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1.11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2. 11. 13. 08:53

너무 피곤하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이렇긴 처음이다. 산에서 내려와 집에 와서 씻고 저녁을 반 병도 비우기 전에 물리긴....
어제 저녁에 친구들과 심하게 달린 것도 아니고 과음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힘들다. 일단 한 숨 푹 자고 일어나서 정리를 해야겠다. 20221112.17:21
한 숨 자고 일어났는데 온 몸이 맞은 듯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머리는 개운하다. 근데 졸립다. 20221113.02:45

이번주는 평온하게 지나갔다. 밑으로만 가라앉던 코스피도 고개를 조금 들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패퇴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고 팔곡동 밭은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았단다. 형질변경을 하자고 하시는데 내 상식으로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안 될 거란 생각이다.

어제 종로3가 대련집에서의 청송회친구들 모임엔 9명이 나왔다. 모두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전 대학 학장의 퇴임식에 참석하게 된 정 박사와 다음주인 줄 착각해 모임이 시작된 지 한참이 되도록 손주를 돌보고 있던 이 원장이 불참했다. 올해들어 처음 홍 사장이 참석해서 반가웠다. 나는 이번 모임을 끝으로 앞으로 11년 후에야 다시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친구들 모두 건강하니 모두들 최소 5번 씩은 할 것이다.

대련집에서의 모임은 다시 없을 듯하다. 소문난 집이긴 하나 손님이 너무 많아 음식이 제때 제공되지 않았고 고급을 추구하는 몇 친구들에겐 저렴하게 보였다. 내가 기대했던 낙지요리도 실망하게 만들었다.
2차로 찾아간 을지로 노가리골목엔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를 찾아 제일 끝집으로 밀려가야 했다. 예전엔 나이가 든 직장인들이 찾는 곳이었는데 이삼십 대가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5시 조금 넘어 눈을 뜨니 머리가 무겁다. 친구들 만나 밤 11시에 집에 왔으니 예전에 비해 일찍 온 것인데 체력은 예전과 같지 않은 탓이리라. 하루를 쉬고 일요일에 산에 가려다 그냥 가기로 한다. 그런데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늦어 7시 20분에 잠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아내도 내가 일어나지 않으니 시간이 되지 않은 줄 알고 늦잠을 잤단다. 서둘러 샌드위치를 만들고 아내는 먼저 출근하고 난 아침을 먹고 설겆이를 하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서니 8시 반이다. 일기예보에 오후 2시부터 비가 온다고 돼 있어서 비옷과 우산을 챙겨 넣었다.

이 시간의 열차에도 승객이 많았다. 경의선과 3호선 모두. 3호선의 늘 여유롭던 좌석이 한 자리만 남아 있을 정도였다. 구파발역에서 34번이 먼저 출발하며 산객들을 태워갔기에 여유롭게 주말버스에 올라 산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려고 해서 그런지 볕이 나긴 하지만 구름이 낮고 계절에 비해 덥다. 계곡에 들어서니 잎이 많이 떨어져 숲속 시야가 길어졌다. 아직은 마른 단풍잎들이 나뭇가지에 제법 많이 매달려 있다. 계곡물은 곧 마를 듯하다.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산에 오기 전날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젊은 시절의 내가 이미 아니다.

역사관 앞 데크로 오르는 계단이 썩어 내려 금줄이 처져 있다. 빙돌아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땀을 식힌 후 이어폰을 끼고 일어섰다. 지금 상태면 조금만 걷고 내려와야 한다. 몸의 균형을 잡는데 힘이 든다. 선봉사 아래 급한 비탈길도 버거워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 전화가 왔다. 눈비돌이다. 대피소를 지나 보국문으로 간다고 했다. 중성문 아래 길위에 걸렸던 쓰러진 큰 소나무가 치워진 것이 보였다. 진작에 치우지. 너무 오래 걸렸다. 컨디션이 별로지만 부지런히 걸어 태고사 아래 비탈길을 올라 대피소를 향해 죽을 힘을 다 했다. 돌부리를 자주 차고 비틀거리는 것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나타냈다.

대피소에 힘겹게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보국문을 향해 다시 걷는다. 힘이 들었지만 일단 능선에 오르니 마음과 몸이 편해진다. 동장대로 가는 길은 참 편안한 길이다. 이번 가을을 이 길에선 찾을 수 없어 아쉽다. 눈비돌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대성문으로 가는 중이란다. 난 보국문까지 8백 미터 정도 남았다. 힘이 드니 길 바닥만 보고 걷는다. 눈 앞 풍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보국문에 힘들게 도착해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균형을 잃고 공사가림막 철판에 부딪혔다. 옆에서 쉬던 젊은이들이 깜짝 놀라며 괜찮냐고 묻는다. 에휴 창피해라.
보국문에서 바로 계곡으로 내려섰는데 또 다시 전화가 왔다. 북한동으로 내려가며 보자고 했다. 지난 가을의 큰 비에 계곡길이 많이 파인데다 멧돼지들이 파 놓아서 험해진 길위에 낙엽이 덮여 있으니 무척 조심해야 한다. 내리막길이 최악의 상태였다. 겨우 큰 계곡길로 내려서니 숨을 돌릴 수 있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한참을 내려오다 경리청상창지 조금 위에서 결국 크게 엎어지고 말았다. 앞에 오는 이에게 큰 절을 한 형국이 됐는데 손바닥과 정강이가 엄청 아파서 "어휴 아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일어난 일이다. 오른쪽 손바닥과 왼쪽 정강이가 쓰리고 바지에 흙이 잔뜩 묻었다. 역사관 앞까지 부지런히 걸어 가 쉬면서 바지를 걷어보니 피가 났다. 배낭에서 감을 꺼내 먹고 녹차를 마시고 있는데 눈비돌이 도착했다. 거의 보국문에서 만나다 여기서 만나기는 처음이다.

녹차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찻길을 따라 북한동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전주식당에 들러 동태탕으로 지친 속을 달래고 구파발역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집에 도착하니 4시가 안됐지만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막걸리 한 병 마시고 푹 자려고 했으나 반 병도 비우지 못하고 퍼져야 했다.
산에 가기 전날엔 금주가 답이다.


집 앞 단풍나무들 색이 곱다. 이제 산으로 간다.

계곡폭포에 물이 졸졸 흘렀다.

역사관 앞 풍경

중성문 아래 계곡. 나뭇잎이 떨어져 휑하다.

중성문 아래 길 위에 걸려 있던 소나무가 드디어 치워졌다. 하늘이 밝아졌다.

잎이 지니 노적교가 제대로 보였다.

사ㅏㄴ영루

드디어 대피소에 올랐다.

동장대

동장대 앞 전경. 문수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이제 다 보인다.

제단 뒤에서 보이는 삼각산과 동장대

증명사진을 찍고

대동문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에서 칼바위도 보이고....

보수공사 중인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이제 내려갈 길만 남았다. 저 뒤에 문수봉이 보인다.

보수공사 중인 보국문. 이 가림막 오른쪽 끝에 부딪혔다.

중성문

북한동역사관 위의 소공원

많은 통화 후에 드디어 만났다.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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