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6.22 대피소 - 대동문, 우중산행

PAROM 2024. 6. 23. 12:34

3주 만에 북한산에 가는 날인데 비가 예보되었다. 비 때문에 며칠 전 정 박사와 같이 걷자고 한 약속이 다음주로 연기되었다. 5시에 공덕에서 청송회 친구들 약속이 있는데 아쉽지만 오늘은 그  모임에서 봐야 한다. 6월엔 생일과 제사 등 집안 행사가 많다. 게다가 친구들 모임도 여럿 있고 손주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교도 시키려니 참 바쁘다. 헬스장도 하반기엔 거의 못 간다. 지난주와 같이 다음주도 내리 4일을 새벽에 안산에 가야 하니 말이다. 이럴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손주녀석들과 친해졌으니.... 

 
비가 온다는 소식에 출발이 늦어졌다. 아니 창문 앞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살구를 주워다 씻느라 더 늦어졌다. 몇 달 후에 살구주 맛이 어떤지 볼 작정이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산에서 바로 모임에 가려면 갈아 입을 옷도 넣어야 하고 물도 큰 것으로 넣어야 하고, 우산과 스틱에 이것 저것을 방수 배낭에 옮겨 넣으니 무겁다.  
 
집을 나서자마자 빗방울이 듣는다. 11시부터 온다고 했는데 2시간이나 당겨졌다. 지하철을 타러 오랫만에 대화역으로 갔다. 구파발역에서 주말버스를 탔다. 비 소식 때문인지 열차도 그렇고 자리가 많이 비었다. 나는 편해서 좋다.  버스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안개구름으로 뿌옇다. 확실히 길위에  등산객들이 적다. 계곡입구를 지나니 물비린내가 훅 풍긴다. 비 때문인 듯하다. 계곡은 바짝 말랐다. 깊은 웅덩이에만 물이 고여 있고 흐르는 물은 없다. 3주 만에 많이 변했다. 그런데 물비린내가 길게 이어진다. 비가 쉬지 않고 계속 오는구나. 
 
계곡에 들자마자 허리가 아프고 종아리가 저리다. 전형적인 나의 전방전위증 증세다. 얼마나 걸어야 증세가 사라질 지 걱정이다. 그동안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댓가인 것 같다. 다음주도 운동을 못할텐데 걱정이 앞선다. 다리 저림으로 길이 뒤틀린 것 같다. 산길이 더 길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괴롭히던 통증과 저림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비가 내려서 역사관 앞의 데크가 다 젖었다. 다리 앞의 파고라 지붕 밑으로 들어가 의자에 걸터앉아 빗방울에 소용이 없어진 안경을 배낭에 고이 접어 넣고 이어폰을 끼고 물도 마시고 쉬는데 옆에 있던 이들이 어디까지 걷고 내려가는 중이냐고 묻는다. 올라가는 중이라고 하니 근심스런 표정으로 비도 많이 오고 하니 내려가는 것이 좋지 않겠냔다. 자기들은 의상봉에서 더 못 가고 내려왔단다. 그래도 왔으니 힘 들어도 봉우리 하나는 올라야겠다. 
 
무거운 배낭에 우산까지 드니 죽을 맛이다. 3단우산이라 작아서 머리만 쓴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짧게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늘은 남장대지를 지나려고 했었는데.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이제 빗방울에 튕기는 흙먼지는 날리지 않는다. 길은 웅덩이도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계곡엔 물 흐름을 볼 수 없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볼 때 마다 구름 속에  누가 있는 듯 손끝이 촉촉하다. 산길을 걷다 누군가 쫓아오는듯 하여 뒤돌아 보면 텅 빈 하늘에 안개만 있다. 자주 손을 바꿔 우산을 들어야 했다. 
 
텅 비다시피한 길을 힘들게 오르는데 발가락이 축축해 온다. 물이 새는 건지 빗물이 들어간 건지 이제 깔끔떨기는 틀렸다. 대피소로 방향을 잡고 오르는데 용학사 샘터 아래에서 지나쳐온 하얀 비닐우의의 등산객이 끈이 달린 듯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온다. 산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구름안개는 더욱 짙어지니 희미하게 하얀 유령이 따라오는 것 같다. 우산 때문에 힘이 들어 더 빨리 오르기도 어렵다. 우산을 던져버리고 그냥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그러면 시원하기는 할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내려갈 시간이 되어 도착한 대피소 지붕 아래에 등산객이 여럿 보인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반반한 돌덩이 하나에 엉덩이를 붙였다. 겨우 살 것 같다. 물이 달다. 동생이 부산에서 가져온 귀한 수박을 다 먹고 일어나 빗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제 무릎 아래는 흙탕물이 튀어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능선길로 나가니 찬 바람이 분다. 산아래를 봐도 보이지 않지만 경치 구경 없이 발아래 길만 보고 걷는다. 동장대에서 돌계단 길을 피해 대동문으로 갔다. 빗속에 가파른 돌길은 걷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흙길도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성곽을 따라 걷다가 나뭇가지와 풀들이 길을 막은 곳들은 너른 길로 올랐다. 비록 몸은 다 젖었지만 잎과 가지에 맺힌 빗방울이 더 차갑게 느껴지고 옷도 더 젖는 듯 해서였다. 
 
대동문에 도착해 오른쪽 길로 틀었다. 친구들 모임에 바로 가려면 대남문을 지나야 시간이 맞지만 집으로 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쉬다가 가고 싶어졌다. 시간을 보니 그럴 시간이 되어 여기서 탈출하기로 했다. 성문에서 내려가는 길은 대체로 험한 돌길이라 조심하지 않으면 발이 뒤틀릴 수 있다. 어느 사이 엉덩이가 축축해 졌다. 배낭을 타고 내린 빗물인 것 같다. 순식간에 바지 전체가 젖어들었다. 우산으로 가린 모자만 제외하고 땀과 빗물로 다 젖었다. 우산을 버리고 싶다. 발걸음 속도를 높였다. 그 덕분에 추위는 잠시 사라졌다. 이제 다 젖었으니 저체온증을 걱정해야 한다. 이럴 땐 빨리 걷는 것이 최선이다.  
 
내려오는 길 노적사 근처의 정자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비를 피하고 싶지만 들어갈 틈이 없다. 중성문 지붕 아래에도 빈 곳이 없어 보였다. 바지주머니에 들었던 지갑을 꺼내 손수건으로 감싸 더 젖지 않게 해서 다시 넣었다. 지갑이 젖어 바지에 푸른 물을 들여 놓았기도 했고 지갑 속 안경맞춤용 표가 젖으면 안되기도 해서였다. 이어폰 배터리가 떨어졌는데 다른 것으로 갈아 끼우기가 귀찮다. 이 빗속에 배낭을 내릴 곳도 없다. 역사관 옆 파고라도 빈 틈이 없다. 길을 걷는 이는 거의 없고 모두 비를 피하는 곳에 박혔다. 내려오는 길에서 몇 번을 미끄러지고 나니 계곡길을 피하고 싶어 찻길로 내려왔다. 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내려와 버스정거장으로 가니 그곳도 만원이다. 우산을 썼는데도 쫄딱 젖은 내 모습이 우스웠을 것 같다. 
 
주말버스에 타니 안심이 되었다. 옆자리에 올려 놓았던 배낭을 드니 물이 흥건하다. 얼른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런데 춥다. 에어컨 때문인가? 시간을 계산하니 바로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면 집에서 조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가 신호와 정거장에서 지체하면 조바심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어내려가 지하철을 탔다.
춥다. 몸이 떨릴 정도다. 이제 빗물이 마르며 체온을 뺐어가니 그럴수 밖에. 약냉방칸에 탔는데도 얼어죽을 지경이다. 환승을 위해 차에서 내리니 조금 살 것 같다. 열차 안에서 추위에 떨며 집에 와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살 것 같다. 엉덩이를 붙여 쉬지도 못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친구들 만나러 다시 탄현역으로.... 공덕역으로.... 
 
모임장소에 가니 여럿이 먼저 나와 있어 덕산막걸리를 한 잔 마셨는데 취기가 금방 오른다. 그런데 막걸리 맛이 참 좋다. 곧 정박사가 도착했다. 연구원장을 마치고 처음 만났다. 반갑다. 그런데 45도 짜리 안동소주를 가지고 왔다. 술이 목을 넘을 때 세상을 다 태우는 듯했다. 술향이 참 좋았다. 일이 있어 못 온 한 명을 빼고 열 명이 모였다. 테이블 마다 얘기가 다르다. 지난달에 에베레스트BC까지 북쪽으로 트래킹을 다녀온 친구의 얘기를 신나게 들었다. 나도 체력이 되면 다녀오고 싶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니 시간이 이르다. 보통 때면 아무리 빨라도 10시를 넘겼는데 8시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피곤하니 어서 씻고 자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우중산행이 될 줄 몰랐다.

 

산꼭대기는 구름에 숨었고 땅은 다 젖었지만 간다.

 

수문자리 앞 계곡이 다 말랐다.

 

폭포도 말랐다.

 

역사관 앞에 도착했다.

 

중성문 아래 계곡도 물이 흐르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중성문

 

산영루. 앞의 비닐우의가 대피소 가는 길을 따라 왔던 이다.

 

대피소 아래 비탈길

 

대피소에 힘들게 올랐다.

 

대피소 앞 광장이 안개에 잠겼다.

 

동장대

 

대동문

 

경리청상창지 앞길

 

내려가는 길의 역사관

 

대서문

 

다 내려왔다.

 

저녁에 만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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