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0.1 대피소 - 행궁지

PAROM 2022. 10. 2. 19:06

이젠 매주 산에 오는 것이 어려워졌다. 지난주만 해도 갑자기 아들이 금요일에 와서 손주들을 맡기니 창원에서 오랫만에 산친구가 왔는데도 가지 못하고 말았다. 오늘은 그래도 일이 없어서 산에 왔는데  친구 아들이 하루 당겨서 예식을 했으면 또 못 올뻔 했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친구 자녀들 결혼식을 다녀야 하니 아직 젊은 것인가? 하긴 나도 아직 마흔이 다 되어가는 큰 녀석이 독신을 고수하고 있으니....  
 
이틀 전엔 고등학교 친구들 여섯이 화정에서 만났는데 또 취했다. 그래서 어제는 완전 죽어 지냈다. 에휴.... 
 
산에 간다고 들뜬 것은 아닌데 4시에 잠이 깼다. 뉴스를 보다 보니 6시가 넘었다. 오늘도 출근하는 아내를 깨워 아침을 먹고 양치하고 나니 평소보다 10여 분 늦었다. 오늘은 아내가 8시에 출근하는 날이라 그 시간에 맞추다 보니 내가 늦은 것이다. 편의점에 일하러 갔다가 가져온 샌드위치를 넣고 포도알갱이와 물 5백과 3백 미리를 넣는 것으로 오늘 산행준비는 끝났다. 
 
역에서 탑승할 시간에 집을 나섰다. 괜히 마음이 급하다. 종종걸음으로 역에 도착하니 여유가 있다. 열차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 앞차와 10분 차이가 아니라 15분 차이였다. 열차 승객도 앞차보다 적다. 앞으로 이 열차를 타야겠다. 그런데 환승이 급하다. 반은 뛰었다. 주말버스가 한참 앞에서 앞뒷 문을 다 여는 바람에 하마면 산에 서서 올 뻔했다. 
 
계곡으로 접어드니 온 사위가 조용하다. 그렇게 울어대던 산새들 마저 한동안 입을 닫았다. 바람막이를 집에서부터 입고 왔는데 조금 걸으니 덥다. 수구정화단 앞 의자에서 옷을 벗어 넣고 화장실에 들려 산행준비를 단단히 했다. 시월인데 아직 덥다. 하긴 오늘이 초하루이긴 하다.
왜 조용한가 했더니 계곡에 물이 적다. 물소리가 나지 않아서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던 거다.
역시 오르는 길은 힘들다. 목에서 쇳소리가 난다. 게다가 허리가 자기 주장을 오래한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가자. 
 
지난 날들 보다는 땀이 덜 난다. 계절은 확실히 자신을 나타낸다.  그래도 힘은 드니 역사관 앞에서 쉬었다 가려고 했는데 데크에 금줄이 쳐졌고 꽃과 의자가 놓여 있다. 누군가 결혼식을 하나? 그런데 이곳은 많은 이들이 쉬는 곳인데.... 차라리 조금 위의 보리암 앞 데크가 조용하고 이용객이 적으니 더 낫지 않나?
지친 다리를 끌고 다리 건너 공원 안의 의자로 가야 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디로 갈까? 지난번에 행궁지에서 보국문으로 갔으니 오늘은 대피소로 올라가 가는데 까지 가보자 마음 먹고 길을 오르는데 돌길이 나타나니 흔들리는 돌을 밟고 비틀대기 시작한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발목을 접질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뒷사람이 보면 술 취한 놈인 줄 알겠다.
확실히 체력이 떨어졌음을 느낀 것이 바로 대피소에 오르지 못하고 길 가의 커다란 비탈바위에서 쉬며 이런 젠장 소릴 한 것. 아무리 뒤에서 한 쌍이 쫓아 온다고 해도 내 페이스로 걸어야 했는데 쳐지기 싫어 죽어라 내뺀 이유가 더 컸다. 쉬는 동안에 그들은 시야에서 바로 사라졌으니 고생만 하고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대피소 아래에서 쉬었으니 대피소는 바로 통과하여 대동문으로 갔다. 대피소 아래 예쁘게 단풍이 드는 곳과 능선을 지나며 단풍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한 두 개 보이기는 하지만 그걸로 즐기기엔 조금....
능선에서 고양시 쪽은 맑은데 노원구와 중랑구는 구름이 완전히 덮어 수락산과 불암산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아 이게 그 악명 높은 분지의 정체된 스모그 구나. 일찍 이사 나오길 잘한 것인가? 
 
능선을 따라 걷는데 칼바위까지도 서울은 구름이 짙다. 보국문에서 내려가야 겠다고 했는데 막상 보국문에 닿으니 공사가 한창이다. 아직 11시도 멀었는데 더 가자며 돌계단을 올랐다. 역시나 이제부터는 다리힘 싸움이다. 힘들 땐 무릎을 짚어가며 올라야지. 세 곳의 오름을 모두 오르니 배가 고프다. 대성문 아래 마루에 볕을 피해 등을 돌리고 앉아 배낭을 풀었다. 앉은 김에 조금 더 쉬니 개운하다. 이러면 더 가야지. 여기에서 3백 미터만 더 가면 대남문이다. 성곽을 버리고 옆길을 잡았다. 이제 지치는 지 발이 자꾸 돌맹이를 차며 몸이 흔들린다. 
 
어떻게 대남문에 왔다. 대피소에서 여기까지 온 게 언젠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겨울엔 땀이 많이 나는 코스니 반대편 보다 더 자주 이용하는데 다른 계절엔 더워서 별로였다.
역시 대남문에서 광화문은 안 보인다. 그냥 내려가려니 서운하다. 넘어지면 무르팍 닿을 거리인데.... 그래 죽더라도 가자. 아직 시간도 많고 언제 또 이길을 걷겠냐? 
 
걷다가 생각하니 내일 정오 조금 지나서 욱환이 작은 아들 결혼식이 있다. 피곤해서 큰일났다. 그래도 어쩌냐 이미 반은 올랐는데. 갑자기 속도가 떨어지며 숨이 턱에 닿는다. 난 이제 죽었다.
어찌어찌 문수봉에 오르니 이건 뭐 일산 장날 같다. 사진 찍는 이들에게 삼각산 배경이 좋다고 말하고 쉬려는데 사진기 아니 핸펀을 내미는 이들이 많다.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온 길보다 다른 길로 가야겠지? 그래서 상원봉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고프고 피곤해 진다. 큰일이다. 배낭엔 포도알 열 개 정도와 물 조금만 있다. 이럴 땐 쵸코렛이 좋은데. 배낭을 뒤지기 귀찮아 그냥 능선길을 걸었다. 어디선가 쉬고 싶은데 마땅한 자리가 없다. 그러니 계속 내려갈 밖에. 그러다 행궁지 옆 내리막 초입의 자주 쉬던 바위에 잠시 배낭을 내렸다. 
 
늘 느끼는 것을 또 느낀다. 내려가는 길이 케이블카나 엘리베이터면 얼마나 좋을까.
ㅡ 여기서 들꽃쉼터쥔장님께서 말을 거시는 바람에 잠시 쉬다가 ㅡ
역사관에 도착하니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내가 산에서 제일 싫어하는 소리다. 그런데 데크에 많은 이들이 하얀의자에 앉아 있다. 결혼식인가 보다. 그런데 신부가 외국인이다. 마이크 잡고 한참 얘기하는 이가 신랑인가 본데 신부가 훨 크다. 종이를 보고 읽다가 영어로 다시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광경에 외국인 등산객들도 멈춰 구경을 한다. 제발 잘 살아라. 너희들은 내 자리 뺐은 것 보다 더 크게 잘 살아야 한다. 
 
계곡길을 버리고 찻길로 내려왔다. 그리고 쉼터행. 오늘은 아들이 혼자 집에 왔으니 여유가 있다. 이제 집에 가야지. ㅎ~~

 

자, 산으로 가자!

서암사 계단 옆에 가을꽃이 한창이다.

물이 이렇게 줄었으니 길이 조용했던 것이다.

백운대로 가는 삼거리. 단풍이 들면 저 앞 은행나무 잎이 노랗고 앞의 단풍나무는 빨개져서 멋진데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나뭇잎은 많이 떨어져 계곡이 환해졌다.

길 위에 걸친 이 나무는 언제나 치우려는지....

대피소 아래의 단풍나무. 이나무가 이 계곡에서 제일 먼저 붉어졌는데 이제 색이 조금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 단풍만 일찍 색이 들었다.

힘들게 대피소에 올랐다. 오늘은 아래에서 쉬었으니 여기서는 쉬지 않고 바로 동장대로....

동장대의 억새가 가을을 먼저 알리고 있다.

대동문 위 제단에서 보이는 동장대와 삼각산

제단에서 대동문으로 내려가는 길. 동부 서울이 구름에 잠겼고 수락과 불암산 꼭대기만 구름 위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수중인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여기서 보국문으로 내려가 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시간도 남고, 힘도 남고, 욕심도 남아서 저 뒤의 산들을 다 걸었다.

북쪽전망대. 여긴 아직 나뭇잎이 많이 남아 삼각산만 겨우 보인다.

남쪽전망대에서 본 형제봉. 뒤로 백악이 뿌옇게 보인다.

삼각산. 하늘은 완전히 가을이다.

대성문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형제봉

대성문. 여기서 잠시 쉬며 배를 채웠다.

국화과의 꽃이 길가에 줄지어 피었다.

대남문을 이 위치에서 오랫만에 찍었다. 여기서 내려갈까 했는데 문 앞에 보이는 문수봉을 차마 그냥 볼 수는 없었다.

구기동계곡. 광화문도 구름에 잠겼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 찍고 남장대지능선으로 간다.

청수동암문 사이로 구파발이 희미하게 보인다.

상원봉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한 장 더 찍고....

의상능선 너머로 은평뉴타운과 삼송지구가 보인다. 확실히 동부 서울 보다 구름이 적다.

남장대지 앞에서 보이는 삼각산

앞 사진에서 서너 발자국을 더 나오면 이 모습이다.

능선에서 내려서서 처음 나오는 바위에서 삼각산이 훤하게 보인다.

중성문

역사관 앞 데크에서 결혼식이 진행중이다. 신부는 외국인이었다.

다 내려왔다. 오랫만에 길게 걸어서 힘이 많이 들었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10 이말산- 삼천사- 문수봉- 대성사- 북한동. 친구들과  (0) 2022.10.11
10.8 고봉산  (1) 2022.10.09
9.17 행궁지 - 보국문  (0) 2022.09.18
9.3 고봉산  (0) 2022.09.05
8.27 대피소 - 보국문  (0) 20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