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14 행궁지 - 대성문

PAROM 2023. 1. 15. 07:27

올들어 처음 북한산에 왔는데 산행 내내 빗속을 걸었다. 이 한겨울에 웬 비냐? 날이 영상이라 눈 대신 부슬비가 내렸지만 참 멋 없었다. 벗어 두었던 자켓을 꺼내 입었더니 춥다. 얼큰한 순두부에 몸을 녹여야겠다. 
 
새해 첫날은 아들과 집 근처의 심학산에서 해맞이를 했고 첫째 주말-사실은 1월 2일부터 열흘간이다-은 콧물감기에 꼼짝 못하고 집에 박혀 있어야 했다. 그러다 이틀전에 몸이 좋아진 듯하여 막걸리를 한 잔 했는데 컨디션이 좋았다. 드디어 감기가 다 낫다는 신호니 비가 온다고 오늘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지난주에 산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보니 눈세상이었는데 아직 남았으려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아들에게 간단다. 손주들 보러. 난? 못 가지. 더구나 오늘 집에 온다고 하는데. 
 
아내가 어제 퇴근하면서 바로 안산으로 간 바람에 집안이 썰렁하다. 둘이 산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꿈속에서 아내가 일어나라고 깨우는 바람에 깼는데 새벽 한 시도 안 됐다. 한참을 뭉기적거리다 다시 자고 일어났는데 내가 아침을 해먹고 점심거리와 간식을 준비하려니 정신이 없다. 아내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 한 거지? 빼 놓은 것 없나 다시 살피고 등산화 끈을 매고 집을 나서며 7:38 차에 여유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탄현역 계단앞에서 보니 열차가 접근 중이란다. 죽어라 뛰어야 한다. 겨우 탔다. 게다가 빈 자리도 있다. 좋다. 
 
요즘 고민이 생겼다. 노약자석에 앉아야 되는지, 일반석에 앉아야 되는지. 출근하는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노약자석을 차지해야 되는데 등산배낭을 짊어진 놈이 노약자석에 앉는 건 욕 먹을 일이다. 그런데 척추전방전이증 때문에 오래 서 있으면 죽을 지경이니....  당분간은 일반석을 이용하되 출퇴근 때는 열차를 타지 않는다로 정했다. 
 
구파발역에서 내렸는데 몸이 더워져서 중간 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버스정거장으로 가니 주말버스가 막 떠나고 있다. 손을 들어 세우고 고맙다 인사하고 타니 승객은 나까지 세 명이다. 비가 오고 있는데다 이른 시간이라 이런가 보다. 한 명은 의상봉 가는 백화사에서 내리니 둘만 종점까지 왔다. 버스에서 내려 산을 언뜻 보니 하얗다. 먼 곳은 다 구름에 감싸여 하얗다. 비는 내리는데 젖을 정도는 아니다. 그대로 계곡으로 들어섰다. 
 
물소리가 엄청 크다. 장마철의 어느날인 듯 싶다. 물도 넘치게 흐르고 있다. 금요일에 오고 오늘 까지 온 비에 계곡이 이렇게 변했다. 물이 차고 넘치니 구경하고 듣기는 좋다. 내려오는 이를 두 명 만나며 역사관으로 올랐다. 이른 시간이고 비가 와서 산에 사람이 적나 보다. 겨울의 한 가운데인데 비가 오니 뭔가 이상하다. 하긴 인간세상이 목불인견이니 하늘도 삐졌겠지. 어서 내 아는 이들이 편할 날이 오길.... 
 
길이 질다. 눈 아니 얼음이 녹아질척거린다. 이 시기에 아이젠 없이 장갑 없이 산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미끄러질 조심이 아니라 흙탕물 조심하며 산길을 올랐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로 갈까? 올 처음 왔으니 문수봉은 가야지? 아냐, 애들 온다고 했으니 일찍 집에 가려면 보국문까지만 가자.
걷다가 대피소 삼거리를 그냥 지나쳤다. 문수봉으로 그냥 갔다가 보국문에서 내려오자. 그런데 발걸음이 무겁다. 보름만에 산길을 걸어서 그런가? 사람들도 없으니 천천히 걷자. 행궁지로 가는 삼거리를 무심히 지나쳤다가 화들짝 놀라 짧은 시간 생각하다가 한동안 오지 않았단 생각에 행궁지로 발길을 옮겼다.  
 
행궁지에 가까워지면 늘 드는 고민이 옛길과 새길 중 어느 길을 걸을까이다. 요즘은 8할은 새길을 선택하고 있고 오늘도 그랬다. 지난번만 해도 발목을 덮었던 눈이 다 녹아 낙엽을 드러내고 있다. 눈이 없으니 오르기가 훨씬 쉽다. 티만 입고 오르는데도 추위를 느낄 수 없다.
밧줄코스를 오르니 구름이 감싼다. 고지대라 구름이 사방을 덮고 있다. 곧 건너 산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을 적신다. 난 지금 구름 속에 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춥지 않다.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니 역시 시야가 짧다. 오늘은 구름이 낮다. 상원봉을 우회하려다 성곽길로 내려왔다. 청수동암문 못미처에서 크게 미끄러져 땅을 짚었다. 문수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보이는 것이 없다. 문수봉에 나 혼자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갸우뚱 거리다 대남문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성곽길로 대성문으로 가는데 역시 숨이 가쁘다. 늘 쉽게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오름이 길고 가파르다.  
 
대성문에 가까워 지니 소란스럽다. 이 시간에 단체라니? 황당하다. 인원이 엄청 많다. 위 아래가  서른 살 이상 차이 나 보인다. 회사에서 왔나?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 버티다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왼쪽으로 내려와 계곡길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만나는 계곡물 마다에서 멈춰서 바지가랑이에 묻은 흙을 닦으며 내려왔다. 가끔은 우산을 접고 가끔은 쓰면서 그 긴 길을 내려오다가 부왕동암문 갈림길 이정표에서 운동화를 신은 외국인이 북한산을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저 위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800미터 가면 대피소가 나오고 거기서 1.6키로 가면 나온다고 했다.

 

겨울이라 추워서 요사이는 거의 쉬지 않고 걷는데 오늘은 비까지 와서 땅이 다 젖었으니 더 앉기는 틀렸다. 배낭에 들은 컵라면도 귀찮다. 물도 안 마시고 자유시간 쵸코렛 두 개로 버텼다. 가져온 짐만 크다.

 

 

올들어 첫 북한산행. 7시 반인데 어둡다.

이제 시작이다. 구름이 아래까지 내려왔다.

산성수문자리에서 본 원효봉. 구름에 안 보인다. 계곡 얼음은 물가로 내몰렸다.

계곡에 장마철 같이 물이 흘렀다.

이게 한겨울의 폭포라면 믿을까?

법용사 앞의 계곡

중성문 아래 계곡도 한여름 같다.

중성문

노적교 아래 계곡

산영루

산영루 앞에서

발굴 후 복원 중인 행궁지

남장대지로 오르기 전의 작은 능선. 이 건너편에 나월봉이 있다.

이 암벽을 넘어서야 능선에 닿는다.

능선에 오르면 이 그루터기에 앉을 수 있는 소나무가 반긴다.

구름에 쌓인 능선길

여기가 이 능선에서 가장 바람이 쎈 곳이고 날려온 눈이 무릎을 덮는 곳이다. 여기  남은 눈도 발목을 넘겼다.

남장대지 옆의 의상능선을 조망하는 곳인데 구름이 다 가렸다.

보이지 않는 삼각산을 배경으로....

상원봉의 이정표

청수동암문으로 가는 성곽길. 이 성곽 건너에 문수봉이 있다.

청수동암문도 구름에 잠겼다.

대남문. 여기에 내려오니 등산객들이 보였다. 지붕 아래에도 한 무리의 산객들이 있었다.

대성문으로 가는 성곽길에 눈이 남았다. 그것도 많이. 

대성문. 저 지붕 아래에 엄청 많은 인원들이 있었다.

대성암. 구름에 잠겨 신비롭게 보였다.

중성문

중성문 근처 산에서 내료으는 작은 계곡. 얼음이 참 이뻤는데 사진엔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역사관 앞. 텅~~~~~

대서문

다 내려왔다.

대서문을 지나자 두 명이 이 식물을 뜯고 있었다. 뭐냐고 물으니 씀바귀란다. 모야모에서 물으니 '산괴불주머니'란다. 그런데 국립공원에서 이런 것 채취하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