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11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3. 2. 12. 07:30

오늘 왜 이리 썰렁하고 춥지? 입춘이 지났는데 추우려면 아주 춥고 아니면 날이 풀려야 하는데 영하 17도 때보다 더 썰렁하고 한기가 느껴진다. 오늘 우리 동네는 새벽 영하 4도에서 오후에 영상 5도인데. 
 
지난주 화, 수, 목은 안산에 손주들 보러 가느라 친구들 모임에도 못 가고 더불어 운동도 못하고 어제 헬스장을 가니 늘 들던 기구들이 무지 무겁게 느껴졌다. 나이 들어서 운동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그러니 오늘 무조건 산에 와야 했다. 
사실 요즘 할 일들이 널렸다. 안산 밭에 집수공과 배수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내일 국제에 같이 있었던 친구와 하기로 했고 주중에 해야 할 집안 일들과 친구들 만날 일도 쌓였다. 이제 친구들 모임엔 가급적 참석하려 한다.
아들은 오늘 정오에 친구 결혼식이 동네에서 있다고 식구들을 다 몰고 온다고 했으니 내집에서 손주들을 봐야 했었지만 출근하는 아내를 따라 나오며 집을 비웠다. 이쁘고 보고 싶은 자식들이지만 오랫동안 보려면 내 건강도 지켜야해서 였다.  
 
오늘도 5시에 일어나 내 점심까지 만들어 준 아내와 같이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한 번도 하지 않던 앵글에 얼굴을 내밀며 "마누라는 출근하고 남편은 놀러 가는 것이 좋냐? 남들이 뭐라 그러냐?"하며 시비를 건다. 당연히 남들은 부러워한다. 우선 우리 나이에 산에 다닐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리고 아직도 돈을 버는 구성원이 있는 것에 대해. ㅋㅋㅋ 그런데 돈 벌면 뭐하냐? 내겐 한 푼도 쓰지 않는데. ㅠㅠ
 
나갈 준비가 끝났었지만 시간이 일러 조금 쉬다가 아내의 출근시간에 맞춰 함께 집을 나섰다. 늘 타던 열차를 여유롭게 타고 환승을 하며 산으로 왔다. 계곡 앞에 서니 세상이 얼어 붙은 듯하다. 초겨울에 서리가 내린 것 같았다. 그래도 물은 조그만 소리를 내며 계곡을 감아 흐르고 있다. 일찍 일어난 까마귀 몇 마리가 하늘을 어둡게  했다.  
 
오늘은 손주들 보러 일찍 집에 가야 한다. 집에서는 둘레길을 걷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산을 마주하니 가던 길은 가야겠다로 바뀌었다. 쓸쓸한 산속 길에 사람들이 중간중간 보였다. 그들을 하나씩 지나치다 보니 땀이 났다. 그런데 손은 시렵다. 서암사 옆을 지나는데 젊은이 둘이 시단봉을 이리로 가는 것이 맞냐고 묻는다. 갑자기 당황했다. 산 입구에서야 아디든지 갈 수 있는데, 뭔 소린가 해서. 생각해 보니 초보인 것이고 시단봉을 찾으니 시산제에 온 듯했다. 따라오라 하고 앞서서 걷는데 굼벵이들이다. 하, 이런....  역사관 앞 데크에서 걷옷을 벗고 이어폰 끼고 썬그라스를 꺼내 끼는데 그들이 지나가고 있다. 다시 앞서 걷다가 선봉사를 지나며 걸음이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대동문을 지나 제단 앞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고 나는 부리나케 대피소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 길에 등산객들이 많은 것이 함정이었다. 사람들을 보고 앞지르며 걷느라 게거품을 물을 정도였는데도 멈추질 못했다. 이건 병이다. 나이가 들어 저질체력이 되었음에도 생각과 행동을 예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병이다. 주중에 운동 못한 것을 보충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왜 자꾸.... 
 
대피소에 오르니 채 10시가 되지 않았다. 잠시 서서 쉬며 물 한 모금 마시고 동장대로 갔다. 주능선의 그늘진 성곽길엔 눈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미끄럽지는 않고 푸석했다. 지금 들판에 가면 한창 물오른 냉이가 지천일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소방헬리콥터가 지나간다. 그러더니 삼각산을 빙 돈다. 또 누군가가 다쳤나 보다. 제발 크게 다친 일이 없기를....
 
동장대가 있는 봉우리가 시단봉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대동문 바로 옆의 제단이 있는 봉우리를 시단봉으로 말한다. 사실 나도 그랬었고. 동장대에서 대동문으로 성곽길을 따라 가다가 또 헤매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가는데 한 젊은이가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제대로 찾아 와서 길안내를 맡았나 보다. 제단 앞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니 고양시 동쪽의 새마을금고에서 온 듯했다. 인파를 헤집고 제단 뒤 성곽에 기대어 증명사진을 찍고 보국문으로 향했다. 
 
오랫만에 지붕이 보이는 대동문은 공사진척이 꽤 되었나 보다. 주능선의 성곽길이 바람이 더 불고 있는지 나만 성곽을 따라 걷고 있었다. 몸에 땀은 나고 있지만 손도 시렵고 떨렸다. 보국문에서 내려오는 너덜길은 눈까지 덮여 있어 아이젠을 신지 않은 내겐 최악이었다. 백내장 때문에 초점도 맞지 않고 흐리게 보이는 눈 덮인 너덜길이니....
추위가 느껴져서 그대로 내려오는데 무릎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버스에서 앉고 이후로 아직 계속 서 있는 중이다. 
 
늘 느끼지만 내려오는 길은 정말 없으면 좋겠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몇 달만에 계곡길로 내려왔다. 내가 일찍 내려오다보니 산악회에서 오르는 이들을 여러  팀 만났다. 나도 10년 전에 저러고 다녔었다. 혹시나 아는 얼굴이 있나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때도 되었다. 쉼터에 자리를 막 깔았는데 조은네 님이 지나가서 인사를 했다.
이제 쉬었으니 손주들 보러 가야지. 
 
후기.
그런데 집에 와서 아내에게 들으니 손주들이 감기에 걸려서 아들만 결혼식에 왔다가 바로 내려갔단다. 그리고 나는 체했는지 집에 와서 막걸리 한 잔을 따르긴 했는데 속이 이상해서 마시는 것은 고사하고 양치도 못하고 바로 이불 속으로.... 몇 시간을 온몸이 아프고 떨려서 끙끙 앓다가 밤 11시에 깨니 조금 살만하다. 에휴 뭔 일이람?

 

아내는 출근하고 나는 산으로 놀러 가고....

계곡 아래 얼음들이 푸석해 보인다.

봄이 다가오니 두텁던 얼음에 구멍이 숭숭 났다.

폭포의 얼음도 껍대기만 남았다.

역사관 앞.

중성문 아래 계곡.

중성문

중성문을 지나면 나오는 노적교 아래 길

겨울 내내 저 얼굴모양 바위가 보였는데 이제 잎에 가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산영루

북한산대피소. 10시 전인데 두팀이나 쉬고 있다.

대피소 앞 마당. 지난 가을에 멧돼지가 파헤친 땅이 겨울 내 울퉁불퉁 얼어 있었다.

동장대로 가는 길. 이길과 남장대지능선길이 내겐 참 편하고 좋다.

응달이 진 성곽 아래 길에 눈이 그대로 였지만 미끄럽지는 않았다.

동장대. 이곳이 시단봉이라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동장대 전망대.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이 높게 보인다.

제단 뒤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시산제를 하러 온 회사원들

대동문. 보수공사 이후 처음 지붕 올린 것을 보았다.

칼바위와 형제봉

이제 난 여기서 내려간다.

보국문도 공사 중인데 대동문 보다 진척이 늦어 보인다.

노적교 아래 계곡의 얼음도 푸석해졌다.

역사관 앞에 웬 사람들이 이리 많을까? 보통 사람들은 늦게 산행을 시작 하나보다.

수문자리에서 본 원효봉. 계곡을 덮었떤 얼음이 거의 녹았다.

다 내려왔다. 날이 풀려서 구런지 그림을 그리러 나온 분들이 많이 보였다.