨은 보이지 않는다. 능선에 오르자마자 오른쪽으로 틀어 고봉산으로 향했다. 산길에 사람들이 많다. 거의 반은 맨발이다. 어제 친구들과 얘기 중에 맨발로 걸으면 건강에 무척 좋다는 말도 있었다. 당뇨인 친구는 다칠까봐 못한다고 했었다. 난 발바닥이 아파서 못 하겠다.
황용산을 내려와 삼거리를 건너 고봉산으로 향했다. 고봉삼거리에서 영천사까지는 1.3키로라 이정표에 적혀 있다. 바로 올라 고봉정을 지나면 데크계단이 나온다. 조금 더 오르면 완만한 경사의 길이 이어지다가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비로서 정상이 보이는데 정상은 민간인이 갈 수 없다. 헬기장을 지나면 평지가 나오고 곧 나무계단길과 구불텅한 흙길이 나란히 장사바위로 향한다. 나는 그 길의 끝 즈음에서 정상 옆의 전망대데크로 갔다. 아직 해가 낮아 북쪽은 잘 보이지만 반대편 북한산을 보는 데크에선 온세상이 뿌옇게 보인다.
전망대에서 돌아나오는데 젊은이가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찾을 수 없는데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냐고 묻는다. 고봉산성 표지판을 찾는 것이었다. 그 표지판을 장사바위 앞에서 본 기억이 나서 같이 내려가 알려주고 사진도 찍어 주었다. 나는 북쪽을 보는 전망대데크 계단에서 쉬며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러긴 글렀다. 장사바위에서 장희빈가족 묘지를 지나는데 토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늘 길에서 놀던 녀석들인데 궁금했다. 군부대 입구 길가에 차들이 서 있고 119구조대 차도 서 있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건빵을 흔드니 차 밑에서 토끼 두 마리가 나와 받아 먹는다. 자세히 보니 그녀석들인데 무척 커졌다. 잘 살고들 있어서 기분이 좋다.
영천사로 가는 갈림길에 의용소방대 분들이 인체 상반신 모형을 두 개 놓고 심장마사지 교육을 받으란다. 얼마전에 옆에 서 있던 이가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봤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교육을 받고 실습을 했다. 누구든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알려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영천사로 내려와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황용산 아래 공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힘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이런 힘으로 북한산을 어찌 걸었지? 공원 의자에 앉아 쉬며 배낭에 넣어간 찹쌀떡과 곶감, 물을 다 먹고 쉬니 조금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집으로 오기 전에 이원마트에 들려서 과일과 버섯을 산 후 집으로 오는데 볕이 내리쬐는 길이 허리도 아프고 힘들다. 요즘 아침운동에도 힘이 많이 들었던 것이 여름이라 더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몸이 그렇게 반응을 해서 그랬나 보다. 이제 몸 생각해 제대로 운동을 해야겠다.
잠시 후 아롬이 태우러 간다.
오늘은 동네에서 걷는다.
황용산 입구 공원
능선의 이정표
금정굴 앞의 이정표
금정굴 앞 마당
고봉산 입구
고봉정
헬기장에서 본 고봉산
높은 제니스빌딩 뒤로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있다.
북한산을 보는 전망대. 아침이라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고 뿌옇게 보였다.
저 앞 어딘가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장사바위
건빵에 홀려 나온 토끼들
영천사
공원에서 쉬었다.
전날 모인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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