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7.13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4. 7. 14. 06:42

늘 이맘 때 등산을 하면 땀으로 목욕을 한다. 오늘도 그랬다. 어제 집에 혼자 있으면서 마신 막걸리가 저질체력으로 만들어서 더 그랬다. 요즘 상가의 선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 소화가 잘 되지 않을 정도다. 이제 세상의 모든 이권에서 멀어져야 하는데 속물근성이 남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내게 직접적으로 금전적 영향을 끼칠 사안이니 모른척 할 수도 없다. 게다가 개판보다 못한 정치판과 축구판을 보면 더욱 열을 받아 한 잔 술에도 맛이 그냥 가고 만다. 큰일이다. 
 
이틀 전에 손주들 봐주러 아들집에 간 아내가 오늘 오후에나 온다고 했다. 혼자 등산준비를 해서 가야 하니 일찍 깼는데 술기운이 남았다. 산에 가지 말까 하다가 지난주에 가지 않았으니 오늘은 중간에 내려오더라도 가야 한다. 어제 먹고 남은 찬밥을 국에 말아 먹고 냉장고에 있는 참외와 수박, 물 두 병, 수건과 티셔츠 한 장을 넣고 배낭을 꾸렸다.  늘 나가던 시간에 나갈까 하다가 날이 덥기 전에 일찍 내려올 생각에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왔다. 아직은 덥지 않아 다행이다. 
 
구파발역 버스정거장에 가니 등산객이 꽤 있다. 이른 시간이라 주말버스와 34번은 아직 운행 전이다. 송추 가는 704번을 탔는데 빈 자리에 앉았다. 이런 날도 있구나. 산성입구에서 산으로 들어 가는 길이 한적했다. 산봉우리는 옅은 구름이 얼싸안았다. 계곡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시원하고 맑은 소리가 들린다. 이런 물소리가 무척 반갑다. 이른 시간인데 벌써 내려오는 이들이 적잖다. 도대체 언제 올라갔는지, 어디까지 갔다 오는 지 궁금하다.
서암사를 지나 나무계단을 오르는 데 발이 천근만근이다. 등산 전날은 무조건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벌을 받는 기분이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바지 엉덩이도 다 젖었고 티셔츠는 물을 짜낼 정도다. 이게 뭔 고생이람. 그래도 올라가야지. 계곡폭포에 물이 근사하게 떨어지고 있다. 멋지고 시원한데 그 옆 긴 철계단을 올라가려니 죽을 맛이다. 역사관 아래 돌계단을 오르는 것이 버겁다. 
 
겨우 역사관 앞 데크의자에 배낭을 내렸다. 손수건을 옷에 대고 문질러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가슴과 등에 몇 번 되풀이 하니 흐르는 것은 가신 듯하다. 역시 여름엔 잘 마르는 옷이 필요하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 후 이어폰을 끼고 다시 길로 나섰다. 만경대 근처의 낙석으로 대동사 위부터 용암문까지의 산길이 막힌지 두 달이 넘어서 이제는 많은 이들이 선암사 앞 비탈길을 오른다. 그들 속에 어울려 걸었다. 산길이 높아질수록 죽을 맛이다. 흐르는 땀에 눈이 흐려졌다. 그러고보니 집에서 안경을 쓰지 않고 나왔다. 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큰일 났다. 썬그라스라도 쓸까 하다가 배낭을 벗기 귀찮아 그냥 걸었다.  
 
오늘은 짧게 걷고 내려갈 생각이다. 다음주 중에 엄마 생일이라고 애들이 모두 오늘 집에 온다고 했으니 일찍 가야 한다. 아니 그 보다 힘 들어서 많이 걷지 못하겠다. 지지난 주에 보국문에서 문수봉으로 갔으니 오늘은 대피소에서 보국문으로 가야겠다. 그런데 이 컨디션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고사 아래 비탈길이 언제 이렇게 길고 가파라졌나 모르겠다. 봉성암 갈림길 앞 계곡에 배낭을 벗고 쭈그리고 앉아 세수를 하고 손수건을 다시 빨았다. 시원한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나면 백 보는 효과가 있었는데 오늘은 열 걸음도 못가 바로 지쳐왔다. 대피소 오르는 길은 또 언제 이리 길고 가파르게 변했는지 죽을 맛이다. 
 
천신만고 끝에 대피소 지붕 밑으로 들어갔다. 배낭을 벗으니 물이 떨어진다. 시간을 보니 9시 반이다. 8시에 차에서 내렸으니 시간이 무척 많이 걸렸다. 산친구들 단톡방에 대피소 영상을 찍어 올리고 대동문을 향해 일어섰다. 이제 컨디션이 조금 나아진 기분이다. 동장대로 가는 편안한 산길이 반갑게 맞는다. 능선을 만나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상쾌하다. 성곽을 따라 걸었다. 나뭇가지들이 길을 많이 막고 있지만 총안을 지나온 바람이 시원해서 힘들어도 성곽길을 걷는다. 너무 더우면 총안에 얼굴을 디밀었다.  
 
시단봉 위의 동장대를 지나 제단이 있는 봉우리로 갔다. 그 길 중간에서 연두색 산초나무잎을 따서 씹었다. 산초향이 향긋하다. 그 효과 때문인지 갑갑하던 속이 풀린 기분이다. 산에 산초만 있는 듯하여 제피나무를 찾느라 자세히 보니 열매를 맺기 시작한 모습이다. 돌계단을 내려가 대동문으로 가서 바로 하산하려다 시간 여유가 있어 조금만 더 걷기로 했다. 대동문을 지나며 보니 대동문 지붕아래로 오르는 계단에 줄을 둘러 놓은 것이 보였다. 왜지? 보수공사 마친지 며칠 됐다고.... 보국문으로 향하는 발이 무겁다. 
 
보국문에 도착해 잠시 멈춰 바람을 쐐고 계곡으로 내려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무리하고 싶지 않다. 너덜길을 내려가기 위해 스틱을 펼까 망설이다 귀찮아 그냥 걸었다. 바위며 돌이며 가 다 젖어 있어 무척 미끄러웠다. 내려가는 길인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한참을 내려와 숨겨진 알탕 장소에 들리니 물이 깨끗하고 물속도 맑다. 바로 배낭을 벗고 등산화와 양말도 벗었다. 바지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 놓고 배낭에서 수건을 꺼내 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몇 번을 들락거릴 수 있을 만큼 물이 아주 차갑지는 않았다. 티셔츠를 벗어서 물에 헹그고 짜서 다시 입었다. 참 시원하다. 수박과 참외를 먹고 일어나 내려오는데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아침을 너무 일찍 먹어서 그런 듯하다. 
 
알탕을 하고 내려오는 길이 시원하다. 젖은 옷이 마르며 체온을 뺐어가서 일 것이다. 산영루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또 땀이 난다. 내 모습을 뒤에서 보면 웃기겠다. 바지에 팬티 자국이 그대로 찍혀 있을테니. 덥고 습하고 피곤하니 옷이 마르지 않는 듯하다. 다른 때는 역사관에 다다르면 많이 마르고 산을 다 내려오면 거의 다 말랐었다. 오늘은 집에 왔는데도 마르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지? 그래 술이다. 산에 가기 전날은 이제 절대 금주다. 몽롱한 상태에서 산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니 산에서 내려온 후에 마시자. 아니면 술 마신 다음날은 산에 가지 말자.  
 
5시반이 넘어 집에 모두 모인 식구들과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짬뽕으로 식사를 하는데 반주도 하지 못했다. 손주들이 짜장면을 잘 먹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큰 녀석은 제 밥그릇을 비우고 크림새우까지 흡입했다. 그런데 이집 볶음짜장이 정말 맛있다. 맨정신에, 너무 배고프지 않을 때 다시 와서 먹어야겠다. 탕수육에 소스를 찍어 먹고나서 인지 짬뽕은 별로였고 새우요리는 맛이 좋았다. 짬뽕에 통으로 든 오징어가 무척 부드럽다. 어떤 오징어를 어찌 요리한 것인지 궁금했다. 아롬이가 음식을 적게 먹는 바람에 내가 배가 불러졌다. 취선향 얘기였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옅은 구름이 온 산을 둘렀다. 이제 산으로 들자.

 

장마철이라 폭포에 물이 흘렀다.

 

중성문 아래 계곡에도 물이 흘렀다.

 

중성문

 

네 발로 바위를 오르고 나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나월봉이 보인다.

 

산영루

 

갈림길의 징검다리를 건너 오른쪽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 참 시원했다.

 

고생 끝에 드디어 대피소에 올랐다.

 

머리 위의 기와- 저 것을 뭐라고 부르나. 치미?-가 위태롭다. 금줄로 막을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제단 뒤의 성벽 너머로 보이는 삼각산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보이는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보국문

 

북한동역사관

 

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