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쉼터에 들렸다. 약속이 깨지지 않았으면 오늘은 삼송리로 바로 갔어야 했다. 막걸리 한 잔을 가볍게 마시고 일어날 곳이 점점 없어져서 큰 일이다. 등산코스를, 아니 하산처를 바꿔야 좋으려나 싶다.
지난주를 거르고 산에 왔다. 지지난주에는 단풍이 제법 좋았는데 오늘 와서 보니 다 말라 비틀어져 산이 온통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그동안 산에 비가 왔었는지 계곡물이 마르지 않고 졸졸 흘렀다. 계곡 초입엔 서리가 내려 풀들이 하얗게 머리를 숙이고 있다.
새벽에 아내에게 삼송리 사는 친구가 어제 밤에 전화해서 오늘 저녁에 보자고 했다고 하니 영 못마땅해 한다. 김장환 선배도 같이 본다고 했는데도 역시나다. 잠결에 했어도 약속은 약속이니 어떻하냐, 지켜야지.
아내는 뭐 싸갈 거냐고 묻는다. 늘 샌드위치다. 아직은 컵라면 먹을 때가 아니니까. 대신 뜨거운 녹차로 과일을 대신했다. 아침을 먹기 전에 튀각하려고 풋고추를 조금 자른 것 때문에 밥시간이 늦었고 출발이 30분 늦어졌다.
탄현역에서 8시 8분에 출발하는 차를 탔다. 빈자리는 없다. 대곡에서 3호선으로 갈아 탔는데 빈 자리가 딱 하나다. 빈자리에 가기 위해 달리는 것은 질색이다. 아직 경로석에 앉아 가기엔 좀 뭐하다. 구파발에 내려 버스줄 앞에 섰는데 주말버스가 저 앞에서 문을 여는 바람에 또 서야 했다. 오늘은 엉덩이를 댈 복이 없나 보다.
평소 보다 늦은 시간인데도 해가 늦어 어둡다. 계곡에 드니 찬바람이 휑하니 분다. 내가 사는 동네와 북한동이 6시에 영하 2도였다. 길가 숲이 하얗다. 서리가 내렸다. 이제 풀들이 본격적으로 죽기 시작할 거다. 또 한 해가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
오랜만에 산길을 걸어 그런지 발걸음이 가볍게 잘 떨어지고 허리도 괜찮다. 아프던 오른쪽 어깨도 이젠 많이 좋아졌는데 오른팔이 저린 것은 아직 낫지 않았다. 정형외과에 가 봐야겠다.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짧고 낮게 걷자고 다짐했다. 시간이 많으니 저녁 약속에 가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런데 앞사람들을 지나치는데도 발이 꼬이지 않는다. 이러면 제대로 함 걸어 봐? 그래, 그러자! 뒤에서 부지런히 쫓아오는 이를 피할 겸 행궁지길로 들어섰다. 이러면 최소 11키로다. 문수봉은 당연히 포함이고 주능선상에서 어디로 내려갈까만 남았다.
잎이 떨어지니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이 없어 걷기 편하다. 건너편 의상능선의 나월봉이 손에 닿는 듯하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 능선에 올라서니 비로써 산객들이 스친다. 양지바른 바위자리를 지나는데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지나가며 의상능선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 이분들 샛길로 들어서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를 따라오라 해서 상원봉에서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고 나는 문수봉으로. 그런데 산행대장이 길도 모르고 리더를 해도 되나? 한겨울에 아무도 만나지 못하면 어쩌려고?
문수봉에서 사진 찍는 젊은이들에게 참견하다가 늦게 내려와 성곽길을 따라 걸었다. 삐돌은 전화가 꺼져 있다. 보국문을 지나쳐 대성문으로 가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약속을 취소했으니 쉼터에 들릴 수 있게 되었다. 김장환 선배도 일이 있고 몸이 편치 않아 취소하자고 했었다. 편해진 마음에 시간을 보니 정오가 지났다. 동장대 앞 양지바른 석축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런데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는 게 아니었다. 너무 컷는지 지금까지 배가 더부룩하다.
오늘은 다 오랫만이다. 대피소도 오랫만에 그냥 지나쳤다. 내려오는 길에선 역시 오랫만에 방향을 살짝 바꿔 중흥사 앞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늘 그렇듯 걷기 싫은 내리막길 들들.
혹시나 아는 얼굴이 지나갈까 해서 색안경 건너로 살피지만 없다. 이 산길에서 만나고 싶은 얼굴들이 여럿 있는데.... 이름을 적었다 지웠다. 빠진 이의 보복이 무서워서. ㅋㅋㅋ
산길을 다 걷고 이렇게 편히 앉아서 쉬는 것이 참 좋다. 그맛에 산에 오는 지도....
이번 화, 수욜에 같이 양양에 갔던 친구들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 왔겠다. 태어나면서 부터 지금까지 친구. 이 친구들의 부모님들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셨다. 특히 기억이 없는 시절들을. 12.30에 또 만나기로 했다.
올가을 들어 첫 영하의 온도라 오랫만에 핸더슨자켓을 입고 집 출발.
실제론 색이 이리 다양하지 않았는데 사진엔.... 이제 산으로 들어간다.
아직은 폭포에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바위엔 검은 물때가 잔뜩 피었다.
폭포 위에서 내려다 본 계곡. 실제로는 사진의 색감과 다르다.
역사관 위의 백운대 갈림길. 은행잎은 벌써 다 떨어졌고 단풍잎은 말라서 끝이 말려 있었다.
중성문 아래 계곡. 잎들이 떨어져 휑하다.
중성문. 위에 걸린 소나무는 치우지 않으려나 보다.
낙엽이 지니 계곡 건너의 큰얼굴 모양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영루. 이 시간엔 역광이라 지나가서 찍었다.
행궁지 갈림길 아래 계곡. 낙엽이 더 우세해서 지저분해 보이기 까지 하다.
건너편 의상능선의 나월봉도 낙엽이 지니 잘 보였다.
날이 맑아 건너편 주능선 너머 칼바위도 보인다.
남장대지능선에 오르기 전 암벽 위에서 보이는 삼각산
주능선 너머로 도봉산과 수락산, 불암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의상능선 너머로는 고양시와 구파발, 연신내가 보이고 집 옆의 제니스빌딩도 분명하게 보였다.
상원봉에서 보이는 도봉산, 삼각산. 염초봉, 원효봉, 의상능선.(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에서 보이는 문수봉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에서 보이는 비봉능선
문수봉에서 증명사진 한 장
구기동계곡
비봉능선
지나온 길들. 이제 여기서 찍은 사진은 그만 올려야겠다.
오른쪽의 남장대지능선을 지나 문수봉, 대남문을 거쳐 온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쪽전망대에서 보이는 서울
칼바위도 잘 보이고
칼바위와 형제봉. 남산타워도 잘 보였는데....
두 팀 사이 자리에서 쉬었다. 이 분들은 내가 일어나며 온 분들이다.
대피소. 오늘은 그냥 지나쳤다.
역사관 앞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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