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21 보국문 - 대피소

PAROM 2023. 1. 23. 12:26
설 전날이라 그런지 등산객들도 별로 없고 산이 좀 황량하게 느껴졌다. 차례 음식 만들지 않고 도망 나와서 더 그리 느껴졌나?
아들 식구들이 일찍 집에 온다고 했으니 손주들 보러 집에 빨리 가야겠다. 
 
오늘 산에 오기 위해 내일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어제 다 했다. 아내는 산에 가는 것이 못마땅해 하지만 막지는 않는다. 궁시렁궁시렁 해서 전을 부치고 산엔 이삼 일 후에 가겠다고 하니 걸리적 거리지 말고 나가란다. 하긴 내가 명절에 할 일은 전 부치는 것이 다다. 게다가 이번에 전도 조금만 할 것이니 더 내 존재감이 떨어졌다. 그러니 산으로 올 밖에.
못마땅해 하면서도 샌드위치 속재료를 어느새 다 만들고 녹차도 뜨겁게 담아 놨다. 늘 그렇듯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리고 집을 나서는데 지갑, 핸펀 등을 챙겼냐고 묻는다. 아내가 집에 있으면서 나를 산에 보내는 것이 참 오래 되었다.  
 
집에 있으며 챙겨준 아내 덕분에 역에 일찍 도착했다. 열차는 세 정거장을 앞을 막 출발했단다. 교통카드에 잔액이 400원 밖에 없어서 지하철 무료카드에 만 원을 충전하고도 시간 여유가 있다. 전엔 같은 시간부터 준비했어도 앞 정거장 도착이었는데.... 탄현역에서 7:38분 열차를 타면 대곡역에서 5분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설  전날이라 그런지 육교를 올라가서 보니 백석역에서 차가 출발했단다. 뛰기는 좀 그렇고 종종걸음으로 가니 오금 가는 차가 바로 도착했다. 그런데 차가 텅 비었다. 긴 의자에 둘씩 앉아 갔다. 
 
구파발역에서 주말버스를 탔는데 승객이 두 명이다. 한 명이 더 있어서 다행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한기가 휙 몰려온다. 오늘 아침 울 동네 기온이 영하 14도였다. 여긴 산 밑이고 해가 뜨기 전이니 더 추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집에서 단단히 차려 입었고 주머니에 핫팩 큰 것도 있으니 든든하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길이 하얗다. 엊그제 내린 눈이 녹았다가 얼음으로 변했나? 디뎌보니 얼음은 아니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여지껏 남아 있던 거다. 발걸음 마다 뽁 뽁 뽀복 소리를 낸다. 신나는 음악과 같다. 신 난다. 그런데 길이 미끄러우면 힘이 많이 드는데....
계곡물이 반은 얼었다. 암반을 휘돌아드는 물들이 얼음을 반만 만들고 넘치듯 흐르고 있다. 늘 와도 참 멋지다. 귀찮아 아이젠을 하지 않았더니 자꾸 미끄러진다. 낮에 풀린다는데 아직은 손이 시렵다. 다행스럽게도 계곡을 오를 수록 추위가 가는 듯하다. 
 
역사관 앞 데크 의자에 얼음이 덮여 다리 앞 의자에서 쉬며 썬그라스를 꺼내 걸치고 불루투스이어폰을 끼고 켑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문수봉을 향해 앞으로.... 그런데 요즘 나를 앞질러 가는 이들이 있는 것은 아는데 오늘은 왜 이리 많은지? 설 전날이라 매니아들만 와서 그런가? 암튼 우울하다. 
 
그런데, 어디로 갈까? 오늘은 일찍 가야 하니 짧게 걷자. 지난주에 가지 않은 곳을 짧게 걷자. 그러면 답이 나왔다. 대피소에서 보국문으로 가던지 보국문에서 대피소로 가는 거다.
산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이들이 산속에 들어오니 자주 보인다. 참 부지런한 분들이다. 그들을 지나쳐 오르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노적사 갈림길 위의 정자에서 아이젠을 신었다. 그랬더니 걷기는 편한데 힘이 더 든다. 그래도 자빠지는 것 보다는 낫다. 
 
열심히 걷는데도 땀에 옷이 젖는 느낌이 없다. 춥기는 추운 날인가 보다. 큰 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갈림길 부터 발자국을 셀 수 있겠다. 남들이 딛지 않은 눈을 골라 밟았다. 너덜지역이라 더 힘들다. 숨을 몰아 쉬며 보국문에 올랐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대성문으로 가? 원래 생각대로 걷자. 왼쪽 길로 틀었다.
이젠 편히 가는 길이다. 마음이 편하다. 지나치는 이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보내며 길을 갔다. 대동문 위 제단에서 절을 할까 고민하다 그냥 동장대로 갔다. 
 
성곽길 거의가 눈에 덮였지만 볕이 많이 들었던 곳은 마른 흙이 드러나 있었다. 이런 곳을 만나면 아이젠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골라 딛는다. 그렇지만 소용은 거의 없을 거다.
오랫만에 대피소 지붕아래에서 배낭을 벗었다. 식초물 한 모금과 쵸코렛 두 개로 요기를 했다. 점심시간이 멀었는지 들리는 이들이 없다. 손주들 보러 어서 내려가야겠다.
법용사 앞 의자에서 아이젠을 벗었다. 역시나, 역사관 앞 다리를 건너자마자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이구 창피해! 
 
어서 집으로 가기 위해 눈과 얼음이 덮인 큰 길로 내려왔다. 계곡입구 제일 가까운 곳에 소풍이라는 쉼터가 생겼다. 유리창에 청어와 양미리구이를 한다고 붙었다. 기다려라.
이제 집에 간다.
 
 
 
수문자리에서 본 원효봉과 계곡 

계곡에 물이 제법 많다.

폭포에 얼음도 얼었고 물도 소리 내어 흐른다. 듣기 좋은 소음이다.

노적사 갈림길 위의 다리와 위쪽의 정자. 길의 눈이 얼음화 되어 정자에서 부득이 아이젠을 신었다.

산영루로 가는 길

대동문 갈림길 전의 물 건너는 곳

보국문. 이 공사는 언제나 끝나려는 지....

이제 보국문 위의 능선에 올랐다. 이제 편한 길이 남았다.

이 시간엔 추위가 어느 정도 가셨는데, 왜 이리 추워 보이지?

칼바위와 형제봉

대동문. 여기도 보수공사 중이다.

대동문 위 봉우리의 제단. 시산제를 혼자라도 할 걸 그랬나?

동장대

동장대전망대. 저 멀리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이 보인다.

대피소로 가는 길의 바람골. 눈이 날려 성벽 아래에 쌓였다.

대피소와 동장대 중간의 평온한 길

대피소. 오랫동안 나 혼자 차지했다.

대피소로 가는 계곡 징검다리가 얼음에 거의 잠겼다.

중성문

역사관

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